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제주작가 가을호의 시

김창집 2012. 10. 27. 00:30

 

비가 내려 농촌에 물 줄 일이 없어

주민들을 많이 만날 수 있을까 하여 가보니,

이곳 제주시에 내린 비에

반에 반도 내리지 않았다.

 

이처럼 별로 크지도 않은 제주섬에도

비가 내리는 곳이 있고

대신 햇볕이 쨍쨍 내리쬐는 곳도 있으니

세상 공평하지 않다는 말이 맞은 듯.

 

 

말오줌때는 고추나뭇과의 낙엽활엽관목으로

높이는 3m 정도이며, 잎은 마주나고 깃 모양 겹잎이다.

5월에 노란 꽃이 가지 끝에서 원추꽃차례로 핀다.

열매는 골돌과로 8월에 벌겋게 익고 벌어져서

검은빛이 도는 자주색의 씨를 드러낸다.

어린잎은 식용하고 산기슭이나 골짜기에 나는데,

동아시아에 분포한다.  

 

 

♧ 강정마을 - 문충성

 

억울한 죽음들

엉 엉 엉엉

울고불고

돌고래 뛰고 노는 저 바다 청청 어디쯤

엉엉엉

이름 없이 떠돌고

울고불고

찬바람 휘몰아치는 이곳에서

우리는 무엇인가 요리조리

모여

평화인가 자유인가

소리소리 내지르는 우리는 죽어

말똥깅이나 될 수 있을까 하얗게

날아가는 갈매기나 될 수 있을까

끼룩 끼룩 끼룩  

 

 

♧ 마지막 소망 - 김수열

 

  이녁 발걸음으로 화장실 출입허당 오고생이 죽어지는 게 말년 늦복이렌 허영게 아이고 게메 느네 아방은 이미 글러부런신게 경해도 귀는 트연 뭐셴 고르문 고개도 끄덕허고 물 도렌도 허고 그것만도 어디라 더 아프지만 말앙 자는 듯이 죽어지믄 그것도 복이주 하루라도 나보다 먼저 죽어주는 것만도 큰 복이고말고

 

 게나저나 나 죽을 때랑 나냥으로 화장실 출입허당 톡허게 죽어져사 헐 건디 경해사 느네덜이 덜 고생헐 건디 게메 경 해지카  

 

 

♧ 손톱 - 김광렬

 

죽 ․ 이 ․ 고 싶었다고 했다

 

너는 내 유전자가 아야

술에 취해

어느 날 아버지가 말했다

 

가시 박혀 빠지지 않았다

몰래 손톱을 키웠다

 

날마다 벽을 긁었다

드디어 단단해졌을 때

 

거꾸로 아버지는

병색 짙은 숨 헐떡거렸다

 

아버지 손톱은 어디 갔나요

아버지, 그 손톱 드러내세요

 

어느 날 그는 술집에서

나지막이 고백했다

 

손톱 빠진 아버지가

이제 가엾어 못 견디겠다고  

 

 

♧ 백지화 되는 그날 - 김경훈

 

  아직껏 결혼식을 올리지 못한 서울식당 형님 내외분의 전통혼례를 성대히 열리라 강정 중덕 구럼비 바위 위에 초례청을 마련하고 청사초롱을 밝히리라 김경훈 시인은 평화를 상징하는 노란색 염색을 하고 사회를 보리라 문정현 신부가 흰 수염 위엄 있게 어흠어흠 주례를 서고 강동균 마을회장이 능청스럽게 축사를 하리라 서예를 하는 정순임은 고천문을 일필휘지 휘갈겨 쓰고 강정의 토종시인 고영진은 축시를 멋지게 낭송하리라 민성이와 태나는 예쁜 화동이 되고 김국남 해상팀장은 카약을 타고 축하 퍼레이드를 하리라 김영오 김영삼 형제는 뱃전에서 뱃고동을 연신 울리고 김미량은 날렵한 몸으로 축하 다이빙을 하리라 삼거리식당 주방장 김종환은 하객들의 식사준비에 열을 올리고 중덕이는 뭔 일인고 이리저리 킁킁 살피리라 놀이패 한라산 딴따라들이 풍물을 울리면 신랑신부가 씩씩하게 입장하리라 우리의 신부는 수줍음 빛내며 기쁜 입을 다물지 못하리라 우리의 신랑 또한 예의 주접을 심히 떨리라

  강정해군기지 백지화 되는 그날, 평화의 바람이 구럼비를 감싸고 생명의 구름이 할망물에 비를 보태리라 일만 명의 하객들에게 돼지고기 석 점 막걸리가 아낌없이 조달되리라 강정마을 지키세 마약 댄스가 거대한 군무로 이어지고 너 나 없이 얼싸 안아 축하의 노래가 기쁨의 눈물로 하염없이 강정천을 흐르리라

 

  그날은 이제 곧 오리라  

 

 

♧ 용두암 해안도로 5 - 김규중

   -길과 파도

 

해안도로를 걸으면

길은 앞뒤로 뻗어

발은 가야 할 길을 헤아리고

파도는 옆으로 자꾸 다가와

겨드랑이를 간지럽힌다

 

그만 하라고, 그만 하라며

눈은 자꾸

파도를 따라 가고  

 

 

♧ 어린 왕자 - 김순선

 

우리 동네 골고루 식당 배달 아저씨

노란 머풀러 휘날리며

오토바이 타고 씽씽

부르는 곳 어디든지 갑니다

 

오늘은

중절모에 선그라스

어떤 날은

반짝이는 밤무대 의상

바람 부는 날엔 긴 머풀러를 휘날리며

부르는 곳 어디든지 달려갑니다

 

바쁘게 세상을 사는 우리에게

잠깐, 돌아볼 수 있는 여유를

우울한 그대에게 웃음을

덤으로 배달합니다

 

우리 동네 골고루 식당 배달 아저씨

변화무쌍한 의상 연출은

세상을 사랑하는

어린 왕자의 마음입니다  

 

 

♧ 후속곡 - 현택훈

 

내 다음 생애도 오후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푸른항공매표대리점 앞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오후

약간의 지루함과 약간의 초조함과 약간의

당신의 화학 반응을 일으키는

우산을 사러 들어간 편의점의 오후

사람들은 바닷가로 가거나

먼 기억에 분홍 리본 같은 이름의 선술집에서

음악을 마시는 오후

 

내 다음 생애도 오후가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비가 내리든지 내리지 않든 오후

작고 귀여운 피로와 작고 귀여운 그리움과 작고 귀여운

당신의 증산작용을 일으키는

우주의 그늘 플라타너스 아래의 오후

사람들은 엘살바도르로 가거나

가까운 미래에 새로 출시된 맥주 이름 같은 술집에서

오후를 마시는 음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