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두꽃은 다르더라
국민학교 4학년 때 이사 간 집에는
꽤 큰 앵두나무가 있었다.
봄이 되어 피어난 앵두꽃
작긴 하지만 앙증맞은 그 꽃의 아름다움이란….
오래지 않아 익은 그 열매를 따먹느라
학교서 돌아온 시간은 바빴다.
이제 어른 되어 먹어보니
그리 탐할 것은 못된다.
곱고 탐스러운 것들이
비단 앵두뿐이었겠는가?
♧ 앵두꽃 피고 지는 사이 - 하종오
잎새가
나를 끌어다 놓고 한 생을 받들게 했다
내가 기뻐하니 꽃피었다
뿌리가
내게 닿아서 한 생을 파들어오게 했다
내가 아파하니 꽃 졌다
봄 짧은 한 때 앵두나무를 만난 뒤로 남은 생이 두려웠다 내 폐 위로 나무들이 지나가서는 산에 멎었다. 산마루마다 차라리 내 폐를 벗어 걸어두고 들숨 쉬고 싶었을 때, 산은 내게서 달아났고, 나는 허공에 남겨진 산 색에 젖어 내려앉았다. 평지에는 내 육신을 덮어쓴 일년생 화초들의 생만 남아서 난분분, 난분분, 회비에 떨었다
♧ 앵두꽃 - 주근옥
간장 독 옮겨놓고
그 자리 도로 뜨러 가는
새댁인가 앵두꽃
♧ 앵두꽃 사랑 - 전숙영
달빛을 머금고
피어나는 앵두꽃
고요의 정적 흔들며
그 빛살아래 몸을 떤다
눈부시지 않아
풍요로움 쏟아내는 꽃잎의 향
소리 없이 밤을 밝히며
밤을 지키고
밤을 지핀다
동지의 살얼음 재우며
오월의 옷을 입는 꽃잎이여
그리운 씨앗들 여물어
하늘하늘 고운 빛 갈아입나니
삶에 서투른 한숨일랑
가지 끝 진자리로 뉘었다가
전신으로 꽃피우는 앵두나무
섭심한 내 마음에 뿌리 하나 박으리
♧ 앵두나무 아래 - 권현형
우리 식구는 그 시절을
천주교밑 시절이라 부른다
막내 삼촌의 만년 꼬붕이었던 나
셋방살이 봉년아범에게서 담배 한 개피씩만
늘상 얻어다 날랐다 반딧불 꽁무니를 빨 듯
슬쩍 그 꽁무니를 물어본 기억은 단 한 번 뿐
더 못된 짓 한 기억은 없다
매번 행사를 치르듯 윗집 준호오빠 동생 준 뭐시기의
허옇게 까내린 거시기를 똥개가 삭삭 핥아 먹는 건
자주 봤다
네잎클로버, 순전히 행운을 얻으러 찾아간 천주교
잔디밭에서 빨간 치마 입은 낯선 언니가 낯선 오빠
즈봉 밑에서 우리들을 향해 꽥꽥 소리지른 일은
그후로 다시는 일어나지 않았다
그리고
을남언니 옆집 애경이 새언니가 죽었다
얼굴 하얘 게다가 긴 속눈썹 바르르 떨며
기침까지 마구 해대 우리들의 우상이었던 그녀
부둣가 선술집 출신의 이름모를 그녀가 사라져버렸다
미미라는 이름으로 작은 계집애를 콜록콜록 토해내고
교회 종소리가 저녁연기처럼
어린 우리들의 마음을 데리고 어디론가
길게 길게 사라져가던 천주교밑 동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