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시계꽃 피는 마을

김창집 2013. 5. 20. 12:18

 

저 서귀포시 쇠소깍으로 들어가는 동네

어느 담벼락에 수많은 시계꽃이 피어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시간의 중요성을 일깨우고 있었다.

 

브라질 원산의 시계꽃은

시계꽃과에 속한 여러해살이 덩굴풀로

4m 정도로 자라고, 가지가 없으며

덩굴손으로 다른 것을 감으면서 올라간다.

잎은 어긋나고 손꼴로 깊게 갈라지며

꽃은 여름에 위를 향하여 핀다.

열매는 참외 모양인데 식용하고,

꽃, 뿌리, 잎은 약용한다.   

 

 

♧ 오래 된 시계 - 홍금자

 

이층 오른쪽 벽에 오래 된 시간의 등대지기가 산다

살아 있는 시간이 나를 보고 히죽 웃는다

때마다 밥을 주고 달래 보기도 하지만

여전히 혼돈 속으로 나를 몰아넣는다

세상의 약속은 아랑곳하지 않고

빠르게 가다가

느리게도 가는 자유주의자

 

그는 바람에 날개를 달고

휘파람을 분다

그리고 째각대는 금속성 목소리도 접은 채

나무가 되어 잠든다

오늘은 뿌리째 뽑혀 목 타는 삶이

마지막 꿈으로 앓고 있다   

 

 

♧ 잃어버린 시계 - 정익진

 

  시계를 잃어버리고 집으로 왔다. 그래도 나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잃어버린 시계는 찾지 않아도 좋을 것이다. 시계는 빈 나뭇가지에 꽂혀 있거나 밥그릇 아래에 있다. 밥을 아무리 먹어도 보이지 않는 시계, 시계는 스위스 은행의 비밀금고에 있을 것이다. 시계바늘이 움직일 때마다 쓰러지는 나무들 그러나 시계는 사슴의 뿔에서 반짝거리기도 하고, 기린의 목에서 빛나기도 하겠지. 번화한 거리를 다녀 보라. 그들의 두 눈엔 시계가 박혀 있다. 그들은 시계를 먹고 자라났기 때문이다. 호랑이들은 벽시계만 먹는다. 벽시계가 손목시계보다 맛있기 때문일까? 가끔 시계는 여름철 얼음집 배달 자전거의 얼음 속에 가득 숨어 있기도 하지. 얼음 덩어리는 냉면 집으로 배달되어 물냉면 속에 둥둥 띄워지기도 하면서

 

  사람들은 잘 모른다. 부처의 이마에 원래 박혀 있던 것이 시계라는 것을 잘 알지 못한다. 그리고 잃어버린 시계가 자갈밭에 뒹구는 거울 조각에 비치고 있다는 것을 결코 모를 것이다. 매일 매일 중요한 것은 시계를 사는 일이다. 그리고 일생 동안 모은 시계를 도둑맞는 일이다. 눈 내리는 겨울날 전당포에 잡히기도 하면서   

 

 

♧ 시계 - 이우걸

 

돌아봐선 안 되는 로마의 검사처럼

너는 가고 있다 직진의 운명으로

가서는 되돌아 못 올

허무의 늪 속이라도.

 

고향땅을 떠나서 사막을 건너가는

갈증의 캐러밴 같은, 피묻은 화살 같은

급박한 삶의 둔덕을

달려가는 저 행렬.

 

내가 너를 쫓는 동안 너는 나를 쫓아야 한다

이 기막힌 비극 뒤에 신은 웃고 있을 테지만

날 새면 다시 일어나

내 하늘을 가꿔야 하리.   

    

 

 

♧ 시계 - 한승원

   ― 열애 일기 1

 

우리 다음 생애에는 시계가 되자

너는 발 빠른 분침으로

나는 발 느린 시침으로

한 시간마다 뜨겁게 만나자

순간을 사랑하는 숨결로 영원을 직조해내는

우리 다음 생애에는 시계가 되자

먼지알 같은 들꽃들의 사랑을 모르고 어찌

하늘과 땅의 뜻을 그 영원에 수놓을 수 있으랴

 

우리 그리고

한 천년의 강물이 흘러간 뒤에

열두 점 머리 한가운데서

너와 나 얼싸안고 숨을 멈추어버린

그 시계

다음 생애에는 우리 이 세상 한복판에서 너의

영원을 함께 부둥켜안은 미이라가 되자

박새들의 아프고 슬픈 사랑을 모르고

어찌 하늘과 땅의 뜻을 그 영원에 수놓을 수 있으랴.   

 

 

♧ 시계 - 이향아

 

여러 개의 시계가 돈다

일제히 끝없는 어둠에서 어둠으로 뚫린

긴 길을

사람의 수만큼, 그보다 더 많은 시계가 돌아

적막 속에 솟아오르는 시계 소리뿐

허무 속으로 낙하하는 시계 소리뿐

수십 리의 복도와 터널을 지나

해류와 천둥을 지난

저들의 주장

어디선가 엇갈려 쉬지 않고

덤벼드는 저들의 고집

 

우리집 시계들은 다 시간이 다르다

아무 때나 나는 시계 바늘을 돌려

또 하나의 믿기지 않는 다른 시간을 만들지만

내 시계는 사철

절룸거리며 따라오는

나를 기다린다   

 

 

 

♧ 살바도르 달리의 시계 - 권천학

 

비밀을 가둬둔 책상

서랍을 열 때마다

눈감은 시간들이

빛에 찔려 소스라치며

책갈피 사이로 스며든다

 

밤이면

틈 사이로 기어 나온 시간들이

스멀스멀 벽 위를 기어 다니고

천정에 매달려 물구나무서기를 한다

 

찢겨나가는 의식의 빈 창고

모진 바람에

눈 뜬 시간과

눈뜨지 못한 낱말들이

서로 부딪치며 나딩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