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련이 피어 연못을
지난 일요일 동백동산 들어가는 곳 연못에서
이 수련을 찍었다.
한때 연못 가득 피었던 수련이
너무 일렀는지 너무 늦었는지
꽃이 많지 않다.
어리연은 이제야 하나둘 피기 시작했는데
집에서 먼 거리여서 쉽게 찾을 수 없다.
다음에 어쩌다 이곳을 지나가게 되어
어리연을 제 때에 찍었으면 좋겠다.
♧ 수련이 피었다 - 김승기
터 잡을 곳이 그렇게도 없었던가
수많은 땅을 놔두고,
살아가는 세월만큼
썩어 가는 물 위에 둥둥 떠서
애 태우며 피워내는 선홍빛 웃음
땅 위에서는 결코 피울 수 없는 일인가
더러운 물에서
빛을 내는 순결
세파에 타협하지 않는다는 고집을
과시하고픈 자랑은 아닐까
갈수록 연못은 흐려지는데
진정 아름다운 호수를 만들겠다는 사명감이
사람들 사랑 가로채는 수단은 아니었을까
‘네가 더러워야 내가 더 깨끗해 보인다’고 믿는
털끝만큼이라도 위선은 없었을까
모든 것을 비우며 살겠다는 마음공부
오히려 욕심은 아닌지
뒤돌아보는 여름 한낮
수련이 피어 있다
♧ 수련(睡蓮) - 심창만
선정은 조는 것
풀끝에서 뿌리로
졸음을 밟고 내려가는 것
내려가 맨발로 진흙을 밟는 것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차지게 뭉개내는 것
물비린내 나도록
발자국을 지우는 것
지운 얼굴 위로 물을 채우는 것
물방개처럼 허우적대지 않고
구름의 실뿌리를 놓아주는 것
오후 두시에도 순례자를 맞는 것
그의 빈 꽃받침 위에도 잠시 머무는 것
그의 친구의 꽃받침 위에도 나누어 머무는 것
이런 날은 늦게까지 하루를 놓아주는 것
그러나 잊지 않는 것
물마당을 쓸어놓고 어둠을 맞는 일
밤 깊은 실뿌리부터 다시 밟는 일
정수리가 환하도록
밤새 진흙을 밟는 일
진흙을 밟고
아침 끝에 올라앉는 일
♧ 수련의 비밀 - 채호기
안으로 조용하게 들끓는 여름.
강한 햇빛과 차가운 물, 무거운 돌,
후텁지근한 바람과 축 늘어진 나뭇잎, 감기는 눈, 수련,
말 못하는 이 모든 것들은 비밀을 간직하고 있다.
물안개 속에 어렴풋한 여름 새벽의 식물들처럼
말이 되지 못한 것들이 뒤엉켜 있는 잡목 숲.
언어로도 표현하지 못하는 여름의 비밀, 시간의 비밀,
삶의 비밀, 수련의 비밀,
비밀은 깊다. 말없는 시간의 더딘 지루함과
기다리는 시간의 조급함처럼.
팔 하나를 집어넣어도 잡을 수 없는 깊이.
몸 전체를 빠뜨려도 섞일 수 없는 깊이.
♧ 수련꽃 - 박상희
매미소리 산새소리 아름다움에
술 취한 듯 호수 위 떠 있느냐
달과 별 햇살 먹고
이토록 아름다움 피워 지더냐.
함지산 운암 저수지 물위에
신비의 여신처럼 깨끗한 수련
긴 긴 여름 그리움
보랏빛 사랑으로 터트린 꽃망울
함지산 너 부러워 호수에 몸 담그고
해가지니 바르르 떠는구나.
♧ 수련 - 윤꽃님
어디서부터 온 것일까,
아득히 먼 미지의 심연에서
밤새 멀고 먼 인연의 두레박을
끌어올리며 달려온 것일까.
숨겼던 모든 비밀의 날개 활짝 펼치고
오롯이 물의 누각에 앉은
나비 같은.
자보라빛 미소 머금은
열반의 향기를 본다
니르바나,
다채로운 색상 속에 담겨진 하나의 소원
하나의 소원 속에 담겨진 다채로운 열망.
어디로 가는 것일까
나비 꿈같은 삶
이 어슴푸레한 아침
빈손으로, 빈손으로
홀로, 홀로, 고요히
떠 있는 자태들이 나를 살그마니 깨우친다.
떠날 때는 이 모든 날개 옷
벗어버리겠지
욕심도, 아집도 뱀의 허물 마냥 고스란히
놓고 가겠지.
카르마,
영탑지에 오면 언제나
몇 바퀴쯤 탑돌이를 해야 할 것 같고
수련의 사랑 이야기를 추억해야 할 것 같고
전생과 현생과 내생을
연결시켜야 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내가 받은 교육
내가 본 텔레비전
이미지의 힘은 과연 크구나.
여태까지의 수련이 과연 이런 것인가.
♧ 수련이 피었다기에 - 신현정
수련 보러 간다
수련 보러 가면서
수련 보러 가는 것이 어제인 듯 까마득하다
왜 발은 자꾸 진흙 속으로 빠지는지
한 발을 빼면 또 남은 한 발이 마저 빠지는지
수련 보러 가는 길이 더디다
아마 수련을 보지 못할는지도 모른다
수련 보러 가면서
왜 하품이 나오는 것인지
허공에다 동그란 하품을 몇 번 그리고 나니
정말로 한 백 년은 자야 할 것 같다
수련 보러 간다
진흙발을 겨우겨우 떼어놓는다
이러다가는 환속하기도 쉽지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