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재만의 ‘귤 빛깔 향기展’(1)
주황색 화가 고재만 화백의
‘귤 빛깔 향기展’이
지난 11월 16일(월)부터
오는 2013년 1월 22일간
서귀포시 월라봉 아래에 있는
감귤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열리고 있다.
고재만 화백은
현재 한국미술협회 제주지회 자문위원
제주수채화협회원, 제주도전 초대작가로
지금까지 개인전 4회를 했는데,
3회 때 ‘귤 빛깔 이미지전’
4회 때 ‘귤사랑’전을 가진 바 있다.
*귤 사랑-행복/45.5×37.9cm, 캔퍼스천+오일칼라.2011.
♧ 내밀한 사랑 - 서지월
내가 시를 쓰는 일이나
당신이 밥 짓고 빨래하는 일이나
보람은 같고 보면
우리가 남몰래 사랑하는 일이나
감귤 밭에 감귤이 향그럽게 익어가는 일
또한 같은 거라면
기러기처럼 줄지어 날아가다가
형체도 없이 뿔뿔이 흩어지는 몸 될 때
당신은 어쩌겠나?
사랑의 깊이만큼 하늘은 푸르러
보이지 않는 아득한 높이에서
영혼끼리 만나서 구름으로 떠돌다가
다시 시냇물로 만나 흐르더라도
내 얼굴 당신 잊지 못하고
당신의 얼굴 내 잊지 못하겠네
*귤사랑-이어도 소리/53.0×41.0cm, 캔퍼스천+아크일릭, 오일칼라.2011.
♧ 한 끼 밥과 귤 한 접시 - 김종제
전깃불로 따뜻하게 데워놓은
한 끼 밥 잘 먹고 나니
날카로운 칼로 반으로 토막난 채
후식으로 나온 귤 한 접시
살갗도 몸속도 온통 노오랗다
너를 보는
나의 눈이 순식간에 노랗게 변하고
너를 집어 드는 내 손도
어느새 노랗게 감염이 되었다
내 머리 속의 뇌 속의 신경조직과
내 안을 일년 삼백육십오일 돌고 도는
피 속의 적혈구와 백혈구와
나를 벌떡벌떡 뛰어다니게 만드는 심장까지
노오랗게 만드는
너는 어디에서 온 것일까
어디로 가려고 하는 것일까
*귤사랑-길소리/50.3×38.2cm, 판재+오일칼라.2011.
둥근 접시위에 놓인 귤이
붉게 달아오른 태양을 닮았다
지구라는 혹성 속에서 뜨겁게 타오르는
핵을 닮았다
땅덩어리 껍질을 파헤치고 나니
내 손안에 든 달콤한 귤 하나가
통과의례처럼
입속으로 들어가면서
목구멍을 지나가면서
밥통을 거치면서 창자를 통과하면서
나뉘어진 모든 경계를 지우면서
먼저 먹었던 흰 밥마저
샛노랗게 물들이면서
접시에 담긴 저 귤은
죽음의 길목까지
뒤도 돌아보지 않고 행진하는 것이다
*'오 -귤사랑' 부분B, 판재, 캔퍼스천+오일칼라.2011.
♧ 귤나무 하나 - 정민호
귤나무에 귤이 열렸다.
겨울의 눈보라를 참고
여름의 따가운 햇살을 견뎌온 數三年수삼년,
겨우 한 개의 열매가 달렸다.
귤이 淮水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는데
바다를 건너 온 濟州産제주산 귤나무가
제주의 파도소리가 출렁이는
탱자가 아닌 귤이 열렸다.
너를 보기 전에는
평범한 한 그루의 나무,
네가 있으므로 너는
귤나무가 되었다.
겨울의 눈보라를 참고
여름의 따가운 햇볕을 견뎌온 數三年수삼년,
귤나무에 한 개 귤이 달렸다.
*귤사랑-시작/52.0×39.0cm, 판재+아크릴릭, 오일칼라.2011.
♧ 귤의 체온 - 이생진
귤은 겉보다 속이 차다
노크도 없이 문을 연 때문인가
귤은 손보다 가슴이 차다
손 탈 염려 같은 것
꿈에도 생각지 않고
찢고 들어온 흉적에 겁먹어
오들오들 떠는 것인가
귤은 겉보다 속이 슬프다
*귤사랑-귤이미지(2)/72.7×60.6cm, 판재+아크릴릭, 오일칼라.2011.
♧ 귤 - 나태주
시장바닥에 흐드러지게 나와 팔리는
귤을 보면 슬퍼진다
옛날에 그 귀하던 것이 저러이
흔전만전 나와 푸대접을 받고 있구나
저것들 키운 농부의 노고는 오죽했으면
저것들 팔기 위해 떨고 있는
아주머니의 추위는 또 얼마나 모질었으랴
더구나 저것들 키운
제주도의 햇볕은 얼마나 또
빛나고 눈부셨으랴.
*귤 빛깔 향/45.5×38.0cm, 판재, 아크릴릭, 오일칼라.2008.
♧ 귤 - 최범영
누이가 건네는 귤에는
어릴 적 추운 날
뒤뜰 독에서 퍼온 고욤 맛이 난다
어머님 같은 누이가
아파할 때 난 힘이 돼주지 못해
과일 한 상자를 건넸을 뿐
누이를 찾을 때면 텃밭에서 거둔
김칫거리며 호박을 주고도 모자라
잘 먹고 사는데도 옥수수기름이며 감자
먹어봐라 굶지는 않나 바리바리 싸준다
그때마다
흰 눈이 뒤덮여 나서기도 싫은 추운 날
누이가 선뜻 나서 뒤뜰에 나가
가족들 먹으라 퍼온 고욤 먹던 때로
돌아가게 한다
누이가 건네는 귤에는
그래서 고욤 맛이 난다
*오렌지 빛 향연/40.9×31.8cm, 판재, 캔퍼스천+아크릴릭, 오일칼라. 2008.
♧ 귤 - 이생진
귤은 사과보다
더 시적이다
칼로 위협하지 않아도
옷을 훌훌 벗고
칼을 대기 전에
제 몸을 갈라 버리는 열녀
귤은 시적(詩的)이어서
아프지 않다
*귤사랑-속삭임/50.6×37.3cm, 켄트지+수채, 크래파스, 오일칼라.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