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백작약과 목포작가의 시

김창집 2013. 4. 22. 09:13

 

4.3 평화공원 가는 길에

잠시 틈을 내어 수선화 아파트에 들렀다.

전날 봐둔 화단의 백작약을 사진기에 담기 위함이다.

그러나 찬바람이 가난한 아파트 벽을 타고 내려와

꽃을 마구 휘두르고 있다.

오늘만 지나면 떨어져 버릴 꽃잎들이고

시간은 잠시도 기다려주지 않아

흔들리는 대로 찍었다.

 

계간 ‘제주작가’는 여러 지역 문인들과 교류하고자

‘공감과 연대’라는 난을 두어

한 호에 한 지역 문인들의 작품을 초대하여 싣고 있다.

이번 ‘제주작가’ 봄호에는

목포작가회의 작가들의 작품을 실었다.

다섯 시인의 작품 각각 두 편씩 실렸는데

하나씩 골라 꽃과 함께 싣는다.

    

 

 

♧ 환장하겠다 - 이봉환

 

한 머스마가 달려오더니 급히 말했다

선생님 ‘끼’로 시작하는 말이 뭐가 있어요?

끼? 쫌만 기다려

나는 사전을 뒤졌다 ‘끼니’가 얼른 나왔다

녀석은 단어를 찾는 동안 신이 나서 지껄인다

서연이하고요 끝말잇기를 하고 있는데요 개가 ‘새끼’라고 하잖아요

곧 내가 말했다 응, ‘끼니’라고 그래라

녀석이 환해져서 달려갔다가 껌껌한 얼굴로 금방 다시 왔다

선생님, 그 새끼가요 ‘니미씨발’이라는데요?   

 

 

♧ 욕망에게 - 조대현

 

너는 끊임없이 달리고 싶어 하는

기차가 되려 했지

이른 아침

안개 자욱한 들녘을

자잘한 이슬방울

눈썹 가득 담아

촉촉한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이 세상, 아름답게

살만한 세상이 되게

그런 바람으로 달리고 싶어 했지

열아홉의 아름다움과

스무 살의 패기를 더해

자욱한 안개 걷어내는

아침햇살을 향해

달리고 싶어 했지

너는 끊임없이 달리고 싶어하는

기차가 되려 했지

 

 

 

♧ 반성 - 최기종

 

사랑이여

내가 너를 버려 놓았구나

너에게 눈을 박고 귀를 박고

너만 노래하고 너만 느끼면서

그렇게 금야옥야 품었는데

사랑이여

내가 너를 버려 놓았구나

내가 너를 섬이 되게 하였구나

내가 보내는 향기 진하다 못해

뭇사람들의 표적이 되게 하였구나

내가 만든 끈이 튼튼하다 못해

너를 묶는 오라가 되게 하였구나

사랑이여

내가 너를 버려 놓았구나

내가 너를 못다 피게 하였구나

너만이 유일무이한 봄날이라고

너만이 이 세상이고 말씀이라고

그렇게 팽팽하게 줄을 당겼는데

사랑이여

내가 너를 버려 놓았구나

내가 나를 버려 놓았구나  

 

 

♧ 선로변에서 - 박관서

 

  눈을, 다시 뜰 때 있다. 나른한 한낮을 골라 전철기 청소를 하러 가다가 양팔 곱게 벌린 철로와 철로 사이를 칸칸이 잇고 있는 침목 위로 똠방똠방 건너가는데, 한 뼘이나 될까. 샛노란 눈빛 달랑달랑 내밀고 있는 개불알꽃을 만나 서로 어르며 안부를 나누다가, 문득 등골이 서늘해 돌아보니 천둥 같은 기적이 덮쳐와 목덜미를 낚아채 선로 밖으로 동댕이친다. 와르르르르 지나온 길 지나갈 길 모두 무너져 내린다. 잠긴 눈으로 본다. 환하다. 일거에 삼십년을 비우고 다시, 눈 뜰 때 있다. 선로변이다.  

 

 

 

♧ 난쟁이 - 유종

 

  난쟁이는 바람벽의 담쟁이다 난쟁이는 동네 빵집이다 난쟁이는 들꽃이다 난쟁이는 철탑이다 난쟁이는 불타는 망루다 난쟁이는 두 마리 용이다 난쟁이는 프롤레타리아다 난쟁이는 구럼비바위다 난쟁이는 어느 후레자식의 손가락질이다 난쟁이는 창녀다 난쟁이는 일회용이다 난쟁이는 철거촌의 눈먼 강아지다 난쟁이는 무허가다 난쟁이는 없는 돈이다 난쟁이는 없는 땅이다 집이다 난쟁이는 쫒겨나는 희망이다 난쟁이는 불꽃이다

 

  나는 왜 바람에게 붙어사는 담쟁이인가 나는 왜 동네 빵집처럼 외치는가 나는 왜 들꽃처럼 피는가 나는 왜 철탑에 오르는가 나는 왜 불타는 망루처럼 분노하는가 나는 왜 찢겨지는 구럼비바위인가 나는 왜 자살하는 두 마리 용인가 나는 왜 프롤레타리아로 살고 싶은가 나는 왜 일회용처럼 버려지는가 나는 왜 철거촌에 눈먼 강아지처럼 떠나지 못하는가 나는 왜 허가 받지 못하는 미래인가 나는 왜 돈이 없는가 없는 땅인가 없는 집인가 나는 왜 창녀라 불리는가 나는 왜 나를 후레자식처럼 손가락질하는가 나는 왜 쫒겨가는 희망인가 나는 왜 불꽃처럼 타오르고 싶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