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꽃에게서 배운다
제주문화예술 2012/6 [등대로]
* 조뱅이
* 가락지나물
* 갯메꽃
* 민눈양지꽃
* 자운영
♧ 들꽃에게서 배운다
오름에 다니면서부터 자연과 접하는 기회가 많아졌고, 들꽃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들꽃이라고 해봐야 밭농사 짓는 사람들에겐 잡초에 지나지 않는 것들이지만, 찬찬히 들여다보면 우주의 질서가 그 속에 다 숨어있다. 그래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주위를 둘러보게 한다.
들꽃은 독특한 빛깔과 향기로 저만의 개성을 드러내면서 열심히 꽃피우고 열매를 맺음으로써 끈질긴 생명을 이어 종족을 보전한다. 남을 시기하거나 질투하는 일도 없고, 이웃을 부러워하거나 자신의 처지를 한탄하지도 않는다. 씨앗이 떨어진 곳에 뿌리를 내리고, 그저 햇볕과 물을 주는 대로 받으며, 길면 긴 대로 짧으면 짧은 대로 주어진 수명을 다하는 것이다.
들꽃은 웃고 있을 뿐 섣불리 자신의 감정을 내보이지 아니한다. 찾아온 것이 나비든 벌이든 심지어 파리라도 묵묵히 받아들인다. 아파도 아파하지 않고, 슬퍼하는 법도 없다. 설령 잘못해서 누가 밟더라도 운명이거니 하고 묵묵히 견딜 뿐이다.
들꽃은 혼자서 핀다. 누가 보아주거나 말거나 그것이 외진 구석이든 사람이 많이 다니는 길섶이든 장소를 가리지 않고 꽃을 피울 뿐이다. 설령 뽑히다 뿌리의 일부만 남아 있어도 다시 줄기를 뽑아 올리고 서둘러 꽃을 피워 열매를 맺는다. 화단이나 온실에서 사람의 손에 자란 화초는 혹 꽃 피우길 게을리 하고, 조건에 안 맞는다고 죽기도 하지만 들꽃이라면 어림없다.
오름 길라잡이 양성 과정 중에 봄, 여름, 가을 세 번의 들꽃 강의가 있는데, 맨 처음 봄꽃을 맞으러 오름에 나가면 일부 수강생들은 적지 않게 당황한다. 특히 과수원을 갖고 있거나 농사를 많이 지어본 사람들이 그렇다. 질기디 질긴 목숨을 가지고 있어 제초제로도 잘 안 죽는 녀석을 무슨무슨 꽃이라고 추겨 세우는가 하면, 아주 귀한 것처럼 다루기 때문이다.
이런 것에 관심을 갖지 않던 시절에는 작가들도 ‘이름 없는 들꽃’이라고 아무렇지도 않게 말해왔다. 아아, 이름 없는 꽃이 어디 있으랴. 우리 보잘 것 없는 민초 무지렁이들도 이름이 있는 것처럼 하잘 것 없어 보이는 저 들꽃들도 다 이름 하나씩은 갖고 있는 것이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기 전에는
그는 다만
하나의 몸짓에 지나지 않았다.
내가 그의 이름을 불러 주었을 때
그는 나에게로 와서
꽃이 되었다.
--김춘수 ‘꽃’의 일부
세상 사람들은 상대가 자신을 보잘 것 없다고 생각할 때, 상대도 나를 보잘 것 없이 생각하는 줄은 잘 모른다. 세상에 잘난 사람이 어디 있고, 못난 사람이 어디 있으랴. 사람은 저마다 고귀한 인격을 갖고 태어난다. 그러기에 어느 삶 하나 소중하지 않은 것이 없다. 내가 애정어린 눈으로 그 이름을 불러주었을 때, 그도 소중한 인연으로 꽃이 되어 내 마음 속으로 들어올 수 있는 것이다.
요즘 들어 힘없는 아이들을 따돌려 가슴 아프게 하고, 걸핏하면 사람을 죽이는 인명경시풍조가 만연된 것은 혹 이런 생명의 소중함을 모르는 데서 기인한 것은 아닐는지. 빗물도 잘 닿지 않은 바위틈에 얇게 쌓인 먼지를 의지하여 뿌리를 내리고 한 송이 꽃을 피운 뽀리뱅이를 보며, 머리털이 곤두서는 생명의 경외감을 느끼는 것은 나만의 부질없는 센티멘털리즘일까?
* 개자리
* 큰점나도나물
* 씀바귀
* 엉겅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