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목화 따던 시절에

김창집 2012. 10. 17. 01:14

 

마을 스토리 취재차 납읍리사무소를 찾았다가

화단에 몇 포기 심어져 있는 목화송이를 만났다.

지금은 솜 대신 여러 가지 좋은 재료로 이불이나

옷을 만들지만, 목화가 들어오고 나서 실을 뽑아

옷감을 짜고, 옷을 해 입거나 솜이불을 만들었기 때문에

목화를 심고 따고 말리고 씨를 빼고 하는 일이 보통 일이 아니었다.

 

아이들은 먹을 것이 없던 시절 ‘멘네또로기’라는 연한 열매를

따먹다 들켜 욕을 먹기도 하였고, 씨를 뽑다가 물레에 손이 끼어

고생도 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목화를 재배하는 곳이 안 보인다.  

 

 

목화(木花)는 아욱과 목화속(木花屬)에 속한 식물을

통틀어 이르는 말로 대개 한해살이풀이지만

작은 관목상(灌木狀)도 있으며, 지역에 따라 여러 품종이 있다.

열대 남아메리카 원산으로 보는 해도면(海島綿),

미국 남부 목화 지대의 육지면(陸地綿),

인도의 인도면, 아시아면이 있다.

 

면화(綿花)는 아욱과에 속한 한해살이풀로

원줄기는 높이 60cm로 곧게 자라면서 가지가 갈라진다.

잎은 어긋나고, 가을에 백색 또는 황색의 꽃이 피며,

솜털이 달린 씨가 나온다. 솜털을 모아서 솜을 만들고,

씨에서는 기름을 짠다.  

 

 

♧ 목화밭 - 장미숙

 

높은 산에 오르면

고향 쪽 하늘을 보게 되지

비어있다가도

목화구름 피는 하늘

왕솔길 돌아서

황토 묻어 나온 고구마처럼

팍팍한 언덕 밭에서

치마폭 가득 안아 오던

햇빛 부신 목화송이

가을은 얼마나 따스하던지

고향의 건강을 지키던 오빠

서울로 떠나고

등 넘어 뽕 밭 따라

목화밭도 떠나간

기운 잃은 고향집에서

폭 넓은 치마 얇은 신발 신어도

맨드라미는 낯을 가리네

 

 

♧ 목화꽃 피는 여름밤 - 류수안

 

등잔불 아래 옥색치마 흰 저고리 벗어

흙 부뚜막에 올려놓으신

어머니

 

물통 속으로 들어가시네

목덜미에 가슴패기에 물 끼얹으시며

달아라, 시원해라, 달아라.

 

통 밖으로 물 넘쳐흐르네

물 흘러 부엌바닥 적시네

어머니 나른한 눈 졸음 겨운 목소리로

달아라, 시원해라, 달아라.

 

늦은 밤

부엌 송판대문 열리네

물거품 뽀얀 수증기 속에서 날씬한 처녀 하나

 

걸어 나와 젖은 머리 틀어 올리네

놀란 수줍은 눈 살짝

뜰의 붉은빛을 엿보네

목화꽃 피는

 

여름밤.  

 

 

♧ 목화 - 윤석성

 

산골 헤매다가

누님을 만났어요

누님은 연황색 저고리를 입으셨지요

내가 올 걸 미리 아셨던 듯

담담한 미소로 저를 맞아주셨어요

 

그날 하늘은 눈부시게 맑았지요

세상은 황홀히 익어 가고 있었어요

고적한 한나절 녹두알 튕겨나고

산새 눈망울엔 외로움이 넘쳤어요

 

아아 고향 찾다가

스며든 산골

돌아앉은 비탈 밭에서

누님을 만났어요

오래 전에 잃어버린

큰누님을

거기서 만났어요

 

헤매고 헤매던 내게

누님은 고향으로

거기 서 계셨어요  

 

 

♧ 목화 - 김승기

 

이루지 못한 한이 있어

나무의 꽃이라 했는가

 

영화롭던 貊朝鮮맥조선의 꿈은

뿌연 안개 속으로 아득하고

붓두껑에 실려 온 기구한 운명이

캐시밀론에 밀려도

허옇게 웃음 흘리며

두 번씩 피는 꽃

 

그대여, 내 품에 안겨다오

여린 마음을 힘껏 보듬어

안으로만 삭이는 그리움

까만 눈물이 되어 맺혔네  

 

 

♧ 별지는 언덕의 사랑 - 김동욱

 

별이 질 때 마다

목화 꽃처럼 하얗게

피어오르던 언덕위의 사랑

 

별 하나 따서

호호 불어서 망태에 담고

 

별 둘 따서

호호 불어서 냇강 따라

 

뻗은 어머니의 고향

추억의 망태기에 담아 드립니다

 

모기불 먹고 자라던

장독대의 감이 누이의

젓망울처럼 커져 갈 때

 

하늘에 걸린 전설들

푸르른 개구리의 교향곡으로

 

냇가를 울리고

서럽게서럽게 영혼에 고이던

소쩍새의 울음소리 들려오면

 

멀리 가까이서

쏟아져 내려오던

별똥불 반딧불에 말없이 앉아

 

아버지의

보릿고개가 어린 오남매의

어깨를 도닥거리던 초여름 밤

 

어디선가

이어질 듯 끊어질 듯

 

길잃은

나그네의 신음소리 들려옵니다

 

어머니

별 뚝뚝 지면 망태 가득

영혼의 노래 담아 언덕에 오르렵니다  

 

 

♧ 내게도 잠 못 드는 밤은 있어라 - 이향아

 

내게도 잠 못 드는 밤은 있어라

인당수 용궁에는 청금의 댓돌

땅에는 목화 피는 야산 모퉁이

대숲마을 질러가는 수수한 바람

몇 천만 리 쫓아오는 넉넉한 달이

여며 여며 잠가둔 휘장을 걷어

내 몸의 핏줄처럼 퍼져 있어라

 

잠 못 드는 밤은 화려하여라

여위는 내 손목 모처럼 잡고

달빛 따라 잠기기 찬란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