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에 보내는 차나무꽃
낮에 원고 정리하며
방송에서 ‘동지! 동지!’ 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
생각해 보니 오늘이 동지라
동지에 관한 시를 찾아본다.
오름 원고 마지막 분을 드디어 보내놓고
몸을 추스린다고 몇 달만에
별도봉으로 달려가다가
국립제주박물관 북쪽 화단에서
아직도 지지 않은 차나무 꽃을 보았다.
나무도 시원치 않고
위치도 북쪽 그늘이다 보니
이제야 피었나 싶다.
얼마 없어 새해가 다가오는데--.
♧ 동짓날 밤이 오면 - 김내식
호롱불 심지 끝에
하늘하늘 타는 불꽃
뚫어진 문틈으로 들어 온
황소바람에 흔들리고
아랫목은 아이들 차지
청솔가지 매운 연기에
눈물 짖는 어머니
샛노란 주둥이 떠올리며
새알 내알, 보글보글
팥죽 끓는다
윗목에 새끼 꼬던 아버지
귀신이 싫어하는 붉은 죽을
헛간, 굴뚝, 변소 간
두루 다니며 뿌려
액운을 몰아낸다
날마다 먹는 죽
밥 달라고 투정하면
새알을 안 먹으면
나이가 제자리라니
호호 불어 식혀 먹는다
하늘나라에 눈발이 흩날리고
문풍지 부르르 떠는
동짓날 밤이 오면
산에 계신 우리 부모님
더욱 그립다
♧ 동지 - 김상현
새벽녘까지 잠이 없는 밤엔
찬 서리 내리는 뜨락에 나와
새벽달 보듯 하려고
남겨둔 홍시를
무슨 원한이 깊기로
저리도 찍고, 찢고, 헤집어서
내장만 걸어두었는지
까치소리 요란한 아침은
어수선한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섣달 감나무 피투성이 듯
나는 또 뉘 마음을
그렇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생각하느라 뒤척이는 밤이면
까치소리 마냥 요란한 나날들에 대한
참회가 깊다.
♧ 동지섣달 - 한재만
무성영화의 푸른 필름들이 먼저
하얀 달빛에 빼앗기고 있어요
타다 남은 붉은 노을빛이 길을 잃고
벌거벗은 기억의 살 몇 점마저
길섶 질경이의 뿌리 아래에서
방황해요, 얼굴 없는 바람의 검이 쏜살같이
우리들의 건강한 입맞춤을 가르고
아버지의 아버지 적 풍장이 입을 벌려
한 점 점액을 강탈해 가요
칼바람을 토해 내며
거구로 일어서는 저 어둠의 수렁,
봄은 아직도 기별이 없어요
♧ 동지 팥죽에 비친 삶 - 하영순
김치에 된장찌개
평생을 길 드려진 혀
어쩌다 한번 맛본 외식
아련한 미각도 한두 번
느끼하고 느글거려
담백하고 깔끔한 김치 맛을 돌아본다
외식에 의존하는
직장 생활
때만 되면 어찌 괴롭지 않으리
보글보글 끓는 된장 냄새
사랑이 있고
너그러움이 있는 아늑한 주방
그 속에서
몇 해를 보냈던가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두 손 모아
참회 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새알을 비빈다
♧ 동지(冬至) - 김옥자
첫눈이 펑펑 내리는 동짓날
마음은 이미
고향 언덕으로 달려가
포근한 어머님 품에 안긴 듯
깊은 밤 참새처럼 지저귀며
구들목에 모여 앉아
형제들끼리 지지고 볶고
함께 즐겨먹던 팥죽의 별미
천지신명님께 조상님에게
자식들의 앞길에
식구들의 건강을 사업의 번창을
빌고 또 비시던 어머님생각
꽁꽁 얼어붙은 길고 긴 이 밤
봄을 기다리는 마음
우리의 미래에 호화로운 삶보다
소박한 꿈을 키우고 싶어요
♧ 동짓날 - 김지하
첫봄 잉태하던 동짓날 자시
거칠게 흩어지는 육신 속에서
샘물 소리 들려라
귀 기울여도
들리지 않는 샘물 소리 들려라
한 가지 희망에
팔만사천 가지 괴로움 걸고
지금도 밤이 되면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날 뿐
아무것도 없고
샘물 흐르는 소리만
귀 기울여 귀 기울여 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