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를 맞는 수선화
떡국 한 그릇 비우셨나요?
분주했던 설날이 지났습니다.
모처럼 고향 땅을 찾아
마지막 제를 올렸습니다.
지금 한림공원에는
이 수선화와 제주수선화가
가득 피어 꽃축제를 열고 있습니다.
매화 그리고 유채꽃도 얼려
추위 속에서 꽃잔치를 벌이고 있습니다.
동백꽃과 백묘국도 한창입니다.
♧ 수선화, 그 환한 자리 - 고재종
거기 뜨락 전체가 문득
네 서늘한 긴장 위에 놓인다
아직 맵찬 바람이 하르르 멎고
거기 시간이 잠깐 정지한다
저토록 파리한 줄기 사이로
저토록 환한 꽃을 밀어올리다니!
거기 문득 네가 오롯함으로
세상 하나가 엄정해지는 시간
네 서늘한 기운을 느낀 죄로
나는 조금만 더 높아야겠다
♧ 수선화 - 박인걸
눈이 아리도록 고와도
사랑해 줄 이 없으면 고독해
목을 길게 빼들고
오늘도 누구를 기다리는가.
그리움이 차오르면
얼굴은 점점 야위어 가고
소슬 바람에도
힘없이 스러질 것만 같다
건드리기만 해도
눈물을 왈칵 쏟을 것만 같은
돌담 아래 외로이 서 있는
수선화 닮은 여인아
♧ 수선화 · 2 - 소양 김길자
언 가슴 뚫고
고결한 자태로 피우기에
눈물겹도록 신비스럽다
겨우내
깊이 묻어둔 그리움
보여주지 않더니
산상에 봄 부르는 소리
매서운 바람 품어
향기로 자존심 세우는구나.
♧ 수선화 - 이남일
길을 떠나면 언제나
떠나온 곳은 반대쪽에 있습니다.
강을 건너면
들꽃은 반대쪽 강변에서 멀어지고
긴 밤 기다림도 새벽과 함께
맞은 편 산모퉁이를 돌아갑니다.
산다는 것
함께하면 멀어지고
다가가면 기쁨입니다.
멀어져서 활짝 피어나는 수선화
그리울 때마다
강 건너 물안개를 뚫고
그대는 눈부시게 다가옵니다.
길을 떠나면 출발점은 멀어지지만
돌아볼 때마다 다가오는
그대는 사랑입니다.
♧ 수선화에게 - 이민영
하늘과 땅 사이에는
그대가 살고 있다
그대라는 소망하는 것 들로
그래서 통 털어서 파란 하늘을 머금고
하얀 진 초록을 닮아 온
온 세상의 여인이며
그대를 닮아서
사모하는 여인이며
모든 세태 벗기고 씻어도
그대에게는 이르지 못 할 것 같은
하늘 한 가운데 순백純白하여
가믈거리는 빛의
청순이라는 이름의
삼 백 예순 날을 지고도
그 겨울날 달 빛을 머금어
그대라는 이름으로 내 얼굴 적셔준
단 한 분의 여인이여
그대 한 분으로
나의 겨울날은 그리움으로 행복했나니
♧ 수선화 - 素光 김성돈
따스한 햇살의 사랑 받으며
흐드러지게 피어나는 봄꽃
찾아오기까지
하얀 눈 속에서
꽁꽁 얼어붙은 고난의 세상을
그윽한 향기로 지키는 雪中花
회색 빛 계절에도
초록빛 삶의 모습 잃지 않고
자신만의 자존심
끝끝내 지키려는 몸부림
자만의 삶이 불러일으킨 종말
너만은 깨닫고 있으리니,
이제와 한겨울을 지키는
고아高雅한 모습이
그지없이 순수하기에
세상에 홀로 서 있어도
붉은 노을에 곱게 물든
황금빛 모습 바라보며
너만의 향기를
온 마음에 함께 품으니
차가운 세상도
참으로 아름답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