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레옥잠은 저리 고운데
연3일 동안 오름 답사 인솔을 했다.
묘하게도 짜여지게 된 스케쥴 때문에
평생을 해온 벌초도 한 번 빠지게 되고
하루를 달리 하여 같은 오름에도 갔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
누구에게 맡길 수도 없고
맡겨서도 안 되게 된 일
그래서 즐기면서 사흘을 보냈다.
부레옥잠은 물옥잠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잎은 육질이고 잎자루가 물고기의 부레처럼
물에 뜬다. 8~9월에 연한 자주색 꽃이 수상
꽃차례로 피는데 윗부분은 깔때기처럼 벌어진다.
열대 아메리카와 아열대 아메리카가 원산지이다.
♧ 부레옥잠 - 양전형
필시, 전생에 무슨 죄 있다
실날 같은 목숨 물속에다 감추고
바람 몰아칠 때마다 생사가 서로 갈마드는
물 위에 유배된 형벌이다
덧없고 힘든 길
외로움만 푸르게 돋아나며
정처 없이
떠돌아야만 하는 삶인 줄 알았다
알았다, 근데 오늘 아침 부레옥잠
어질증 나게 눈부신 꽃 활짝 내고 말았다
간밤 열대야를 뜬눈으로 지새우다
아무래도 못 참고 피어 버린 듯
울멍진 몸에 몰래몰래 가무리고 다녔던
가슴패기 터지며 나온 연보랏빛 그리움
한없이 불서러운 풀풀한 그리움
아 저, 환장 할,
내 안에 바글대는 꽃망울을 건드리는,
♧ 문득 - 최남균
그대
빈 집에 등불이 켜있거든
내 그림자가 어디에 묻혀 있는지
한번쯤 지켜봐주세요
그대
창문에 바람소리 들리거든
내 보고 싶은 마음 문가에 머물고 있는지
살짝만 창문을 열어주세요
그대 바라보는 하늘에 구름도
그대가 느끼는 가을바람도
나를 대신하였음을
수면에 떠 있는 부레옥잠
문득
꽃이 부풀어 오르듯
당신 생각에 몰입하여 만들어낸
나의 간절한 개화(開花)이었음을.
♧ 부레옥잠 - 김석환
어느 죄 많은 조상 탓에
내 삶이 이다지도 통속적인가
거품이 부글대는 폐수 속에
무성히 뿌리를 내리고
난파선처럼 흔들리는
가벼운 육신의 질량
저승보다 더 깊은 수심 속에
침몰하지 않기 위해
귀를 세우고 팔을 벌리고
바람으로 헛배라도 부풀려야 하는가
미얀마재비물벼룩물방개송사리피라미
입 맞추고 살 부비며 살았다는
옛 전설이 물안개로 피었다 사라지고
해와 달도 발길을 끊은
이 외진 주소에서
어둠을 길어 올려
하얗게 분향을 하는
은밀히 종족을 늘려 가는
차마 부끄러운 이 혈통
♧ 부레옥잠 - 김종제
어제 나에게 전화를 건
여인이 부레옥잠이라는 것을
자주 지나가는 어느 집 문밖에
오래된 돌확이 있어서
풍상을 다 겪은 듯
살 떨어져 나가고 뼈 부서지고
쓸모없이 버려진
세상의 번뇌 다 품고 있는데
보기에 너무 안쓰러워
장마 그친 날에
부레옥잠 한 뿌리 사다 넣었다
햇볕 쨍쨍한 날 하도 많아
축 늘어져 있기라도 하면
물 한 주전자 들고 나가
온몸에 시원하게 뿌려주었더니
어느 틈에 돌확을 확 덮었다
고마워라 부레옥잠
오늘 아침 자주색 꽃 예쁜 꽃이
내가 사랑하는 그녀다
길 지나가는 누가 그 꽃 꺾어갈까
마음 놓지 못하였더니
문득 전화가 왔다
누구세요, 아무 말 없는 것이
부레옥잠 그녀다
잘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라며
길고 검은 머리 땋아서 올리고
푸른 비단 옷 입은 것이
필시 먼 조선에 내가 만나서
한 지붕 아래 살았던 여인네다
♧ 그대 곁에 있으면 - 강희정
곁에 있으면 사랑스러운 사람
멀리 있어도 그리운 사람으로 남고 싶다
그대 사랑할 땐 불나방처럼 혼을 태워서 사랑하고
언제까지나 그대의 그림자 되어 그대의 노을이 되고 싶다
그대와 별리가 있을 때는 같은 하늘아래 사는 것을 위안으로 삼으며
소라 산 넘어 가는 구름이 비되어 내릴 때
연못에 있는 부레옥잠 위에 한가로이 날아다니는 잠자리를 볼떄
나 그대인줄 알리라
사랑하여서 나는 행복하였네라
♧ 부레옥잠 - 마경덕
물고기도 아닌 것이
부레를 달고 있다
목줄기에 볼록볼록 바람을 뭉쳐 달고
바람보다 가벼워진 부레옥잠
물 속에 뿌리를 찔러 넣고
둥둥 물을 딛고 일어선다
푸릇푸릇 물밭을 기어가는
잎사귀 하나 당겨보니,
너른 연못 내 손에 끌려온다
♧ 부레옥잠 - 복효근
누군가의 이름에 세 들어 사는 이름은 누구의 꽃을 피울까 옥잠도 아닌 것이 그렇다고 부레도 아닌 것이 남의 이름에 기대어 옥잠으로 불리우며 연잎처럼 물에 떠있다 뿌리를 뻗어 흙에 닿으려해도 흙에 닿는 순간 부레를 버려야 하고 옥잠에 이르려면 물을 버려야 한다 연잎은 더더욱 아니어서 한 덩어리 불타는 꽃으로 제 이름을 증명할 수도 없다
오늘 아침 부레옥잠은 부레옥잠의 꽃을 피웠다 부레옥잠은 부레가 아니어서 옥잠이 아니어서 더더구나 연잎이 아니어서 부레옥잠이다 부레옥잠은 또한 부레옥잠이 아니어서 오늘 아침 어느 누구의 것도 아닌 부레옥잠의 꽃을 피웠다 다만 이름이 부레옥잠에 세들어 살기 때문이다
♧ 부레옥잠을 보며 - 반기룡
저 부유하는 생을 보라
뜨거운 나라에서 건너 와
뿌리내리기까지 얼마나 힘든 세월을 여미었으리
체질에 맞지 않는 물을 먹고
심한 가슴앓이도 하였으리
늘 뜨거움만 동여맨 채 생존하다가
사계가 뚜렷한 환경으로 이식되어 온
생의 수레바퀴 속에서 고충도 많았으리
온갖 어려움 무던히 딛고
우뚝 선 청초한 자태가 싱그럽구나
연못에 몸 담그고
조용히 인간 세상 바라보는 여유로움이여
늘 부레처럼 떠 있을 수 있는 당당함이여
연한 보랏빛 흐드러지게 뿌리며
언제나 깨끗한 물을 선호하는 너를
수질정화 홍보대사로 임명해야겠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