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동지에 보내는 차나무꽃

김창집 2012. 12. 21. 00:40

 

낮에 원고 정리하며

방송에서 ‘동지! 동지!’ 하는 소리를 들은 것 같아

생각해 보니 오늘이 동지라

동지에 관한 시를 찾아본다.

 

오름 원고 마지막 분을 드디어 보내놓고

몸을 추스린다고 몇 달만에

별도봉으로 달려가다가

국립제주박물관 북쪽 화단에서

아직도 지지 않은 차나무 꽃을 보았다.

 

나무도 시원치 않고

위치도 북쪽 그늘이다 보니

이제야 피었나 싶다.

얼마 없어 새해가 다가오는데--.  

 

 

♧ 동짓날 밤이 오면 - 김내식

 

호롱불 심지 끝에

하늘하늘 타는 불꽃

뚫어진 문틈으로 들어 온

황소바람에 흔들리고

아랫목은 아이들 차지

 

청솔가지 매운 연기에

눈물 짖는 어머니

샛노란 주둥이 떠올리며

새알 내알, 보글보글

팥죽 끓는다   

 

 

윗목에 새끼 꼬던 아버지

귀신이 싫어하는 붉은 죽을

헛간, 굴뚝, 변소 간

두루 다니며 뿌려

액운을 몰아낸다

 

날마다 먹는 죽

밥 달라고 투정하면

새알을 안 먹으면

나이가 제자리라니

호호 불어 식혀 먹는다

 

하늘나라에 눈발이 흩날리고

문풍지 부르르 떠는

동짓날 밤이 오면

산에 계신 우리 부모님

더욱 그립다 

 

 

♧ 동지 - 김상현

 

새벽녘까지 잠이 없는 밤엔

찬 서리 내리는 뜨락에 나와

새벽달 보듯 하려고

남겨둔 홍시를

무슨 원한이 깊기로

저리도 찍고, 찢고, 헤집어서

내장만 걸어두었는지

까치소리 요란한 아침은

어수선한 마음으로 집을 나선다

 

섣달 감나무 피투성이 듯

나는 또 뉘 마음을

그렇게 만들지는 않았는지

생각하느라 뒤척이는 밤이면

까치소리 마냥 요란한 나날들에 대한

참회가 깊다. 

 

 

♧ 동지섣달 - 한재만

 

무성영화의 푸른 필름들이 먼저

하얀 달빛에 빼앗기고 있어요

타다 남은 붉은 노을빛이 길을 잃고

벌거벗은 기억의 살 몇 점마저

길섶 질경이의 뿌리 아래에서

방황해요, 얼굴 없는 바람의 검이 쏜살같이

우리들의 건강한 입맞춤을 가르고

아버지의 아버지 적 풍장이 입을 벌려

한 점 점액을 강탈해 가요

칼바람을 토해 내며

거구로 일어서는 저 어둠의 수렁,

봄은 아직도 기별이 없어요   

 

 

♧ 동지 팥죽에 비친 삶 - 하영순

 

김치에 된장찌개

평생을 길 드려진 혀

어쩌다 한번 맛본 외식

 

아련한 미각도 한두 번

느끼하고 느글거려

담백하고 깔끔한 김치 맛을 돌아본다

 

외식에 의존하는

직장 생활

때만 되면 어찌 괴롭지 않으리

 

 

보글보글 끓는 된장 냄새

사랑이 있고

너그러움이 있는 아늑한 주방

 

그 속에서

몇 해를 보냈던가

지나온 삶을 돌아보며

 

두 손 모아

참회 하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새알을 비빈다

    

 

♧ 동지(冬至) - 김옥자

 

첫눈이 펑펑 내리는 동짓날

마음은 이미

고향 언덕으로 달려가

포근한 어머님 품에 안긴 듯

 

깊은 밤 참새처럼 지저귀며

구들목에 모여 앉아

형제들끼리 지지고 볶고

함께 즐겨먹던 팥죽의 별미

 

천지신명님께 조상님에게

자식들의 앞길에

식구들의 건강을 사업의 번창을

빌고 또 비시던 어머님생각

 

꽁꽁 얼어붙은 길고 긴 이 밤

봄을 기다리는 마음

우리의 미래에 호화로운 삶보다

소박한 꿈을 키우고 싶어요   

 

 

♧ 동짓날 - 김지하

 

첫봄 잉태하던 동짓날 자시

거칠게 흩어지는 육신 속에서

샘물 소리 들려라

귀 기울여도

들리지 않는 샘물 소리 들려라

 

한 가지 희망에

팔만사천 가지 괴로움 걸고

 

지금도 밤이 되면 자고

해가 뜨면 일어날 뿐

 

아무것도 없고

샘물 흐르는 소리만

귀 기울여 귀 기울여 들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