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능소화 피는 시절

김창집 2012. 7. 4. 08:17

 

7월을 맞는 시기에

가는 곳마다 능소화가 한창이다.

옛날에는 부잣집이나

절에 많이 심었다는 꽃

꽃 잎사귀가 두꺼워

꽤 오래 버티다 떨어진다.

그래도 다음 봉오리가 벙글어

그걸 못 느끼고

오래 간다는 느낌을 받는다.

허나 지금 와서 밝혀진 건데

꽃가루가 어린애들에게 안 좋다고 한다.

미늘 같은 것이 있어

폐 속에 깊숙이 박히면

알러지 반응을 일으킨다고 한다.  

 

 

♧ 능소화 - 양전형

 

바람 나지 않는 꽃은

꽃 아니다 하더라만

여름이 혼신으로

불햇살 토하는 한낮

바람을 무더기무더기

뜨겁게 싸는 여자

 

울담 넘어

뭇남정넬 벌겋게 기웃대는

저런, 저승 가서도 활활 바람피울 년!

뉘 가슴 못을 칠려고

꼴리게 벗어제치냐   

 

 

♧ 능소화 - 김승기

 

그대 눈물을 보이지 말어. 휘어지는 가지 끝에 매달려 겨우 참아 내는 어지럼증은 아무렇지도 않아. 내가 불어대는 나팔소리에 바람이 흔들리고 하늘이 흔들리고 있잖아. 한여름 뙤약볕 아래서 하늘을 좀더 가까이하려고 온 힘을 다해 나팔을 불었기에, 처음 피었을 때의 모습으로 깨끗하게 떨어지는 것 아니겠어. 진다고는 생각하지 않아. 내게서 울려 나오는 목소리, 지금도 하늘에서 새가 되어 날고 별이 되고 바람이 되고 구름이 되어 날다가 비가 되어 들로 내리고 산으로 내려 다시 꽃으로 피면서, 웃음이 아지랑이로 피어나고 있잖아. 그대 눈물을 보이지 말어. 들에서 산에서 홀로 피는 모습도 좋겠지만 진흙 속에서 연꽃을 피워 올리듯이 처음과 끝을 그대 곁에서 함께 하고 싶어. 힘껏 부는 나팔소리에 바람이 흔들리고 하늘이 흔들리고, 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빨간 모습으로 떨어지고 있잖아.   

 

 

♧ 능소화 - 김윤자

 

어머니, 지금

일흔 세 개 생명의 촛대 들고

능소화 허릿길 휘휘 돌아

하늘로 오르신다.

가슴에 또아리 튼 몹쓸 병마는

하나씩, 둘씩 빛을 지우고

여름이 지는 날, 한줌 소나기에

부서지는 잿빛 희망

흙마당에 덩그러니 누워

채 눈감지 못한 저 눈부신 슬픔

시린 세월, 눈먼 꼭둑각시로

사랑의 독항아리

씨물까지 다 퍼주고

바싹 마른 우렁이 껍질, 빈몸

어머니, 혼자서는 일어서지도 못하여

연황빛 고운 입술

하늘 이슬로 목축이시며

삭은 나무 등을 빌어 오르시더니

하룻밤 찬비에

저리도 쉬이 으스러지실까.   

 

 

♧ 능소화 - 김윤철

 

천수답 물막이 돌 봉분가에 눌러두고

읍에 간 어머니는 밤으로도 돌아오지 않았다

 

신작로 흙먼지를 재우며

그 여름 내내 비가 내렸다

 

이우른 상낫 달도 보리밭에 드는 망종

도회에서 지낸다는 그녀의 외투 깃엔

 

먼 옛날 토담너머로 피던

능소화가 화사했다   

 

 

♧ 능소화 불길 - 이정자

 

그대 얼마나 그리웠으면

허공을 뻗어가는 저 열정 좀 봐

 

그대 얼마나 가 닿고 싶었으면

담장을 뛰어넘는 맨발의 저 여인 좀 봐

 

그대에게 이르는 길이 눈물인 줄도 모르고

죄인 줄도 모르고

뻗어가는 저 불의 여인 좀 봐

거칠 것 없는 저 능소화 꽃가지 좀 봐   

 

 

♧ 고사목에 핀 능소화 - 목필균

 

네가 내 몸으로 들어와

한 몸 될 때

내 마른 기침소리에도

넌 쉼 없이 돌아가는

바람개비였지

 

빈 젖까지 물리는 어머니처럼

온몸의 힘 다 내어주고도

너를 지켜주고 싶어

자꾸만 기울어지는 나

 

바람에 바람을 덮으며

까맣게 타들어간 속내

죽어서도 눕지 못한 채

뼈만 앙상한 내 주검

 

주검마저 놓아주지 않고

끌어안은 너는 아직도

못 채운 욕정이 남았는지

뜨거운 태양 향해

주홍 나팔을 계속 불고 있구나   

 

 

♧ 능소화 편지 - 이향아

 

등잔불 켜지듯이 능소화는 피고

꽃 지는 그늘에서

꽃빛깔이 고와서 울던 친구는 가고 없다

우기지 말 것을

싸웠어도 내가 먼저 말을 걸 것을

여름이 익어갈수록 후회가 깊어

장마 빗소리는 능소화 울타리 아래

연기처럼 자욱하다

텃밭의 상추 아욱 녹아 버리고

떨어진 꽃빛깔도 희미해지겠구나

탈없이 살고 있는지 몰라

여름 그늘 울울한데

능소화 필 때마다 어김없이 그는 오고

흘러가면 그뿐 돌아오지 않는단 말

강물이야 그러겠지

나는 믿지 않는다   

 

 

♧ 능소화 - 강세화

 

한창 나이에 죽은 친구 생각이 나면

소백산 구인사 큰법당 내려오는 계단가에

애절한 사랑을 변변히 내색도 못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피어있는 꽃을 보러가자

남몰래 만났다가 아쉽게 헤어지고

가까이 아득히 생생한 기척을 좇으며

한 생애 넘보다 주저앉은 형국으로

뚝 떨어져 빤하게 승천하는 꽃이여

별나게 곰곰이 그리움이 앞서서

대낮을 골라 보란듯이 지면서

훨씬 가까이 잇대고 싶은 사람을 위하여

나도 어쩌면 이쯤에서 그러고만 싶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