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산바람꽃의 봄맞이
이 녀석들은
어찌 그리 강골인지
영하로 내려가는 숲
찬바람 속에서 밤을 지새고
낮이 되어 봄을 부르는
한 줄기 햇볕을 믿고
소담스런 속살을 보이나니
이름하여
변산바람꽃이라 했다.
♧ 외줄 타는 변산바람꽃 - 박종영
더딘 봄 아침을 연다
여린 가슴 추수려
텃밭에 한 그루 매화가 활짝 피었다
꼭, 누구네 해 맑은 웃음 닮아
혼자 웃고 있는 걸 보니 애처로운 향기다
살며시 그것의 곁으로 서서
색조가 탐이 나는 것은 아직 남은 열정이 있어
탐닉을 반추하려는 욕심일까?
오로지 하얀 웃음을 보기 위해 겨울은 언 강을 건너며
너의 가슴에 따뜻한 시련을 수놓았으리
들꽃이 기지개 켜는 시간은,
게으른 농부에게 힘을 실어주는 향기의 구휼이라
굿판이 열리는 봄의 길목에서
외줄 타는 변산바람꽃,
오늘, 네 환한 웃음이 슬프게 들리는 것은
늑장 부린 봄,
아득한 향기 탓이려니
♧ 바람꽃 - 이희숙
바람이 우수수 일어서는 저녁이면
가슴속 화인으로 뜨겁게 새겨진 그대 이름
타는 목마름으로 수없이 불러내어
비밀의 사랑 가슴에 묻던 날
그 이전의 시간으로 돌아가
타는 그리움 죄가 된다 해도
그대 외로운 이름
내 삶 가장 가까운 곳에 두고 싶었다
억겁의 시간 돌고 돌다
다음 생에서 그대 혹여 만나면
잔설이 채 녹지 않은 땅
순백의 고결함으로 가장 먼저 꽃을 피워
그대 뜨거운 이름 위에
순한 내 이름 깊이깊이 새겨 넣고 싶다
그대를 그리는 내 사랑의 이름은
영원히 시들지 않고 지지 않는 바람꽃
♧ 바람꽃 - 김세실
꽃이라 부르지
않아도 좋아
내 모습 아무도
볼 수 없을 테니까
아름답다고
말하지 않아도 좋아
아무도 나에게
얘기하지 않으니까
그러나 그대는
알고 있지
내 마음 그대 따라
출렁이는 것을
그대 그리워
가는 곳마다
꽃으로 눈물로
뿌려지는 것을.
그대 사랑해
가는 곳마다,
애타는 가슴으로
타오르는 것을
♧ 바람꽃 - 임제훈
내 어쩌면 좋아
꼭 그 아지매
사랑할 것만 같아
무지무지 사랑할 것만 같아
목숨 둘이면
하나쯤 내놓을 것 같아
바람도 불지 않는데
가슴 속 가지들이
흔들리고 있어
얼마 아니하여
줄기까지 뿌리까지
모조리 흔들릴 것 같아
강단지고 몸살 나게
귀엽지도 이쁘지도 않는데
지장가면 장바구니 든
어디든 흔히 있는 아지매데
거지들과 얼려 다닐
참 형편없이 피눈물 나게
청춘을 모질게 울려 보낸 내게
젊음을 되돌려 줄 것 같은
찬바람 호젓한 산 어름에 핀
몸 움츠리고 미소 짓는 바람꽃
내 영혼 마구 흔드는
태풍으로 휩쓸어 버릴 것 같은
몸살나게 좋아오는 아지매
꼭 사랑해야 할 것 같은
저 다가오는 사랑
저 청초한 아지매 바람꽃
♧ 바람꽃 - 김내식
은혜로운 햇살의 외면으로
떨어지는 낙엽을 덮고
눈 덮인 겨울의 시련 속에
오직 그대만을 기다렸다
나에게도 분명 청춘은 있어
외로움 들고 일어나
맞이한 첫사랑 그대여
하필이면 바람이었나
아직 난 바람을 베고 누워
세월을 타고 간다
♧ 바람꽃 - 소양 김길자
마른 잎 구르는 소리가
더러 스산스럽긴 해도
누구나 잠시 쉬어 갈 수 있는
햇빛 환한 집 한 채
흙이 몸 풀지 않은 이른 봄
바람을 닮겠다고
어둠 뚫고 일어난 이른 아침
물안개 움츠린 곳에서 몸 푸는
바람꽃 그니
심술궂은 폭설 만나
견디기 어려운 고비 있었지만
그리움이 맺어준 예민한 꽃
그 꽃 속에 서서
나도
한포기 들꽃 되어 외쳐본다
나도 바람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