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꽃샘추위를 넘은 말들

김창집 2013. 4. 8. 09:54

 

어제, 묘제를 끝내고 제일 늦게 내려오는 길

그제 그 모진 비바람을 이기고

목장에서 풀을 뜯는 말들을 만났다.

그 모습이 너무 대견해 보여

차를 세우고 가까이 다가갔다.

 

그런데 나의 마음을 알아주었는지

아니면 카메라를 의식했는지

갑자기 동서쪽으로 내달리며

보아란 듯이 뛰어다닌다.

 

아! 저 대견스러운 것들,

아무리 바빠도 주위를 보고 다니라는 듯이….  

 

 

♧ 꽃샘추위 - 권오범

 

겨우내 초목들 기절시켜놓고

끗발 날리던 동장군이

떡고물 구경도 못한 채

공연히 감투 벗으려니 억울했나보다

 

그러잖아도 미련이 남아 무르춤하는 사이

목련이 정분나 허튼 수작 부리지요

봄에게 물벼락까지 맞고 나니 성질나

돌아서 칼바람 콧김으로 발악하는 3월 한복판

 

세세연년 오지게 당했으면서

작년보다 여남은 날 앞당겨 깬 걸 보면

조명 발 잘 받는 꽃나무들은 시건방져

건망증이 심한 걸까,

 

밤새 말달리며 족대기는 바람에게

나무아미타불 될 건 뻔한 일

철없이 서두른 것이 죄겠지만

겔러터져 미적미적한 봄, 네 책임이 더 크다   

 

 

♧ 아, 고구려 - 강태민

 

아름다운 이 땅이

민족이 전생에 말달리던 국토였구나

 

아름다움이

그저, 그냥 아름다움 아니라

국토를 수호해 머무는 민족혼 다르고

송화강 물결 위 흐르는

꽃잎의 향내가 이방과 다르질 않는가

 

세월이 흐르고 흘러

비통한 침묵

잠을 자던 웅혼 깨어나고

역사의 권태로운 시간 지나면

고구려의 이름은

오랑캐 기억하리

 

만주벌 평원 위 유창한 말굽소리

중원 평 천하

민족의 웅진이고

불멸 불사 민족이 낳은 영웅

광개토대왕 칼날 앞에

사라지는 무리 가랑잎이니

썩은 풀뿌리 한갓 오랑캐

온전하게 묘 쓰지 못하도록

푸른 칼로 베어내리

 

민족의 역사 탐하려는

비대한 가랑잎

중원 무리의 실수를

절대

용서치 않으리.   

 

 

♧ 우리 집 그 양반 - 김종제

 

고요한 아침의 나라에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난

우리 집 그 양반

아직 젖비린내 가시지 않은

봄 새벽에

빼앗긴 집에서 쫓겨나

몰래 기차 숨어타고

만주벌판으로 가야했다는

그 양반

책속에만 나오는

고조선처럼 고구려처럼

그곳에서 말달리며

총 쏘고 칼 휘둘렀다는 그 양반

장마로 축축하게 젖어

다 허물어져 가는

여름 한낮에 돌아와

서까래 놓고 기둥 일으켜

다시 집 우뚝 세워놓았다고 하는

그 양반

그 옛날 아버지처럼

우직한 소 끌고가

논으로 밭으로 흙 갈고 있는 그 양반

과수원 나무에

가지치기 하는 그 양반

곡식 잘 자라고

열매 잘 익었으니

이제 잘 키워놓은 가을을

추수하는 그 양반

다가올 겨울과 싸움을 준비라는

우리 집 그 양반   

 

 

♧ 잃어버린 왕국 - 임영준

 

태평양건너에서 바라보니

억울하게 천년을 떠돌고 있는

잃어버린 왕국이 또렷이 보인다

지워진 역사의 장에서

화석으로 통곡하는 조상들이

대륙의 거침없는 야욕과

하루하루가 힘겨운 후손들이

극명하게 대비되는 것을 지켜보는데

어찌 영면할 수 있으랴

호쾌하게 말달리고 일구어

겨레에 새겨놓은 북방의 영토를 두고

수복은커녕 눈치만 보고

몸 사리고들 있으니

앞날이 심히 걱정스럽구나

과거를 외면하면 미래도 없는데

제 족속들의 영달에만 급급한 미물들이

사리사욕에 눈이 멀어

앞뒤분간을 못하고 있구나

아 ! 요원하기만 한 천년의 왕국이여

우리들의 염원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