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나들이

화순 영구산 운주사

김창집 2012. 11. 29. 08:22

 

 

 도선국사가 하룻밤 사이에 천불천탑을 세웠다는 전설을 간직하고 있는 운주사는 나지막한 야산 분지에 있는 고려시대의 절터이다. 절을 처음 지은 연대는 정확히 알지 못하나, 고려 중기에서 말기까지 매우 번창했던 사찰로 보이며, 15세기 후반에 다시 크게 지어졌다가 정유재란으로 폐찰되었다. 운주사(雲住寺)는 ‘구름이 머무는 곳’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데, ‘배를 움직인다’는 뜻의 운주사(運舟寺)로 불리기도 한다.

 

 현재 돌부처 70구와 석탑 18기만이 남아 있으나, 조선 초기까지는 천여 구의 불상과 탑이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산과 들에 흩어져 있는 70여 구의 돌부처들은, 수십 ㎝에서 10m 이상의 거대한 돌부처까지 그 크기가 매우 다양하다. 평면적이면서 토속적인 생김새에 어색하고 균형이 잡히지 않은 신체 구조는 고려시대 지방적인 특색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석탑 또한 그 모양이나 무늬의 표현방식이 매우 독특하여, 3층·5층·7층 등 층수도 다양하다. 둥근 공 모양의 원형탑이나 호떡 모양의 돌을 올려놓은 듯한 원판형탑 등 특이한 모양의 탑도 있다.

 

 또한 탑의 표면에 ‘X’, ‘◇’, ‘川’과 같은 기하학 무늬들이 새겨 있어 특이하다. 운주사에는 누운 부처(와불)가 있어 유명하다. 도선이 천불천탑을 하룻밤에 세울 때 맨 마지막으로 와불을 일으켜 세우려고 했는데, 공사에 싫증난 동자승이 닭이 울었다고 거짓말을 하여 불상을 세우지 못하였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운주사는 특이한 돌부처와 석탑이 모두 한 절 안에 있다는 점에서 천불천탑에 대한 독특한 신앙을 보여주는 좋은 예로서 우리나라 미술사와 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곳이다. (문화유산 홈에서)  

    

 

 

♧ 도처에 부처가 내린 곳 - 정영자

   --전남 화순군 운주사에서

 

무등산 흘러내린 야트마한 천불산 산마루

와불(臥佛)은 땅에 누워

무망한 중생들

기다리고 있었네

씻고 씻은 땀방울,

솔바람으로 씻겨가는 유월,

땅 위에서도 밝게 빛나는

북두칠성 쪽바가지에

한 점 한 바람

열정을 식혔네

담도 없고 사천왕상도 없는 운주사 들어가는 길목에

둥근 석탑 7층이

가닥가닥 기원으로 올라있고

등 마주대고 앉아 계시는 두 부처님,

前, 後가 무너지는 깨우침 주시기에

운주사 가는 길

도선국사 나라 사랑의 길이 열린 곳

 

신라에서 오늘까지

석불은 70구 석탑은 18기만 남아

충절과 왕생극락정토의 기운만

조용히 내리고 있는데

이름도 모르고

연대도 밝히지 않은 무수한 민중의 불력으로

닦고 닦은 깨달음의 길

운주사 가는 길,

도처에 부처를 만나는 날이었네.

 

  

 

♧ 겨울 운주사 - 김영언

 

참으로 이상하구나

오랜 세월의 풍상 같은 몇 줌의 눈을 떠이고

일제히 허리 꺾여 낮아진 겨울 풀밭

한낱 여염 동구에 나뒹굴듯

푸석푸석 까칠한 눈 뜬 두루뭉실한 돌들도

뎅겅 목 잘려 어디론가 달아나 아예

고단했을 표정을 털고 쓰러져 있는 입석도

이곳에선 다 미륵이다

산밭갈이 보습날에 걸려 불거지는

둥글넓적 바위들 골라내 포개놓으면

이곳에선 그게 다 탑으로 일어설 것만 같다

그렇게 일어서 있는 千佛千塔아 이젠

또 누가 고단한 밤을 지새워

행여 일으키려 하지 마라, 저토록

쓰러져 있어 온전한 영혼이

어디인들 다시 있으랴

 

 

♧ 운주사에서 - 김시양

   -- 칠성바위

 

  그대에게 가는 길이 멀 때 눈 들어 비는 마음, 하늘의 일곱 별빛만 닳도록 바라보았네. 간절한 원(願)이며 망(望), 가득 담아 닳도록 바라봐도 흐려지지 않는 별빛처럼 그득한 이 가슴의 사랑 날마다 퍼주고 싶었네. 퍼주고 싶었네.

 

  우리는 하루하루 흔들리는 못난이 들풀. 그래도 지천에 흐드러지게 피었다지노라. 더 이쁘게 피어나는 꿈을 꾸는 밤이면 저 하늘의 일곱 별, 국자 되어 떠올라 가슴과 가슴을 내밀어 퍼주고 싶은 사랑. 멀대처럼 쑤욱쑤욱 자라 하늘에 닿아도 말없이 흐르는 별빛에 그만 지쳐버리는, 아 우리는 땅의 사람들. 하늘의 국자로는 퍼줄 수 없는 사랑이여.

