까치콩이거나 제비콩이거나
얼마 전 4.3유적지 순례 시낭송 행사로
선흘 낙선동 4.3성에 갔을 때
성담 안 옆집 돌담에
곱게 피어 있던 콩꽃.
까치콩, 나물콩, 제비콩, 편두 등
여러 가지로 부른다고 했다.
어렸을 적 돌담이 유난히 많이 쌓인 고구마 밭에
이 콩을 심어 고구마를 캐러 갈 적에
따다가 고구마 솥에 같이 넣어 쪄먹었다.
달콤한 고구마와 곁들이면
고소함과 뒷입맛이 좋았다.
♧ 까치콩 또는 편두(扁豆, kidney bean)
쌍떡잎식물 장미목 콩과의 덩굴성 여러해살이풀로 까치콩, 나물콩, 제비콩, 변두라고도 한다. 검은 줄 사이에 흰 줄무늬가 있어서 까치와 비슷하다는 의미에서 작두(鵲豆)라고도 한다. 남아메리카 열대 원산이며 한국에서는 한해살이풀로 털이 다소 있거나 없다. 잎은 3개의 작은 잎으로 이루어지며 잎자루가 길다. 작은 잎은 넓은 달걀 모양으로 길이 5∼7㎝이고 끝이 갑자기 뾰족해지며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7∼9월에 나비 모양의 흰색 또는 자주색 꽃이 핀다. 꽃받침은 종 모양으로 끝이 4개로 얇게 갈라지고 밑 부분 안쪽에 귀 같은 돌기가 있다. 꼬투리는 낫 같고 길이 6cm, 나비 2cm이며 종자가 5개 정도 들어 있다. 종자가 마르기 전에는 육질의 종피(種皮)가 있고 태좌(胎座)가 흰색이다. 어린 꼬투리는 식용한다.
‘동의보감’에 의하면 흰 꽃의 씨는 백편두라고 하고, 자주 꽃의 씨는 흑편두라고 하는데, 약으로 사용하는 것은 백편두라고 한다. 백편두는 성질이 따뜻하고, 흑편두는 약간 차다. 맛은 달며 독이 없다. 삼초 중 중초를 조화시키고, 기를 내린다. 곽란, 설사, 구토, 쥐가 나는 경우에 효과가 있다. 풀과 나무의 독, 술독, 복어독 등을 풀어준다. 그러나 추위에 상하여 열병이 난 사람은 먹지 말아야 한다. 보통 약으로 쓰는 경우에는 껍질을 버리고, 생강즙에 버무렸다가 볶아서 사용한다.
♧ 간판 없는 가게에 남겨진 고향 - 최지윤
그 가게 집은 이름이 없었다.
바람에 먹혀버린 모퉁이, 통나무 탁자 몇 개가 덜컹이는 문을 바라보며 목을 내밀다 쭉 늘어나 주저앉은 곳이었다. 이곳엔 넓은 가슴을 지닌 아주머니와 이장어른 같은 아저씨가 침묵을 수정처럼 지키고 있고 차림표는 있지도 않았다. 김치에 막걸리 한 사발을 먹어도 그만이던 네가 스쳐간 그 자리 눈으로 그리움을 묻어둔 내가 늘 있었다.
장작불을 때다가 연탄으로 바뀐 난로 한 쪽에 줄을 선 라면들이 꿈을 꾸며 꾸불꾸불한 진열장의 허기를 메우고 매일아침 내려선 햇살들이 포식을 한다. 찌개는 대접에 담겨져 나오지 아니 한다. 4인분은 됨직한 냄비에 가격은 천년이 바뀐 지금도 오천원, 술이 있어도 두 병 이상은 팔지 않겠다는 넘쳐 나는 인정은 공짜이다.
간판 없는 가게에 내가 있던 그 자리
조각난 언어들은 고향을 그리워하고 있었다.
