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돌문화공원의 오백장군

김창집 2012. 8. 9. 04:56

 

오랜만에 들른 돌문화공원, 오백장군 갤러리에서 전시중인

신상범 제주문화원장의 한오름 사진전에 갔다가

새로 조성해놓은 어머니 방과 오백장군 석상을 보았다.

어느 누가 봐도 스케일이 대담하고

추상성이 강해 세계적인 명소가 될 것 같다.  

 

 

♧ 오백장군 이야기

 

한라산 서남쪽 산 중턱에 ‘영실’이라는 경승지가 있다.

여기에 기암절벽들이 하늘높이 솟아 있는데

이 바위들을 가리켜 오백나한(五百羅漢) 또는

오백장군(五百將軍)이라 부른다.

여기에는 다음과 같은 전설이 전해 내려오고 있다.

옛날에 설문대할망(?)이 아들 오백형제를 거느리고 살았다.

어느 해 몹시 흉년이 들었다.

하루는 먹을 것이 없어서 오백형제가 모두 양식을 구하러 나갔다.

어머니는 아들들이 돌아와 먹을 죽을 끓이다가 그만 발을 잘못 디디어

죽 솥에 빠져 죽어버렸다.

아들들은 그런 줄도 모르고 돌아오자마자 죽을 퍼먹기 시작했다.

여느 때보다 정말 죽 맛이 좋았다.

그런데 나중에 돌아온 막내동생이 죽을 먹으려고 솥을 젓다가

큰 뼈다귀를 발견하고

어머니가 빠져 죽은 것을 알게 됐다.

막내는 어머니가 죽은 줄도 모르고 죽을 먹어치운 형제들과는

못살겠다면서 애타게 어머니를 부르며

멀리 한경면 고산리 차귀섬으로 달려가서 바위가 되어 버렸다.

이것을 본 형들도 여기저기 늘어서서 날이면 날마다 어머니를 그리며

한없이 통탄하다가 모두 바위로 굳어져 버렸다.

이것이 오백장군이다.

 

 

♧ 나의 마음속에는 바위가 있어 - 정세일

 

나의 마음속에는

바위가 있어

나는 당신을 닮은 얼굴을 조각하려고

여기 징과 망치를

가져다 놓았습니다

      

당신을 닮고 싶은 나는

언제나 나의 바위가 있는 곳에서

잃어버린 당신의 얼굴을 생각하며

나는 나의 마음을 조각하고 있습니다

      

당신의 그 온화한 얼굴

사랑스럽고 순결한 그 모습

나는 오늘도 당신의 그 얼굴을

다시 그리기 위해 당신의 얼굴을

나의 마음속에 조각을 하고 있습니다

      

오 순결한 당신

당신의 그 눈썹은 작은 징으로

나는 조각을 합니다

나의 눈이 당신의 초생달 눈썹을 닮을 수

있도록 아주 작은 징으로 정교하게 다듬고

있습니다

당신의 크고 둥군눈을 조각하는 날은

하늘 위에 보름달이 떠있는 날입니다

나는 당신의 가슴을 조각하고 나의 가슴을

그곳에 넣어 당신을 온전히 닮은 나를

조각하고 있습니다   

 

 

♧ 耽羅탐라 기행 - 김동호

 

야채밭도 유채밭도 까아만

돌들이 테를 두르고

산 사람 집도 죽은 사람 집도 네모

돌담이 지키고 있네

돌의 나라

 

집어삼킬 듯 집어삼킬 듯

무섭게 불던 바람이

언제 그랬느냐는 듯 숨을 죽이고

섭지코지 능선 위에 나즉히 누워있네

바람의 나라

 

바다 한가운데 솟아오른 해녀

길게 내뿜는 저 소리는

죽은 남편 부르는 소리다가

백발의 청춘 부서지는 소리다가

힘껏 힘껏 껴안는 어머니 근육소리

 

돌과 바람과 여자의 나라

 

돌 속에 바람이 있고 바람 속에 여자가 있네

아니야 여자 속에 돌이 있고 돌 속에 바람이 있네

아니야 바람 속에 돌이 있고 돌 속에 여자가 있네  

 

 

♧ 석상(石像)의 노래 - 김관식

 

  노을이 지는 언덕 위에서 그대 가신 먼 곳 머언 나라를 뚫어지도록 바라다보면 해가 저물어 밤은 깊은데 하염없어라 출렁거리는 물결 소리만 귀에 적시어 눈썹 기슭에 번지는 불꽃 피눈물 들어 어룽진 동정 그리운 사연 아뢰려하여 벙어리 가슴 쥐어뜯어도 혓바늘일래 말을 잃었다 땅을 구르며 몸부림치며 궁그르다가 다시 일어나 열리지 않는 말문이련가 하늘 우러러 돌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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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룽진 : 얼룩진

