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취꽃으로 여름을 난다
이틀 동안 비가 내리더니
오늘은 햇빛이 강렬하다.
15호 태풍 볼라벤이 영향은 아니겠지만
간혹 시원한 바람이 불어온다.
예정대로라면 8월28일 9시 목포 서남서쪽
약 120km까지 진출한다고 하여
당일 아침 김포공항을 거치는 답사가
영향을 안 받을지, 어제 두 사람이나
걱정스럽게 물어왔다.
볼라벤은 라오스 고원의 이름이라
큰 영향이 없기를 기원할 수밖에.
자연의 힘을 어찌 당하겠는가?
곰취는 국화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키는 1m 정도이고 잎은 커다란 심장 모양이며
7~8월에 노란 꽃이 핀다.
봄철에 어린잎을 뜯어먹는데,
깊은 산의 축축한 곳에서 잘 자라며,
우리나라, 중국,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지난 토요일 법정악에서 찍은 것이다.
♧ 곰취는 그곳에 있다 - 백우선
곰취, 그는 그곳에 있다. 멀고 먼 산비탈 숲속 신록의 창으로 봄햇살을 받
으며 그곳에 있다. 그는 그곳에 있고 나는 이곳에 있지만, 내 힘의 향원(香
源)인 그에게서 손을 놓은 적은 없다. 바라보고 안고 한 몸으로 밤을 붉히던
그곳에서는 물론이지만, 그곳을 가고 올 때에도, 이곳 도심의 장벽에 겹겹이
둘러싸여 있을 때에도, 나는 늘 그에게 닿아 있다. 그 향기의 풍향이나 자력
(磁力)은 요량 밖이다. 그는 그곳에 그냥 있을지라도 그에의 지향으로 내 심
신의 지남침 끝은 끊임없이 떨고 있다. 그는 스스로 자유지만, 나는 그 안에
서 즐거이 자유롭다.
♧ 곰취나물 - 권경업
--규에게
늦게 본 뉘 집 자식 손바닥 같은
떡갈나무 맨 가지 끝 새 잎 피면
“고놈 참 잘 생겼네, 그늘도 넉넉하겠어”
“이 골짜기 제일 짙푸를 꺼야”
쉬엄쉬엄, 덕담도 나누다가
곰취나물 잎사귀에
장당골 연둣빛 오후 한 숟갈 푹 뜨고
써레봉 뻐꾸기 소리 햇된장처럼 척 얹어
입안 가득 싸한 봄날 싸 먹을 수 있습니다
치밭목엘 가면
♧ 사명산 미끄럼틀 - 최범영
사명산에 가면 자동차로 하늘을 날 수 있지
꽃과 나무와 물이 발아래 휘휘 움직이는 거야
고비고비 아찔아찔 사명산 중허리
북에서 남으로 작두날 같은 산 기어기어 올라
파로호 바라보며 내려오는 길
언제 낭아덕 있을지 골짜기로 들었지
갑자기 나타난 된비알, 놀란 눈알
삶이 벼랑 끝에서 뒤꿈치에 힘을 주는 순간
저기 어딘가 있을 길까지만 가면 된다
저승 문턱 간 듯 닭 소름 엉덩이에 댄 채
삶을 벼랑에 문대며 타는 미끄럼틀
몸으로 느끼는 자연은 켜켜이 무지개
차타고 보는 자연과 늘 하늘과 땅 차이
자연은 늘 짜릿함을 가시처럼 키우더군
곰취에 싼 삼겹살에 소주 한잔
양구의 밤이 더 짜릿했다
♧ 밀양 사람들 - 고증식
--오 여사
오 여사가 불러서 얼음골 간다
아까운 꽃잎 다 지고 만다고
새벽부터 애가 닳아
환갑 지난 소녀의 가슴에
봄날이 불붙고 있다
산자락 들추고
벚나무 꽃기둥 들어서면
개나리 홍도화 철쭉들 사이로
환한 웃음 먼저 달려나온다
두릅이며 곰취며 햇고사리며
지나는 풀벌레 소리도 저녁상에 불러
흥겨운 잔치를 열 줄 아는 사람
왼종일 사과밭 뒤지다가
해 지면 싸악 씻고 내려와
시인도 되고 큰누님도 되는
보기 좋아라
한 송이 들꽃같은 사람
♧ 선택받은 자만 필요하다 - 김수목
동의나물은 잎에 털이 없고 잎줄기가 옆으로 뻗을 뿐 곰취나물과 매우 비슷하여 착각하기 쉽다. 또 그 이름에 나물이 붙어 있어 나물인 줄 알지만 먹었다가는 큰일난다. 말하자면 유독식물이다. 삿갓나물이나 요강나물도 마찬가지로 독성이 있다.
어떤 나물이라도
봄 한때의 어린 순만 먹을 수 있고
나머지는 그냥 잡초로 함께 살아갈 뿐인데
어느 생태학자의 책을 읽다가
그 가치가 아직 사람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풀이 잡초라는 걸 읽고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가에 모든 가치의 기준인 것같아
내 속에서 품어 나오는 나의 독성부터 제거하기로 했다
이제 그만 질투하기로 했다
♧ 취나물국 - 박남준
늦은 취나물 한 움큼 뜯어다 된장국 끓였다. 아흐
소태, 내뱉으려다 이런, 너 세상의 쓴맛 아직 당당
멀었구나. 입에 넣고 다시금 새겨 빈 배에 넣으니
어금니 깊이 배어나는 아련한 곰취의 향기
아, 나 살아오며 두 번 열 번 들여다보지 못하고
얼마나 잘못 저질렀을까. 두렵다 삶이 다하는 날.
그때 또 무엇으로 아프게 날 치려나.
♧ 덕항산에서 - 최영규
산허리를 안고 돌아가자
길을 터주는 나뭇가지들이 처음 보는 나를 만져보느라
야단이다
나는 잠시 앉아 쉬기로 한다
산옥잠이 저만치 떨어져서 하얀 꽃을 흔들어 보인다
깨알같은 꽃들을 접시만하게 묶어 피운 당귀
곰취의 꽃은 길게 뻗어오른 줄기 끝에서
흩어질 것같이 피어 있다 바람이 분다
머리 위의 나뭇가지가 흔들린다
흔들리는 가지 끝에서 나뭇잎들은
비질하는 소리를 내고 있다
숲은 금새 비질하는 소리로 가득 차 버린다
기억 속에 있는 많은 것들이 그 소리에
지워진다
투명해진 숲을 바라본다
이미
산은 내 안에 들어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