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가을 숲은 색의 잔치

김창집 2012. 10. 28. 00:15

 

어제는 단산에 올라 산국의 향기를 즐겼지만

지난 목요일 한대오름에 다녀오면서 본 가을 숲은

그렇게 현란하진 않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색의 잔치를 벌이고 있었다.

 

추위 타는 나무부터

벌써 후두둑 잎을 떨구는가 하면

지난번 태풍에 상처 잎은 잎사귀에

바이러스가 침투하여 칙칙한 빛으로

물들었다가 쉬 떨어진 것도 많다.

 

하긴 겨울이 되기 전에

모두 털어버리고픈 나무들도 있겠지만.  

 

 

♣ 가을 숲 - 최동호

 

새 한 마리 우는 소리가

도끼로 찍어내듯

고요한 숲의 정적을 깨뜨린다.

 

백년 묵은

나무뿌리의 향기를

흔들어 깨우고,

 

한해살이 풀잎 사이를 스치는 메아리는

단풍잎 선명한 시냇물 따라

미끄러지듯 낮게 기어가다 사라진다.

 

여름날 하늘을 가르던 천둥소리가

나무들의 뿌리 아래 잠들어

가을 숲 향기가 하늘로 퍼져나간다.

 

수북한 낙엽에 발목을 빠뜨리며

한 아이가

품속에서 날아간 새를 찾는다.   

 

 

♣ 용문산 행 - 박현자

 

山門에 들어서며

정상까진 몇 개의 능선과

마주해야 함을 안다

오늘처럼 습기 가득한 날엔

안개를 자주 마셔야만

앞이 보일까

협곡으로 이루어진 계곡은

저 홀로 푸르러

비틀대는 바람 돌려보내고

가을 숲을 내려다보고 섰는

은행나무 묵묵히 옷을 벗는다

해탈승처럼 모든 것을 벗으며

마음속 켜켜로 쌓인

돌무덤 무너뜨린다

비우고 버리며 살라는 듯

세상 바라보고 섰는

거목의 머리위로

떠도는 풍경소리

계곡을 돌아 함께 산을 오른다.   

 

 

♣ 가을 숲 - 용혜원

 

소낙비 흠뻑 맞아도 식지 않고

심장까지 불타던 사랑도 잊지 못한다

 

가슴에 타던 그리움을

잎새 잎새마다 붉게 물들이더니

모든 것을 다 잊으려는 듯

잎새를 다 떨군다

옷을 다 벗는다

나목이 된다

 

 

똑같은 사랑을 반복하면서도

빠질 때마다 열정을 쏟아

지칠 줄 모르고 빠져들고 만다

 

이 가을이 떠나 버리면

한겨울 그 혹독한 추위에도

발 한번 들지 않고 꼿꼿하게 서서

사랑이 다시 돋아나는

사랑이 꽃 피어나는 봄을 기다린다   

 

 

♣ 사랑 심기 - 박덕중

 

당신의 마음 속

깊은 골짜기

굽이굽이 한 십리쯤 걸어 들어가

당신의 대지에 뿌리 내릴

건강한 사랑을 심어 주고 싶다

 

꽃 피고 새 우는

가을숲 같은

마음의 빛깔로

나는 당신의 가슴 속

아름다운 사랑을 심어 주고 싶다

 

그리하여 굽이굽이 돌아 나가는

맑은 물소리로 태어나

사랑의 노래 들려주고 싶다

 

사계가 아름다운

설악 같은

당신의 마음 속 황홀한 사랑이고 싶다   

 

 

♣ 가을 숲에서 겨울 숲까지의 술 - 박남준

 

이제 곧 추위가 시작되고 긴 겨울이 오리라. 단풍의

숲은 어느덧 가고 사랑을 위해 온통 내달려갔던 지난

일들은 더러는 쓸쓸한 술잔이 되어 쓰러져갔다. 더러는

나락으로 자폐 되었으며 역류하며 일그러져 갔다.

 

그리하여 춥고도 어둡다. 이제 우리는 얼마나 햇빛의

문 밖으로 걸어 나갈 수 있을까. 뜨겁게 타오르던

나무들은 땅속 깊이 슬픔의 뿌리를 더욱 내렸는지,

살아서는 다시 되돌릴 수 없는 시작인데 상처는 뒤틀린

채 몽유의 길로 헤매이고, 겨울 숲에 누워 나는 술에

빠져 있다. 바람의 숲이여 마지막 불꽃이여, 설레이는

술잔 기울이며 단풍으로 붉겠다던 시절이 옛날이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