디카 일기

다래꽃 숨어 피어

김창집 2012. 6. 11. 07:58

 

산과 들이

온통 짙은 초록으로 변한 세상

한대오름에서 내려오다

이 다래꽃을 만났다.

 

공중에 높이 매달린

많은 꽃을 바라보다 말고

조금 낮은 데 피어 있는 꽃에

포커스를 맞춰 보았다.

 

이제 저 꽃들이 지고나면

한여름 높은 기온의 날씨가

가을까지 달콤한 열매를 익히리라.  

 

 

♧ 다래가 지붕을 만들어 갈 때 - 송영희

 

두 달 가뭄에

개울물 많이 줄었다

개울 옆길까지 휘어진 소나무 등줄을 타고

다래넝쿨 한 잎 한 잎 푸른 천정 만들어 가고 있다

뙤약볕 아래 어찌 저리 새파란 이파리

수도 없이 피어 날 수 있는지

작은 잎들이 개울의 시원한 그늘막이 되었다

 

한 시절 내게도 가뭄이 들었었다

사막이 되어 마음 쩍쩍 갈라져 갈 때

물 한 모금의 위로와

사랑의 그늘이 없어

차라리 생이 멈추기를 바랬었다

내 안의 잎을 앞으로 앞으로

내디딜 줄 몰랐었다

 

온몸으로 제 마음을 토하는 푸르른 다래 잎

 

목마름의 간구가 저렇게

자신의 지붕이 되어 줄줄, 그때는

몰랐었다.   

 

 

♧ 용암리의 물소리 - 진의하

   -- 머루다래원에서

 

짓푸른 숲으로 울타리 친

남양주시 별내면 용암리 머루다래원

세월을 감고 살아온 파란 가지들

머리풀어 하늘하늘 손짓하는데

어디로 떠나는 물소리인지

제 갈 길을 찾아

굽이굽이 산모퉁이 돌아

알 수 없는 속울음으로

울며 울면서 가네.   

 

 

떠나도 손짓하는 이

한 사람 없어

떨친 미련 뒤돌아보지 않고

눈물에 젖은 족적(足跡)도 흔적 없이

돌 뿌리에 채인 발길

하얗게 부서지는 육신 하나 끌고

서럽게 서럽게 울어울어

어디인지 정처 없는 길

떠나가고 있네.   

 

 

♧ 산 같은 마음을 가지려면 - 정세일

 

산 같은 마음을 가지시려면

당신은 언제나

깊은 뿌리가 있는 생각을

당신의 마음에 심어서 숲이 욱어지면

아침에 안개와 구름이 찾아와서

당신의 이름을 물어보아도

그저 고개만을 끄덕일 수 있는

산울림과 바람소리만을 가지십시오.

 

당신에게 찾아온 안개와 구름이

당신의 깊은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면

오늘은 산울림과 바람소리에서도

당신의 생각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산 같은 마음을 가지시려면

당신은 언제나

산 같은 깊은 생각으로

골짜기를 만들어서

골짜기 마다 물도 흐르게 하고

누구나 찻아오면 시원한 물도마시고

물이 흐르는 곳에서 쉴수있도록

생각하는 마음과 졸졸졸 소리가 나는

노래를 골짜기에 가두워 주십시오.

 

당신이 생각처럼 노래소리도 들리고

물이 흐르는 곳마다 초가집 같은 덤불이

욱어진다면

그곳엔 머루도 달리고

다래도 달리고 입이 벌어지도록

단맛이 나는 으름도 달려서

누구든 물가에서 시원함을 맛보면서

당신의 산처럼 깊음을 알게 될 테니까요

당신이 새처럼 된 그때

그곳에는 이제 새들도 날아들고

토끼와 다람쥐도 당신의 그 골짜기에서

시냇물 소리들 들으면서

목마름도 다 해결할 수 있을 테이니까요.   

 

 

♧ 풍경화 - 박종영

 

어지러운 발끝에 채이는 새벽바람은 언제나 차다

상강 지나 늦가을로 접어서는 더욱 그렇다

 

몇 개 안 남은 나뭇잎이

맨땅을 업고 뒹굴 때마다

땅으로 숨어드는 고요,

어두워지는 슬픔의 소리가 보챈다

 

나는 오늘도 숲을 닮으려 산을 오르고,

떠나는 절기 달래며 익숙한 그늘에 마음을 심는다

잠시 산자락에 앉아 바라보는 지평 끝으로

산은 강이 되어 흐르고,

 

슬퍼지기 위해 늑장 부린 산국 한 무리

망설이며, 가는허리 흔들어 주라 아양이다

 

게으른 석양으로 온기 돋우는 자작나무 숲

작달한 나무 사이로 설익은 산 다래 몇 개,

속살 환하게 발가벗으면

산 까치 볼록한 가슴 훔쳐 날고,

 

불현듯, 산 넘어 나의 가을은,

천년, 그 묵언의 세월을 어이 혼자 지키는가   

 

 

♧ 태평 지대 - 박유동

 

이마에 손을 얹고 바라보니

깎아 세운 듯 높은 벼랑산꼭대기

자고로 히말라야산은 정복한 사람 있어도

저 산꼭대기에 올라간 사람 전혀 없으리라

어느 짐승 하나 못 올랐으니

거기에는 태고 적 원시시대 그대로 일리라

 

하늘이 까마득한 벼랑바위에

칡넝쿨이 줄줄이 뻗었고

머루 다래 넝쿨도 연달아 올랐는데

내가 가만히 들여다보니

그 줄을 타고 개미들이 오르고 있었네

사막에서 무역하는 낙타의 행렬처럼

어떤 개미는 벌써 올라갔다 내려오고 있었네

 

물어보자 개미들아

무서운 호랑이도 없고

겁나는 사람도 없는 그 곳에는

어느 족속들이 태평스레 산 다더냐.   

 

 

♧ 길가다 길을 만났다 - 김종익

 

길가다 길을 만났다

내가 걸어가는 길 다른 길들이 가로질러 가고 있었다

길들이 내 호기심 자극했다

포장된 길 걸어가기 쉽고 자동차 얻어 탈수 있다

다른 길 자전거달리기의 짜릿한 재미 즐길 수 있다

어울려 한잔하고 노래부르며 가는 길도 보였다

눈 돌려 검정 고무신 신은 내 모습을 보았다

내 옷은 나무껍질이었고 된장국과 진흙냄새 배어 있었다

내가 가는 길은 계곡에서 나와 고개를 오르고 있었다

싱그러운 바람 떡갈나무 잎 흔들고 길의 뒤를 따라 산으로 올라갔다

나는 가던 길 계속 가기로 했다

동행이 있었으나 발걸음이 나와 달라 혼자 터벅터벅 걸었다

갈증 나면 엎드려 계곡 물 마시고 산딸기 머루 다래 땄다

밤이면 별들 나와 놀아주었다

꽃이 피고 졌다

풀과 나무들 말을 걸어오기 시작했다

청설모의 흥얼거림과

개구리들의 속삭임도 알아들을 수 있었다

길은 계속 산비탈을 오르고

나는 천천히 길이 되어가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