*동정 : 한복 저고리 깃에 꿰매어 다는 헝겊, 대개는 흰색

 

 

 

 그리움이 사무친 나머지 사람이 돌이 되었다는 전설은 우리나라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런 설화는 먼 옛적 신라의 박제상과 그 아내의 이야기에서부터 나오는데, 그러고 보면 사무친 그리움과 돌의 차갑고 굳은 성질 사이에는 어떤 연상적 관계가 있는 듯하다. 김소월의 <초혼>에도 ‘선 채로 이 자리에 돌이 되어도 / 부르다가 내가 죽을 이름이여!’라는 구절에서 나타난 바 있다. 위의 작품 또한 석상(石像)을 한없는 그리움이 쌓여 한(恨)으로 맺힌 덩어리로 노래한다.

 

  작품의 시간은 노을이 지는 저녁 무렵에서부터 밤까지로 되어 있다. 그러나 이 시간은 전체의 분위기를 전개해 가는 데 필요한 것일 뿐 한 사람의 그리움이 사무쳐서 마침내 돌이 되기까지는 많은 시간이 지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긴 시간 동안 그(작중 화자)는 ‘그대 가신 곳 머언 나라’를 뚫어지도록 바라본다. 이 ‘머언 나라’는 어디일까? 그곳은 어쩌면 ‘죽음의 나라’ 혹은 돌아올 가망이 없는 먼 땅일 것이다. [해설 : 김흥규]   

 

 

♧ 장타령 - 최진연

 

돌 하나도 돌의

제 얼굴을 가지고

풀 한 포기도

풀의 제 빛으로

빛나는 아침

우리가 닿아야 할

그 곳은 멀었는가.

아직 멀었는가.

 

나뭇가지 하나 흔들림에도

흔들리는 제 가락이

따로 있고

맹꽁이 찌르레기도

제 소리를 내거늘

오늘의 각설이들은 어째

신바람을 잃었는지

한바탕 장타령도

못 듣겠네.

 

우리 집 앞 시궁 물이

물이 아니 듯이

아닌 것은 아닌 것

은하수는 은하수.

푸른 하늘 은하수 건너

다시 건너서

우리는 언제나

그 나라에 닿을까.

우리가 부러워하는

공중의 새들

우리를 부러워하고

부러워할 나라에.  

 

 

♧ 한라산 백록담 - 김윤자

 

먼발치에서 당신을 보고 간 한 여인이

다시 그리움 안고 와

하루의 역사를 온전히 쌓고 갑니다.

영실코스 가파른 절벽길을 숨이 멎도록 걸어오르며

오백나한의 기암 속에 망자로 선다해도

나는 진정 행복하여서

당신 그 넓은 품에 뒹굴어도 보고

병풍바위 지나, 구상나무 숲길 지나

선작지왓 고산의 너른 평원을 가로지르며

오월의 꽃불로 일어서는 철쭉꽃 축제의 물결에

지친 육신이 일어서고

노루샘 약수로, 혼미한 영혼이 일어서고

윗세오름봉에 거룩한 당신이 보일 때

발보다 눈이 앞서 달려가

당신을 사랑한 낮달이 떠나지 못하고 맴도는 하늘에

당신에 대한 나의 사랑도 걸고 왔습니다.

어리목코스 하산 길에서

당신의 따슨 숨결로 키운 노루도 만나고

제주 바다 위, 순결한 해무와

무한한 자유로 용솟음치는 운해의 설경도 만나고

해가 지기 전 어서 가라고

숨가쁜 음계로 깔아놓은 나무 계단을

잘박잘박 걸어 내려오며

당신만큼 용감해지리라 다짐하였습니다.   

 

 

♧ 편지 - 이보숙

 

먼 제주 산골 돌매화나무

눈트는 소리 보내왔어요

얼음이 풀릴 겨를도 없이

차가운 바위와의 사랑이 결실을 맺었다는

이제 갈색 연두빛 줄기가 딱딱한 바위의 살결을 덮고

머지않아 붉은 꽃들이 열리면

앵두빛 종소리 예까지 들릴 거라는

늘 키 작다고 움츠러들던 마음 다 벗어버렸다는

이제는 열심히 꽃을 피워 보겠노라는 말들

나 혼자 있는 이 사각의 방 안까지

먼 영실 계곡에서 소식이 왔어요

내 귀에 벌써 돌매화나무꽃 종소리 들려오고 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