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제주상사화 피어나다

김창집 2012. 8. 20. 00:10

 

아무래도 상사화는 서귀포로부터

피기 시작하나보다.

 

무더위가 가시기 시작하는

늦여름 드디어 그 살빛과 같은

수줍은 모습을 드러내는 꽃

 

다른 데서는 보지 못했는데

토요일 법정악에서 본 것들이다.

      

상사화(相思花)는 수선화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땅속 비늘줄기는 크고 둥글며

흑갈색이고 수염뿌리가 있다. 여름에 깔때기 모양의

자주색 꽃이 피며, 꽃이 필 때 잎은 이미 말라 있다.

산과 들에 나는데, 관상용으로 정원에 가꾼다.

학명은 Lycoris squamigera이다.

 

전에는 개상사화로 불렀는데

조사 결과 그것과는 종이 다르다고 해서

이제 제주상사화로 명명되었다.  

 

 

♧ 상사화 피면 - 김경숙

 

매년 같은 모습으로 찾아오지만

바라보는 마음은 여러 갈래

 

지지난해 애절한 꽃송이

지난해 하늘바라기 되어 사위더니

올해는 그리움 지천에 쏟아내어

온종일 소슬바람 속에

타들어가는 긴 기다림

 

다음해,

다다음해에 너를 다시 만난다면   

 

 

♧ 상사화 - 김영천

 

세상의 모든 풀꽃들이

다 이루는 일을

그 하찮은 일을

 

애기똥풀꽃이나 쇠비름이나

구절초,

며느리밥풀꽃.

개망초까지 다 하는 일을

 

아-아, 그리움처럼

너무

 

잎과 꽃의

사이

      

 

♧ 상사화(2) - 유일하

 

가루 비 내려와 속눈썹 그윽하게

사무치는 사랑의 눈물 맺혔어라

자늑자늑하게 함치르르한 네 모습

사뭇 허공만 바라보며 떨고 있구나

 

맺지 못할 인연이라면 태어나지나 말지

긴 꽃대 아삼삼 하게 빛 너울 서렸어라

푸른 지대 이끼 비집고 옹기종기모여

산사 풍경소리 머금어 길마중 가누나

 

계곡물 바야흐로 낙엽 한 장 띄워

고이적은 깨알편지 실리어 가려무나

임에게 나의소식 전할 즈음 내 모습은

찬 서리에 메말라 대롱만 잡고 있네.

 

말없이 오고 소리 없이 가는 인생길

맑은 공기 맑은 물 너마저 없었던들

내 어찌 산속에서 외로이 떨었겠냐 만은

님 향한 곧은 기개 안에서 삭이고 가네  

 

 

♧ 상사화에게 - 이재봉

 

슬퍼하지 마라.

네 곁에 없다고 없는 게 아니다.

네가 피기도 전에 떨어진 잎새들이

산그늘에 숨어서 너를 보고 있다.

새가 되어 이골 저골 날기도 하고

나비가 되어 춤을 추기도 한다.

가끔은 너를 보며 눈물도 흘린다.

네 곁에 없다고 슬퍼하지 마라.

네가 진실로 그리워하면 보인다.

다 보인다.   

 

 

♧ 상사화 2 - 양전형

 

길이 내 자동차를 태워

시속 육십 킬로미터로 달리고

시속 육십 킬로미터로 그대 생각나다가

 

제주농고 정문 지나

길가 풀숲을 보는 순간

내 눈이 꽃에 맞았네

이파리 없이 활활 피어 어찌나 뜨겁던지

차가 멈추고

그대가 멈추고

 

그때부터

내 눈 속에

때도 없이 그 꽃이 피어나기 시작했네

    

 

♧ 상사화 가슴 속으로 피다 - 이재현

 

뒤 돌아보면 등 굽은 겨울나무처럼

책갈피로 숨겨둔 그리움도 그렇게

눈 옴팡하여 웅크리고 있는 것인지

좀처럼 펴지지 않는 손가락을 굽혀 세던

천년 기다림의 날들을 마디마디 꺾어

하얀 뼈가 드러날 때까지 시샘으로

채 여물지 않은 종아리 툭 채며

바람은 좋게 마른 입술을 깨물어

그 눈물 고인 자리로 피어나는 꽃이

슬픈 전설의 상사화 이었을라

기다림은 까치발을 뜨는 것일까

진종일 길어진 목이 눈물 나게 아프더냐

 

네 가슴 내 가슴이 서로 애달프구나

마주 볼 수 없는 그 자상自傷이여

    

 

♧ 상사화 - 목필균

 

이 가을

그대 만날 수 있다는

희망을 주지 마세요

 

사랑하지 않으면서도

곱다고 쓰다듬지 마세요

 

그 손길은

늘 기다리게 하는

눈물이 되니까요

 

동백꽃 처연히 진

이른 봄부터

흙발로 정진해온

선운사 목탁소리

붉게 여물어가는 데

 

한 뿌리에서 태어나도

만나지 못하는 그대와 나

차라리 절망을 익히게

해 주세요 

 

 

♧ 상사화(想思花) - 박정순

 

어떤 천형의 죄를 지었기로서니

피었다 지는 순간까지

옷깃한번 스칠 수 없고

눈빛 한번 맞출 수 없는

운명의

너를 이름하여

누가 상사화(想思花)라 불렀는가

 

이른 봄 피어난 잎사귀가

형태도 없이 폭삭 삭은

그자리에서

한여름 연보라빛 얼굴

살며시 내밀다

울컥 솟은 그리움에

목만 길어진 연두빛 꽃대

 

잎은 꽃을 보지 못하고

꽃은 잎을 보지 못한

이승, 아닌 저승에서조차

서로를 그리워하다 지는

업보의 꽃

누가 상사화(想思花)라 이름지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