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불초와 올림픽 금메달
어제 국립제주박물관 뜰
옥잠화는 다 지고 그 사이에
줄기가 솟아올린 금불초가 한창이다.
심어 가꾼 것이 아니라
꽃밭에 잡초로 자라 스스로 피워 올린
커다란 금빛 꽃들이다.
찍고 와서 사진을 정리하는데
TV에서 올림픽 선수들이 파이팅을 외치며
런던으로 떠난다.
우리나라의 명예를 걸고 정정당당하게 싸워
이 꽃처럼 멋있는 금메달을 따오길 빌어본다.
어쩐지 조짐이 좋다.
♧ 올림픽 개막식 즈음하여(1) - 문추자
벽문이 열릴 조짐이다
금지느러미가 바람에 둥실 날아올랐다
비린내와 풋물이 배어나는 연녹색 머리칼
치렁치렁
한 단으로 묶어내린 안가닥에서
동요의 꽃말들이 기우뚱 걸음마로
몰려 나왔다
봄의 꽃분대는 새끼 치려는지
수백 나라에 포기 줄기 나누는
통통하게 살오른 동그스름한 네 뺨을
양손 함빡 보듬고 있다가
어기영차 지구보다 더 큰 번짐으로
파동치며
받침대 꿸 때 따진 옷솔기 사이로
가느다라하게 가느다랗게
감추었던 실밥 뜯겨져 나와
색동문양 완자무늬 퉁수소리 등등 꿰어
꼬리표 붙이고 지구 안팍 밑돌고 웃돌아
오오!
풋풋하게 수정분수처럼 흩날리며 간다
마지막 벽 무너질 때까지
삐꺽이며 벽문 열리는
실바람처럼.....
♧ 꽃그늘 - 김종제
팔월의 따가운 햇살에도
미소 띤 얼굴 내민 금불초가
양쪽 손을 가슴에 모아쥐었다
중생 구원에 힘 보태겠다고
묵상에 젖어든 나한을 닮았다
꽃 그늘 아래
진한 향과 색으로
가피 받겠다고 나비 앉았는데
저 금불金佛이 혼절하겠다며
날개를 접었다 폈다
연신 바람을 불러모은다
몇 겁 지나 저 나비 날아간 뒤에
불佛과 한통속인 꽃에게
삼가 삼배를 드리고
나도 꽃그늘 차지하고 앉아있겠다
꽃불 모시고
여름의 볕 피할 수 있는
그늘 같은 나한이 되었으면 해서
허락도 없이 꽃에게 날아들겠다
내 몸의 동서남북으로
잠시 쉬어갈 수 있는 꽃 핀다면
피난 같은 그 아래 무릎 끓고
한참을 합장하며 절 하겠다
오늘 같은 날
꽃 그늘 아래에 선다면
불볕이라도 견딜 수 있지 않을까
물 소리라도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금불초 그늘 아래 섰으니
한 여름 소나기처럼 서늘하겠다
♧ 아름다운 것들 - 구경애
파릇한 숲 속
이슬 먹고 숨어 피는
작은 들꽃
돌 틈 사이 흐르는
실팍한 물길 위
젖은 나뭇잎
조약돌에 얹힌 이끼 한 줌과
흐르는 상념 속
노랗게 피어나는
금불초
아침 강물 위에
영롱하게 반짝이며
몸 씻는
별들의 눈물
얕은 웅덩이에 모여
조잘거리며 치장하는
작은 산새들
내 눈동자만 바라보며
죽도록 사랑하는
나의 해바라기
그대!
♧ 장마전선 - 권오범
저잣거리 건달 같은 구름끼리 만나
공연한 시비 끝에
소나기 한판으로 소멸하고 마는
그런 속 보이는 션찮은 싸움이 아니다
비대해진 조직의 힘 따라 방방곡곡
천방지축으로 오르내리다
마지노선이 무너져야 직성이 풀리는
태곳적부터 세세연년 치러 이골이 난 전쟁이다
아래세상 갈증 해갈시켜주려다
예 저기 땅거죽 벗겨 쑥대밭 만드는
그리하여 애당초
인간의 피눈물로는 간섭할 엄두조차 없었다
생명의 원천을 계산한 조물주 농간으로
서로 다른 성깔의 기압골로 태어났기에
만나기만 하면 구질구질하게라도
밑천이 고갈될 때까지 티격태격 해야 하는
♧ 장마 - 김종제
한 사나흘
바람 불고 비만 내려라
꿈결에서도 찾아와
창문 흔들면서
내안에 물 흘러가는 소리 들려라
햇빛 맑은 날 많았으니
아침부터 흐려지고 비 내린다고
세상이 전부 어두워지겠느냐
저렇게 밖에 나와 서 있는 것들
축축하게 젖는다고
어디 갖다 버리기야 하겠느냐
머리부터 발끝까지
누구에게 다 젖고 싶은
그 한 사람이 내게는 없구나
문 열고 나가
몸 맡길 용기도 없는 게지
아니 내가 장마였을 게다
나로 인해
아침부터 날 어두워진 것들
적지 않았을 테고
나 때문에 눈물로 젖은 것들
셀 수 없었으리라
깊은 물속을 걸어가려니
발걸음 떼기가 그리 쉽지 않았겠지
바싹 달라붙은 마음으로
천근만근 몸이 무거워졌을 거고
그러하니 평생 줄 사랑을
한 사나흘
장마처럼 그대에게 내릴테니
속까지 다 젖어 보자는 거다
♧ 장마일기 - 양인숙
우울한 비의 노트를 말린다 속이 다 젖고만 청춘, 꺼져버린 건 미네르바의 램프만이 아니다 이 땅에 살기 위하여 가방을 버리고, 씨앗을 버리고, 약자를 죄다 버렸다. 도서관 서가에도 장마가 진다 습기에 절은 망자들의 독백. 죽어버린 말들이 더 고혹적이다 산 자의 힘이여, 망자의 유언에 말려들어서는 안 된다 망치는 건 순간, 블루의 비망록엔 불후의 명작만을 골라 박아야 한다 한 백년쯤 서가의 시렁을 장식할 옹골찬 씨앗들만 살아남기 위하여…… 살아남기 위하여…… 잇몸 고운 말들은 다 떠내려가고 흔적 없는 사랑처럼 상처뿐인 우울들아, 안녕 서슬 푸르던 슬픔의 곰팡이여, 이제는 안녕. 골방 한켠에서 꿈의 스토브를 환히 켜고.
♧ 장마철 여행 떠나기 - 목필균
며칠을 두들겨대던 빗줄기 끝에
장마는 잠시 틈을 내어 쉬고 있었다.
밤새
길 떠날 이의 가슴엔 빗소리로 엉겨든
불안한 징조가 떠나질 않더니
설핏 잦아든 빗소리가 반가워
배낭을 메고 나선다.
차창에 비치는 산야는 물안개에 잠겨
그윽한데
강줄기에 넘치는 듯 시뻘건 황토 물이
맑고 고요한 물보다 격정을 더하게 한다.
수많은 토사물이 뒤섞여 흘러가는 강물
그 속에 일상의 찌꺼기도 던져 보낸다.
미련 없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