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의 남방바람꽃
해마다 고사리 철이 되면
꼭 가보는 곳이 있다.
목장 가운데 자리한
남방바람꽃 군락지.
해마다 때가 되면 잊지 않고
그 하얀 미소를 드러낸다.
아마 바람꽃 중에
제일 늦게 피는 것 같다.
지금은 전국 곳곳에서 발견되는
남방바람꽃.
5월의 맑은 하늘을 기다려
늦게 피는 모양이다.
♧ 5月 - 권경업
물오른 보릿대궁
하늘대는 밭고랑 끝에
산자락은
버선발을 살며시 올려놓고
짙푸른 짧은 치마
수줍다고 얼굴 가리네
재 너머 영마루에
뭉게구름 피어오르고
머리 위로 쏟아지는 햇빛 속에
칡캐는 아이들의 마음은
짓궂은 바람따라
이리저리 물결치며
푸르른 오리나무 숲으로 가네
♧ 5월은 - (宵火)고은영
열아홉 청춘이다
행복하다 말할 수 있을 때
미소를 쓰고 손가락을 펴
물빛 음표들을 두드리면
날아오르며 현 화 되는
비바체 향기 동동
세상은 온통
환희의 음절로 젖어들고
살랑살랑 바람의 왈츠로
스텝을 밟는 풀빛 향연
5월은
향긋한 초록빛 선율이다
♧ 5월의 교향곡 - 임영준
온갖 꽃들이 화사하게
낮은음을 짚고
바람은 반짝이는 물결을
유려한 중간 음으로 타고 흐른다
나뭇가지는 우아하게 팔을 뻗어
높은음을 이끌고
싱그러운 햇살은 격정을 누르며
고조되는 선율을 차분히 다스린다
♧ 5월 산행 - 권오범
안날 진종일 지짐거린 하늘 심기 살피며
산발치 들어서자
비거스렁이 득달같이 달려들어
목덜미 끌어안는다
목욕으로 촉촉해진 자드락길 따라
싱그럽게 허비되는
아카시아 꽃 보라 환영 속
만화방초 미소에 한눈팔기 딱 좋은 새끼낮
나보다 먼저 멧부리에 걸터앉아 쉬고 있던
허깨비구름 밟고 보니
멀리 섬들만 띄엄띄엄 떠다닐 뿐
운해가 꿈에 본 저승처럼 고요하다
아메리칸 밀가루가 희망이었던 사방공사
유년으로 시공 초월해 묘목망태 메고 싸돌아다니는 사이
햇볕에 쫓기는 구름들이 골짜기로 폭포처럼 내리달아
신록과 희끗희끗 어우러져 가관인 산수화
그러잖아도 난기류에 휩싸인 생화로
마음 강이 간헐천 되어 툭 하면 울컥대는 것을
붙박이로 들앉아 조라떠는 지독한 그리움들아 나를 비워다오
저 일렁이는 푸른 파도 마음껏 담을 수 있게
♧ 5월의 편지 - 목필균
가끔은 스무 살 젊음이고 싶다. 안개 배인 공지천을 산책하
던 우리의 노래는 하얗게 웃어대던 아카시아 향기로 가득했지.
미숙한 사랑을 지켜온 백치 같았던 순결, 그 시절, 네 그림자
허리를 잡고 안부를 묻고 싶다.
잎새 반짝이던 은백양 나무에 걸려있던 우리의 시들은 오월의
축제를 사열하고, 교정의 기인 *외수아저씨는 순수를 위해 몸을
닦지 않는다는 모순된 말로 자신의 남루를 덮고 있었지. 잔디밭
에서 물구나무서기를 하며 시선을 끌던 작은 키의 동기생은 한
학기를 떠돌다 사라지기도 하고. 시내에서 변두리까지 꼬박 걸
어도 1시간 거리도 안되었던 연인들의 이야기는 아쉬움 속에 깊
어가기도 했어.
별빛은 5월을 더욱 향기롭게 하는지, 그 시절의 노래가 생생하
게 살아있으리라 믿으면서 아카시아 흐드러지는 이맘 때가 되면
스무 살 그 젊음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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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수 아저씨 - 소설가 이외수님을 우리는 외수아저씨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