♧ 콩밭에 가지마라 - 임영준
아이야
함부로 콩밭에 가지 마라
섣부른 손끝에 시름만 키워간다
허접한 고랑이라
귀뚜리도 마다하고
적막도 볕을 가리는데
헛바람에 허우적거릴
턱 빠진 하루살이들만 웽웽거린다
허리가 고꾸라지도록 매어도
야수들의 한입 거리인데
아이야
함부로 콩밭에 가지 마라
자칫하면 혼마저 앗아가 버리리니
♧ 어머니가 심어놓은 강낭콩 - 김귀녀
어머니가 세상을 떠나신지
열흘도 되지 않았는데
담장 위에 강낭콩
단풍이 든다
연분홍 색깔
가을볕에 익어가니
립스틱 바르며 단장하시던
어머니 모습 닮았다
언제 심어 놓으셨을까
못다 준 자식사랑
남기고 가신 걸까
주렁주렁 많이도 매달렸다
조석으로 따다가
밥솥에 앉혀
아이처럼 마알 간
어머니의 마음을 먹는다
♧ 콩꽃 피우고 - 구재기
햇살 도란도란 콩밭 빈자리에
들녘을 건너온 바람이란 새파라니 콩꽃을 피운 뒤 마침내 콩꼬투리 익을 대로 익게 하고 구름들을 내몰아야지만 장끼도 까투리도 울다가곤 하였다
헉헉헉 땀을 흘려 화끈한 얼굴의 계집애는
부풀대로 부풀린 젖가슴을 보듬어 안고 자꾸만 달아오르는 입술까지 괜스리 눈물이 흘러내리곤 하였다
♧ 콩포기 - 이영춘
아침에 어머니 창문 여는 소리에 잠을 깨니
밤새 뽀얗게 얼굴 씻은 산이 덩달아 깨어나
창문 밖에 내려와 서성인다
콩밭에 나가신 어머니를 따라
콩포기들도 모두 일어나 해실해실 웃으며
어머니 치마폭을 따라 다닌다
그렇게 하루가 열리고
어머니 긴 그림자가 산 그림자에 가려질 무렵
콩잎들도 제 몸 속에 오그라 들어 이불을 펴고
나는 어머니 산 그림자 뒤에 숨어
세 살 적 아이처럼 훌쩍거리고 있었다
콩 포기처럼 줄기 앙상한 어머니의 뼈 때문에
♧ 엘리스와 콩나무 - 김참
이상한 나라의 거대한 콩나무는 하늘을 향해 뻗어 있었다 콩나무 가
지에는 벌집이 주렁주렁 매달려 있었다 내가 옥탑방에 누워 소설을
읽고 있을 때 스페이드 무늬 군복 차림의 트럼프 병정들이 붉은 드레
스를 입은 여왕 앞으로 엘리스를 끌고 왔다 저년의 목을 쳐라! 여왕이
고함을 질렀지만 병정들은 딴청을 부리고 있었다 저년의 목을 쳐라!
화가 난 여왕이 더 크게 고함을 지르자 잠자던 벌들이 벌집에서 쏟아
져 나왔다 깜짝 놀란 여왕과 병사들은 궁전을 향해 부리나케 달아났
다 콩나무 뒤에 숨어 낮잠을 자던 흰토끼가 손목시계를 보며 바쁘게
뛰어간 뒤에 콩나무 옆 우물에서 포도주가 쏟아져 나왔다 포도주를
잔뜩 마신 엘리스는 점점 커지기 시작했다 엘리스의 머리통이 부풀어
올랐고 엘리스의 팔다리가 쭉쭉 늘어났다 엘리스의 커다란 손이 옥탑
방 창문을 열고 들어와 내가 읽고 있던 소설책을, 음악이 흐르던 라디
오를, 바둑판 위의 텔레비전을 집어 던졌다 옥탑방 거울 속에는 엘리
스의 커다란 눈동자가 빛났고, 엘리스의 커다란 입술이 씰룩거렸다
엘리스의 커다란 손가락이 방구석의 옷걸이를, 옷걸이 옆의 전축을,
전축 옆의 책꽂이를 마구 망가뜨리고 있었다 내가 방에서 뛰어나와
콩나무 줄기를 타고 정신없이 달아날 때 트럼프 병사들은 뚱뚱한 엘
리스를 향해 화살을 날리기 시작했다 엘리스의 하얀 팔에, 엘리스의
하얀 목덜미에 화살이 날아와 꽂혔다 화가 난 엘리스는 병정들을 집
어던지며 여왕을 잡으러 달리기 시작했다 엘리스의 다리가 땅을 밟을
때마다 콩나무가 몹시 흔들렸다 벌통이 떨어졌고 콩깍지가 벌어졌고
콩깍지 속의 검은콩들이 콩나무 아래 가득 쌓이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