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김경훈 강정시편

김창집 2012. 11. 30. 00:15

 

김경훈의 강정시편

‘강정은 4.3이다’가 나왔다.

 

제주작가회의와

놀이패 한라산 회원인 그는

 

강정마을 사람들과

6년 동안 아픔을 같이 나누고 있다.

 

시집으로 ‘운동 부족’, ‘우아한 막창’,

‘고운 아이 다 죽고’, ‘한라산의 겨울’,

‘삼돌이네 집’, ‘눈물밥 한숨 잉걸’ 등이 있고,

 

마당극 대본집으로 ‘살짜기 옵서예’

강정관련 문편 ‘돌멩이 하나 꽃 한 송이도’ 외

일본어판 시집, 4.3연구서 등을 냈으며,  

현재 제주4.3 추가진상조사단에서

전문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시 몇 편을 골라

돈나무 열매와 함께 올린다.  

 

 

♧ 자존을 위하여

 

누가 강정이 4·3 아니라고 하는가

 

눈 못 감고 죽어간 영령들이

부릅뜬 눈으로 강정을 호곡하고 있는데

 

누가 감히 강정을 4·3 아니라고 말하는가

 

4·3에서 평화와 인권을 배웠다는 이들이여

인권이 낭자히 유린되고 평화가 유혈로 깨지는데

 

왜 강정은 4·3이 아니라고 하는가

제주의 자존이 구겨진 휴지처럼 뒹구는데

방관과 안일로 역사의 무덤을 파는 자들이여

 

그 무덤엔 후손들이 풀 하나 뽑지 않을 터이니

4·3을 거느려서 화해와 상생을 말하지 말라

 

왜 강정이 4·3인지도 모르는 이들이여  

 

 

♧ 다른 점 하나

 

어디로든 길이 막혀 온통 절망과 죽음뿐이던

그 4.3과는 달리

강정은 최악의 상황에서도

희망을 노래하고 평화를 춤춘다

구럼비 바위 속 흐르는 할망물 더불어  

 

 

♧ 법은 가진 자의 이익이다

 

우리는 먼저 인간이어야 하고, 그 다음에 국민이어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법에 대한 존경심보다는 정의에 대한 존경심을 기르는 것이 바람직하다. 내가 떠맡을 권리가 있는 나의 유일한 책무는, 어떤 때이고 간에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일을 행하는 일이다.

  -헨리 D. 소로우

 

예난 제나

법은 가진 자의 편이다

법의 여신이 재는 것은 진실의 형평(衡平)이 아니라

그들의 이익으로 눈금을 미리 당긴다

보라, 오늘 강정의 모든 판결을

 

그래서 4.3 때도 항상 탄피수보다 죽음이 더 많았다

법의 지엄한 그 원칙대로  

 

 

♧ 미국

 

4.3때

미군정은,

 

“사건의 원인에는 흥미가 없다,

나의 사명은 진압뿐이다!”

 

지금

미국은,

 

“지들끼리 싸우든 말든,

다만 우리 지시대로 기지를 만들면 된다!”  

 

 

♧ 의義, 양윤모*

 

강정 구럼비와 미타쿠예 오야신**

삶과 죽음을 같이 하는 사람이 있다

 

옳지 않은 일을 우겨대는 것들에 맞선

목숨 건 창의倡義의 단식

 

모든 생명을 위해 자신을 던져

그대로 역사가 되려는 사람이 있다

 

이 시대 야윈 의義의 부활을 위하여

스스로 야위며 바위가 되려는 의인義人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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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양윤모 : 영화평론가. 해군기지 건설공사를 막으려다 2차 구속된 후 무려 71일간의 ㄷ나식을 결행했다. 3차로 구속되자 옥중에서 40일 넘게 단식을 이어갔다.

** 미타쿠예 오야신 : ‘우리는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라는 뜻으로 아메리카 인디언 라코타족의 말.

    

 

♧ 이 펜스를 걷어라

 

이 펜스를 걷어라

이 비열한 야만의 장막을 걷어라

너희가 세운 이 흉물 너희 손으로 걷어라

 

이 펜스를 걷어라

너희가 너희 스스로를 묶지 않으려거든

이 더러운 폭력의 장벽을 당장 걷어라

 

이 펜스를 걷어라

너희가 제 명대로 살고 싶거든

이 천박한 야욕의 산성을 냉큼 걷어라

 

이 펜스를 걷어라

돌멩이 하나가 구럼비 되어 일어서고

꽃 한 송이가 거대한 덩굴로 물결치리니

 

이 펜스를 걷어라

너희 굳은 심장에 가 박히기 전에

너희가 박은 이 말뚝 너희 스스로 걷어라

 

 

♧ 다랑쉬굴과 강정

 

20년 전,

다랑쉬굴에서 4.3유해가 발견되었을 때,

당시 도지사는,

뼈 하나만이라도 주면 양지바른 곳에 고이 안장하겠다는,

유족들의 바람을 외면한 체,

화장해서 바다에 뿌려버렸다.

정보기관의 압력이 있었다고 한다.

 

오늘,

제주의 자존이 휴지처럼 구겨져 바람에 뒹구는데도,

현 도지사는,

해군기지 공사중단을 요구하는 강정주민들의 염원을 못 들은 척,

시간만 질질 끌고 있다.

정부당국의 압력이 있다고 한다.

 

역사에 남을 결단을 내리지 못한다면,

오늘, 다랑쉬굴을 바라보면서 아무도 도지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것처럼,

내일, 강정을 바라보면서 어느 누구도 도지사를 추앙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제주도지 어느 구석쯤에

다랑쉬와 강정의 미욱한 도지사가 같은 인물이라고 적혀 있을 뿐이다.   

 

 

♧ 역사를 산다는 것

 

오늘의

강정은 역사적 현실이다

눈앞에서 역사가 쌓여가고 있다

우리의 의로운 족적이 그대로 역사가 된다면

먼 훗날

강정은 평화의 진원지라고

후손들은 또랑또랑 역사를 읽을 것이다

제주4.3의 정의(正義)의 역사가

그대로 미래의 평화인 것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