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이트 크리스마스
영실로 한라산에 다녀왔습니다.
엊저녁 주(酒)님을 매우 가까이 하여
힘들 거라 생각했었는데
일찍 일어날 수 있어서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갔습니다.
처음에는 좀 힘들었으나
눈앞에 눈경치가 펼쳐지면서부터
마구 찍느라 손 시린 것도 잊을 정도였습니다.
한 줄기 햇빛이 내려 한라산 정상을
반짝 비쳐주는 걸 바랐는데
안개가 많이 껴서 불편했고,
그렇지만 즐거웠습니다.
여러분께서도
좋은 날 보내고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눈이 내린 좋은 성탄절
주님의 은총이 가득하길 기원합니다.
♧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그리며 - (宵火)고은영
건널목 가로등 밑에서 올려다보는 빛의 출구에
나풀거리는 눈꽃들이 깃털처럼 뺨에 젖어들고
갓 구어 낸 붕어빵을 가슴에 안고
어린 아이처럼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그린다
그 아늑한 동화의 먼 세상
점점 깊어지는 새벽의 냉기 속을
경찰차가 지나고 있다
그 뒤를 제설차가 뒤 따르고
택시가 지나고 흰색 승용차가 지나고
114번 버스가 뒤뚱거리며 달려오고 있다
저 버스의 승객들도
슬픔과 기쁨이 교차하는 하루치 무량한 감회를 안고
눈 내리는 정거장에서
부황든 슬픔의 여정을 내려놓고 싶은
축복의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꿈꾸는지도 모른다
♧ 화이트 크리스마스 - 임영준
언제나 고대하던
화이트 크리스마스
호롱불 자락 사부작
스며드는 그 갈피
구원의 손길인 양
때만 되면 찾게 되는
벌거벗은 추억들
그림자가 짙은 만큼
지우고 싶은 만큼
지상에서 영원으로
새하얀 합창이 된다
상처받은 사람들이나
허물에 묻힌 이들에게
은총 가득 새 빛으로
거듭나게 하라
체온 고루 나누어
세상을 안도케 하라
♧ 화이트 크리스마스 - 김용화
그 겨울, 원고 마감을 앞두고 연탄불도 꺼진 춥고 우울한 방안에 식은 풀빵처럼 담겨 밤을 밝히다 깜박 잠이 들고 말았습니다. 첫닭이 울 무렵 눈을 떠 보니 하늘에서 내려온 천사가 머리맡에 옹크리고 앉아 깨알같이 예쁜 글씨로 작품을 막 완성해 놓고 환히 한 번 웃어보이며 하늘로 날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얼마나 힘에 부쳤으면 그녀의 귀밑머리가 하얗게 세어 있었을까요. 눈이, 하얀 눈이 소복이 쌓이는 크리스마스 가까운 밤이었을 것입니다.
♧ 화이트 크리스마스 - 임혜신
보라, 바람이 부는 소리를
빨강머리, 노랑머리, 검은머리 머리 위에
쏟아지는 눈발을
적게 사랑한 자에겐 적게 사랑한 대가를
너무 많이 사랑한 자에겐 너무 많이 사랑한 대가를
거짓 사랑을 한 자에겐 거짓 사랑을 한 대가를
지순한 사랑을 한 자에겐 지순한 사랑을 한 대가를
내게는 내가 사랑한 내 사랑의 대가를
그대에겐 그대가 사랑한 그대 사랑의 대가를 내려주는
보라, 두려움 없는 검은 눈동자 속의 예수
싱싱하고 거친 공정함의 거대한 입술,
그 입술 속으로 사라지는 우리들 사랑의 싸늘한 증거
무죄의 새하얀 바람소리를..
♧ 독도의 화이트 크리스마스 - 오정방
유독 울릉도와 독도에만 눈이 내린다
화이트 크리스마스를 기다리는 도시들을
훌쩍 지나고 또 건너 뛰어서
마침내 거기까지 날아간 흰눈이
바로 여기다 하고 내려 앉는 곳이 독도다
마치 손바닥만한 하늘 조각들이
저마다 한가지씩 소망을 담고
나비처럼 너울 너울 춤을 추다가
대부분 푸른바다에 잠수하여
끝내 솟아 오르지조차 못하는데
더러는 섬위에 안착해 뭉쳐서
아름다운 설국을 지었다
그 흔한 징글벨소리 들리지 않아도
바람소리 윙윙 찬송처럼 들려오고
파돗소리 철석 철석 장단 맞추니
축복의 섬 독도는 외롭지 않다
영광의 섬 독도는 서럽지 않다
2004년 주 오신 날,
독도는 지금 화이트 크리스마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