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제주작가 겨울호의 시조

김창집 2013. 1. 8. 00:33

 

이 석상들은 신들의 고향에 전시된 것들.

‘신들의 고향’은 조천읍 선흘리 1818번지 세

계자연유산 거문오름 주변에 위치한 신화공원으로

서양화가 김재경 선생의 제주 현무암의 결을 그대로 이용하여

신화 속에 등장하는 신들의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들을

주변에 어울리게 배열해 놓은 곳이다.

지금 전시실에는 굿에 사용하는 종이를 접은 기메전시를 하고 있으며,

제주 무속에 사용되는 여러 가지 도구를 전시한 전시실도 있다.

 

 

♧ 대추나무가 하는 말 - 오영호

 

나의 빈 가지에 허기 진 참새들이

짹짹 짹 울음소리 심어놓고 떠난 자리

하얀 꽃 무리지어 피더니

파란 멍울 맺혔다.

 

‘허 허, 잘 달렸어’

‘너무 좋아하지 마

폭풍우 몰아치면 작살이 나버리거든

하늘이 도우지 않으면

농사일도 헛일이야.’

 

지난해도 그랬듯이 단 한 번의 태풍에

작살 난 사지(四肢) 끝에

남은 몇 톨 그 울음소리

빨갛게 단맛을 돋우는

구월 햇살이 고맙구나.

 

 

♧ 순천만의 갈대 - 장영춘

 

강과 바다가 손잡고도

널 붙잡지 못했네

 

사계절 무릎 한번

꺾지 못한 그곳에서

 

방지턱 열다섯 번씩 넘으며

되돌아간

순천만 가을

 

차마 눈빛조차 내려놓지 못한 갈대숲

오늘도 차려놓은 밥상 앞에

그는 아직 도착 못했네

 

해 질 녘

저 흑두루미

바람 등지고 서성이네 

 

 

♧ 십일월의 담쟁이 - 이애자

 

수은주 눈금에 고춧가루 끼어도 좋다

짬 내어 손을 보태는 우리 동네 부녀회원들

김장은 손맛이라나, 얼얼해진 손바닥

 

 

♧ 공중화장실 - 이애자

 

배설과 비움이 다르다는 걸 깨닫길

가글가글 민중의 뒤처리 달게 삼키며

큰 입에 미소를 머금은 저기 성자가 계신 곳  

 

 

♧ 우리집 동백꽃 - 한희정

 

‘참는 게 이기는 거다. 다들 그리 사는 거다’

 

사십여 년 교직생활

아버지 한 말씀에

 

꾹 참고 앞치마 털며

부엌으로 가는 여자

 

애써 외면해도 피운 만큼 아픔인 걸,

 

꽁한 맘 애써 풀며

붉은 입술 그리면

 

동백꽃 눈처럼 쏟아져

푸짐하다 아침상.  

 

 

♧ 미스킴라일락 - 김진숙

 

들리네요, 화분 속에

또각,

또각,

하이힐 소리

 

눈물로 피고 지던

기지촌의 꽃밥 한 술

 

미스 킴 혼혈의 언니,

라일락이

웃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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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해방직후 식물 채집가 미러 교수가 북한산에서 수수꽃다리 종자를 채집,

미국으로 건너가 개량하여 만들어진 꽃.

    

 

♧ 마지막 잎새 - 김영숙

 

임종 무렵 숙모 가슴

저렇게 붉었을까

 

집 나가 십 년 무소식

둘째 놈이 올까봐

 

외가댁

늙은 감나무

마지막 잎

쥐었네.  

 

 

♧ 우리 어멍 - 강봉수

 

빛에 검질메멍 다섯 성젤 키와신디

밤마다 부려 논 흑짐이 짐이라

고왓던 양지 지울어 주름져도 보름이네

 

각지불 싸가멍 불 힌 날 몇 해던가

개역에 보리밥 레가 반찬이던

십년 때 묻은 기억 오라동의 미스코리아

 

지둘려도 시 오지 않는 소식 잇신고라

멘날 냑 올렛질에서 누겔 지들리나

손폰을 앗닥 더껏닥 날 히는 우리 어멍

      

 

♧ 강정 1 - 김영란

  --붉은발말똥게

 

갑론을박 사각지대에

비워둔 말풍선처럼

불가피한 시간들이

뼈만 앙상해질 무렵

우,

두,

둑,

이빨을 갈며

집게발을

드는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