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까마귀밥여름나무의 가을

김창집 2012. 11. 5. 01:02

 

어제는 원고고 뭐고 내 자신을 위해 살고 싶어

오랜만에 오름오름회 식구들과 함께 산으로 갔다.

한라생태숲 숯모르숲길로 거친오름 노루생태공원까지 가는

코스를 걸었다. 날씨가 궂은데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건강을 다지며 여유를 즐기며 숲길을 즐기고 있다.

단풍도 제법 잘 들었는데, 비가 와서 제대로 촬영할 수가 없다.

우의를 입었으나 신발에 물이 고이고, 배꼽에 물이 흐를 때쯤

생태숲으로 나와 노루를 보며 비에서 해방될 수 있었다.

 

 

여기 올리는 까마귀밥여름나무 열매는 토요일

김영갑 갤러리에서 찍은 것이다.

잎사귀가 거의 떨어져버려 재작년에 찍었던 것에서

두어 장을 골라 같이 싣는다.

 

까마귀밥여름나무는 범의귓과의 낙엽 활엽 관목으로 줄기는

높이가 1m 정도이고 조금 덩굴졌으며, 잎은 어긋나고 둔한

톱니가 있다. 4월에 푸른빛을 띤 흰색 꽃이 피고 열매는

넓은 타원형으로 가을에 빨갛게 익는다. 어린잎은 식용하고

관상용으로 재배한다.  

 

 

♧ 가을 숲 - 박인걸

 

시월 숲 길 위로

알알이 여문 산열매들

산 짐승이 거둬갔는가

흔들어도 인색하다.

 

아침 햇살이 드리울 때

늙은 숲이 기지개 켜면

솔가지 작은 새들

조율 音도 무겁기만 하다.

 

늦깎이 꽃잎마저

모두 떠난 빈자리

베옷으로 갈아입는 숲

예배 시간처럼 敬虔경건하다.

 

지난여름 지날 적에

싱그러움에 감탄했더니

윤기 마른 피부처럼

늙는 데는 별 수 없구나!  

 

 

♧ 가을 숲 - 반기룡

 

가을 숲에 드니

산새들 우짖고

풀벌레 합창소리 드높다

단풍으로 옷 갈아입은 나무들마다

일렬 횡대로 어깨를 나누고

햇살이 내리는 틈마다

야생화 지천이다

서걱이는 억새가

바람의 세기에 따라

4분음표 8분음표로

고개를 휘저으며

낮은 음자리로

혹은

높은 음자리로 변주곡처럼 연주한다

 

가을 숲은 모두 소리의 샘이다  

 

 

♧ 까마귀 - 김태수

 

까마귀·1

 

그믐 등짐 지고 속 산 머물다

속이 밖이 타서 밤바람 몇 됫박 훔친 죄에

바람 그리메에 쫓긴다 삶이 된소리로

아픈 가슴 토하며 운다 이승에서 못다 울 울음

그대 귓밥으로 뚝뚝 떨어진다

 

 

까마귀·2

 

민둥산을 검게 칠하는 아침 해

민둥산을 검게 칠하는 저녁 해

산그늘에서 설움의 올이나 짜며 사느냐 까마귀 한 마리는

이승 한 자락 집어들지 못하고, 저승 한 모퉁

걷어올리지 못하고 이승 저승에다 양다리 놓고 멀리서

애잔히 스미는 암까막새 울음에

오늘도 먼 산 어디메 옹달샘은 술렁이는가

황량한 민둥산의 잡풀이나 흔들며

오늘도 먼 산 어디메 바람은 부는가

 

까마귀·3

 

오랜 가뭄에 반죽음한 이 들판에서는

살아 있음의 다행과 살아 있으므로 더욱

속 깊은 가뭄, 달겨드는 바람 쪽으로 술을

부었다 들판 나이테를 벗어나 어디로 나는가

우리들 허한 영혼의 까막새는

부러진 호미 조각 물고, 이 겨울을 앞지르며

 

 

까마귀·4

 

애장터 넝쿨 깊은 골짜기

비나리는 가을은 무서워 죽은 손바닥으로

새벽녘은 울음으로 서걱이는 이파리

차라리 세상 살면 뭐하노 작은 솔가쟁에다

멱서리 뒤집어 쓰고 매달려

댕강댕강 한 철을 노래하다

까마귀 구천(九天) 나는 밤에 소리 없이

살점이나 떼어 내며 흰 뼈로 누울까

삿갓무덤 서러이 두들기며 흰 뼈로나 누울까

 

까마귀·5

 

허구한 날

둥우리 곁에다 도토리 껍질 걸어 놓고

암까막새 눈물로 그득 채운 정화수

이 물 마르기 전 돌아 올려나 생의 환한 웃음은

명부(冥府) 머나먼 갈림길에서 어디로

갈까갈까 망설이는 줄 모르고

아아, 정화수 그 참한 정성을 말리며 솟는

아침 해.  

 

 

♧ 까마귀들이 날아오르는 들판을 - 허수경

 

  그 들판을 하루종일 하루종일 걸었습니다, 오늘 일용할 양식, 양식을 구하는 것도 잊어버리고.

 

  양떼들은 낮게 엎드려 부드러운 외투의시간을 살고 있었고 풀들은 제 시간을 양떼에게 내주며 이 지상, 이 지상에서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나, 사라져도 저 풀만큼의 몫도 감당할 수 없는 가련한 길짐승, 길짐승은 꾸벅거라며 그냥 바라만 보아았습니다.

 

  이만큼 없어진 풀의생애가 다시 양떼들의 시간, 시간으로 돌아올 때까지 기다리고 또 가다리고 있었습니다.

 

  까마귀들이 숨은 벌판으로 안개가, 안개가왔고 멀리서 사나운 개, 개도 울었지요.

물끄러미 지상 어느한켠, 한켠을 바라보는 가련한길짐승인 나는 집으로 돌아간양떼들이 내일, 내일, 풀의 시간을자욱이 담은 몸을 풀고 이 들판으로 돌아올 때 나의 시간, 다 내어줄 작정으로 그렇게 가만히 앉아 있었습니다.   

 

 

♧ 달과 까마귀 - 하재일

 

뚜벅뚜벅 긴 낭하를 거쳐 모든 불빛들

밤안개를 뚫고 사라집니다

지상은 너무도 음습하여

은밀한 인간의 숨소리마저 잠들고

저 하염없이 흔들던 흰 광목폭도

칠흑 같은 어둠에 잠겨 묻혀 버렸습니다

까.오.오.옥 깍 까.오.오.옥

병마개가 닫힌 진공입니다. 아니라면 온통 세상이

환청지대로 변했는지 모릅니다

깡그러진 체대에 야윈 몸

굶주린 영혼의 노오란 눈빛들 헤드라이트처럼

앞세우며, 주인 없는 나라로 귀환하는 까마귀떼여

이쯤 절망의 날개를 접으련만

간혹 피로한 깃털 몇 장도

황홀하게 잠든 숲으로 뿌려집니다

지붕 위에 맞닿은 빨래줄 전선줄 그 위에

흐르는 무수한 울음 주위로

당신들의 모든 고해성사를 드러내어

둥글게 둥글게 달무리를 만드십시오

바람이 불지 않는 나라

싸늘한 콘크리트벽 몽롱한 불면 사이로

마지막 바람소리

낮게낮게 들려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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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과 까마귀 : 이중섭 화, 종이에 유채 29×41.5c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