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새해를 맞는 수선화

김창집 2013. 2. 11. 00:53

 

떡국 한 그릇 비우셨나요?

분주했던 설날이 지났습니다.

모처럼 고향 땅을 찾아

마지막 제를 올렸습니다.

 

지금 한림공원에는

이 수선화와 제주수선화가

가득 피어 꽃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매화 그리고 유채꽃도 얼려

추위 속에서 꽃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동백꽃과 백묘국도 한창입니다.  

 

 

♧ 수선화, 그 환한 자리 - 고재종

 

거기 뜨락 전체가 문득

네 서늘한 긴장 위에 놓인다

 

아직 맵찬 바람이 하르르 멎고

거기 시간이 잠깐 정지한다

 

저토록 파리한 줄기 사이로

저토록 환한 꽃을 밀어올리다니!

 

거기 문득 네가 오롯함으로

세상 하나가 엄정해지는 시간

 

네 서늘한 기운을 느낀 죄로

나는 조금만 더 높아야겠다

 

 

 

♧ 수선화 - 박인걸

 

눈이 아리도록 고와도

사랑해 줄 이 없으면 고독해

목을 길게 빼들고

오늘도 누구를 기다리는가.

 

그리움이 차오르면

얼굴은 점점 야위어 가고

소슬 바람에도

힘없이 스러질 것만 같다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을 왈칵 쏟을 것만 같은

돌담 아래 외로이 서 있는

수선화 닮은 여인아  

 

 

♧ 수선화 · 2 - 소양 김길자

 

언 가슴 뚫고

고결한 자태로 피우기에

눈물겹도록 신비스럽다

 

겨우내

깊이 묻어둔 그리움

보여주지 않더니

 

산상에 봄 부르는 소리

매서운 바람 품어

향기로 자존심 세우는구나.   

 

 

♧ 수선화 - 이남일

 

길을 떠나면 언제나

떠나온 곳은 반대쪽에 있습니다.

강을 건너면

들꽃은 반대쪽 강변에서 멀어지고

긴 밤 기다림도 새벽과 함께

맞은 편 산모퉁이를 돌아갑니다.

산다는 것

함께하면 멀어지고

다가가면 기쁨입니다.

멀어져서 활짝 피어나는 수선화

그리울 때마다

강 건너 물안개를 뚫고

그대는 눈부시게 다가옵니다.

길을 떠나면 출발점은 멀어지지만

돌아볼 때마다 다가오는

그대는 사랑입니다.   

 

 

♧ 수선화에게 - 이민영

 

하늘과 땅 사이에는

그대가 살고 있다

그대라는 소망하는 것 들로

 

그래서 통 털어서 파란 하늘을 머금고

하얀 진 초록을 닮아 온

온 세상의 여인이며

그대를 닮아서

사모하는 여인이며

모든 세태 벗기고 씻어도

그대에게는 이르지 못 할 것 같은

 

하늘 한 가운데 순백純白하여

가믈거리는 빛의

청순이라는 이름의

 

삼 백 예순 날을 지고도

그 겨울날 달 빛을 머금어

그대라는 이름으로 내 얼굴 적셔준

단 한 분의 여인이여

 

그대 한 분으로

나의 겨울날은 그리움으로 행복했나니

    

 

 

♧ 수선화 - 素光 김성돈

 

따스한 햇살의 사랑 받으며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꽃

찾아오기까지

하얀 눈 속에서

꽁꽁 얼어붙은 고난의 세상을

그윽한 향기로 지키는 雪中花

 

회색 빛 계절에도

초록빛 삶의 모습 잃지 않고

자신만의 자존심

끝끝내 지키려는 몸부림

 

자만의 삶이 불러일으킨 종말

너만은 깨닫고 있으리니,

이제와 한겨울을 지키는

고아高雅한 모습이

그지없이 순수하기에

 

세상에 홀로 서 있어도

붉은 노을에 곱게 물든

황금빛 모습 바라보며

너만의 향기를

온 마음에 함께 품으니

차가운 세상도

참으로 아름답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