 

  부대끼는 억새보다 더 자지러지게 흔들리는 날, 그대의 훈훈한 입김만을 그리며 일곱 별 중 가장 작은 별, 바위 구석에 쪼그려 혼자 앉아 있었을 땐, 이 바위들이 그대에게 퍼 줄 국자라는 것을 몰랐어. 몰랐었어. 더 걸어 시야가 좀 더 넓어질 때서야 가슴을 짓누르는 뜨겁고도 무거운 사랑을 나르는 도구로 각인되고

내 작은 힘을 싣고 실어도, 홀로 들 수 없어 워이 워이 소리내어 그댈 부르고 싶었다.

 

  투박하고 정겨운 얼굴의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땀으로 몸을 씻어 다듬었던 돌들이 국자가 되어, 퍼줄 수 없는 하늘의 국자 대신 여기에 놓여 있네. 들어라. 이 사랑을. 무거운 돌덩이 국자를, 혼자서 들 수 없는 이 사랑을, 모두 모여, 들어라. 힘 모아 들어 쏟아 부어라. 그립고 아쉬운 가슴들에게로

 

  사랑은 먼 별같이 소리 없이 빛나며, 밤을 건너 새벽에 닿지 못하지. 바라만 봐선 스스로 타오르며 솟아오르지도 못해. 그리고, 그리고 가까이서는 무겁게 놓인 일곱 개의 바위로만 남는 우직한 믿음뿐이지. 그대여, 그대에게 간다. 땀에 절인 옷을 맡기려

    

  

 

♧ 운주사 골짜기 - 문정희

 

화순땅 운주사 골짜기에는

돌마다 모두 피가 돌아서

긴긴 해 머리에 이고 웃고 섰더라

하룻밤에 천 불 천 탑을 세우면

극락이 이루어진다는 서원에 따라

밤새도록 돌들이 일어섰는데

그래도 천 불 천 탑이 안 돼

해남 목포 보성 돌까지

우뚝우뚝 걸어와 미륵불로 섰는데

앗! 불사

새벽에 이미 첫닭이 울었다고

누군가 거짓말을 해 버려

모두들 그대로 주저앉아 버렸다.

그래서 지금도 운주사 골짜기에는

뒹구느니 서원이오

채이느니 미륵들….

가득히 가득히 기다리고 서 있더라.

하여간 무언가를 기다리고 서 있더라.   

 

 

♧ 운주사 미륵와불전 앞에서 - 하두자

 

새벽안개 풀어 헤치며

벌판에 누워 목숨을 편다

아버지의 아버지적

삶의 마디를 호밋날고 찍어내며

가슴에 묻어 둔 눈물이

꽃으로 피어날 때까지

내 등허리 내가 찍어대며 흙뿌리 캐면

멀리 떠오르는 운주산 봉우리 햇살

머리 무거워 들지 못하고

쓰러지던 날

천둥보다 크게 울던 하늘

밭이랑 이랑 사이 용서로 눈을 감으면

꿈결로 다가오는 용화세계

깔려 죽은 풀들, 깨어나라고

자꾸 등을 치받치고 있다   

 

 

♧ 운주사 와불 - 임영조

 

  옛날 옛날 아주 먼 옛날에 키 크고 마음 착한 미남 석공과 키 작지만 요염한 공주가 한가윗날 밤 우연히 서로 눈맞아 연정을 품게 되었다 그들은 나름대로 행복한 유부남 유부녀라 아무도 모르게 사랑을 나누게 되었고 사랑이 날로 깊어질수록 한편 괴로워했다 허나 그들은 마침내 야반도주를 모의하고 배 한 척을 마련하려 백방으로 뛰었다 하늘도 그 애틋한 순애에 감복하여 이 세상 아닌 딴 세상에 가서 행복하게 살라고 구름배 한 척을 내려주었다

 

  그들은 사랑에 부픈 돛을 올리고 세상 밖으로 밤낮없이 노를 저었다 그러나 비바람 몰아치던 칠석날 저녁 그들의 배는 북두칠성 모서리에 부딪쳐 화순군 도암 들녁에 추락하고 말았다 그들의 육신과 배의 잔해는 땅에 떨어지면서 크고 작은 부위로 굳어 도처에 널려졌다 하늘은 덫으로 놓아둔 북두칠성에 좌초된 것을 못내 가엾게 여겨 칠석날 저녁이면 일곱별을 내려 곡하게 하고 비를 뿌렸다 그리고 천상의 석공들을 내려보내 천일동안 밤도와 그들의 석상을 세우게 하고 배의 잔해로 천불천탑을 완성하라 명했다

 

  드디어 완성된 석상을 막 세우려는데 어디선가 갑자기 새벽닭이 울었다 그 소리에 놀란 석공들은 그만 서둘러 하늘로 올라가 버렸다 그래서 지금도 운주사 영구산 마루 양지녁에는 그 석공과 공주가 금실좋은 와불로 누워 세상 밖으로 갈 구름배 한 척 기다리고 있다 곧 나란히 일어날 듯 상체 약간 비스듬히 쳐든 채 지성도 지극하면 성불하는가?

 

 

♬ 천수경 - 삼보사(三寶寺) 카페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