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나들이

남도 답사 1번지

김창집 2013. 6. 8. 00:18

 

 

그게 언제쯤이던가

유홍준 교수의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가 잘 나가기 시작하면서

처음으로 해남과 강진 답사를 다녀왔고

다음부터는 여러 팀을 모시고 몇 차례 가게 되었다.

 

아니 몇 차례 간 것만이 아니라

제주에서 완도를 통해 뭍 나들이가 쉬워지면서

숫제 완도와 해남, 강진은 거쳐가는 통로 역할을 하였다.

 

이번주 토요일 강의가 빠지면서

오랜만에 오름 5기와 1박2일로 그곳을 가게 되었다.

물론 작년 5월에도 두륜산을 올랐지만

날씨가 좋지 않아 산봉우리는 물론

주변 바다 풍경도 보지 못해 내려왔고

재작년 중고교 동창들과 갔을 때는

일지암까지만 다녀왔다.

 

몇 번 가면 어떠랴.

일상을 잊고 자연과 또 선인들의 숨결을

느끼며 돌아다니는 일인데….

 

다녀온 다음 다산초당에서

백련사를 거쳐 녹우당까지의 사진 몇 장 올린다.

 

 

♧ 다산초당 - 최범영

 

쓰르라미 소리 수풀 속에 꽂히며

산골짜기 물과 합창하던 날

다산의 손때 묻은 차탁에서 나는 님과 마주했네

내 소리도 묻히고 님의 소리도 묻히고

따가운 햇살이 내려 쬐는 팔월에

 

가만히 귀기울여보니

쓰르라미는 쓰라려하고

골골 타고 내리는 물은 몸부림치고

지쳐간 분의 목소린 붓질로 남고

 

먼 옛날 초당에도

씨알매미와 물과 쓰라림과 괴로움이

벼루에 갈려 높은 탑을 쌓았으려니

갈고 닦은 마음은 찻잔 속에 녹았으려니

 

초당 마루 기둥에 가만히 기대어

돌고돌아 온 숲길을 보니

서책을 짊어지고 오는 선비 하나 보이고

오다가 길에 앉아 땀을 닦는 분 보이고

흑산도 간 동생 생각하는 형님 보이네

 

쓰르라미 골짜기 물에 자맥질하는 팔월

발길에 짓이겨져 물길어다 닦아놓은 차탁

선머슴애들은 그 위에서 짓부리고 노는데   

 

 

♧ 백련사 오솔길에 들다 - 김선태

 

  다산초당에서 백련사 가는 오솔길 넘습니다. 초입부터 춘삼월 햇빛이 명랑하게 팔짱을 끼는데 어서 오라, 진달래꽃들 화사하게 손목을 잡습니다. 오솔길이 만덕산의 품속으로 나를 끌고 갑니다. 만덕산이 제 마음속으로 가느다랗게 오솔길을 불러들입니다. 산길은 산의 높낮이로 굽이치며 깊어집니다. 나도 오솔길을 따라 굽이치다가 잠깬 계곡의 물소리 만납니다. 생각해 보면, 산길은 산의 마음을 따라가는데 나는 무엇을 좇아 어디를 아수라장 헤매었던 걸까요. 계곡 물소리는 산의 중심을 깨우며 아래로 흐르는데 나는 또 삶의 어느 주변만을 허덕이다 위로만 눈길을 흘렸던가요. 관목 숲 찌르레기 울음소리가 마음 한 켠 잔설처럼 녹지 않는 상처들을 아프게 찌릅니다. 길섶에 앉아 쉬자니 문득 길섶의 풀꽃들이 말을 붙여옵니다. 네게도 언제 오솔길이 있었던가, 마음의 뒤란을 느릿하게 휘어도는, 그런 포렴한 오솔길 하나 있었던가 묻습니다. 얼굴 붉힌 나를 보며 싸리꽃이 까르르 잘게 웃습니다. 일어서 걸음을 재촉하려니 칡넝쿨이 발목을 잡습니다 아서라, 찔레꽃이 옷깃을 붙들며 늘어집니다. 그러나 다 알고 있다는 듯 고갤 끄덕이며 한 송이 초롱꽃이 어둔 마음의 심지에 불을 밝힙니다. 얼마쯤 왔을까요, 길이 제법 가파르게 아래로 미끄러집니다. 마음의 경사를 늙은 소나무가 받쳐줍니다. 굴참나무숲도 연둣빛 어린것들에게 자리를 내주며 스스로 환해집니다. 어디선가 한 줄기 청신한 바람이 묵은 고요를 가볍게 흔들어놓습니다. 이윽고 오솔길이 끝나는 백련사에 다다를 무렵, 기다렸다는 듯 수천의 동백꽃들 와, 꽃망울 터뜨립니다. 저마다 허공에 화두처럼 꽃송이를 내다 겁니다. 그걸 보던 만덕산 정상 백련 한 송이, 화답하듯 빙그레 벙급니다. 저물 무렵 하산하는 마음속으로 오솔길 하나 따라옵니다.   

 

 

♧ 백련사 동백 숲 - 김종구

 

   “왜? 나만 불행한가!” 라고 느낄 때 백련사 겨울 동백 숲에 들어볼 일이다. 멀리서 보면 그윽한 평화 아래 눈부시게 아름다운 숲 그 은밀한 내면을 읽어볼 일이다. 빛과 어둠의 경계를 이루어 절름절름 걸어가는 계곡을 따라가서 빛 한 점 닿지 않은 한그루 동백으로 마주 서보는 것이다. 그 무거운 어둠 속에서 부러지고 잘린 제 상처를 스스로 치유해가면서 온몸에 단단한 혹을 달고 있는 뼈아픈 말씀을 들어보는 것이다. 한줄기 빛 찾아 온몸으로 기어오르다 구렁이가 된 그들의 몸뚱이를 보듬어 보는 것이다. 남녘의 겨울이 따뜻한 것은 그 고통스러운 제 몸에 불을 지펴 타닥타닥 태우다 눈 위에 떨어진 꽃마저 제정신을 잃지 않음이니 그 기백을 가슴에 담아 볼 일이다. 땅끝으로 유배 온 동백이 지피는 열기로 푸르게 다시 일어서는 봄, 그 불덩이에 온몸 한번 태워보는 것이다. 그리하여 범종 소리 따라 터엉 터엉 꽃잎 버리듯 빈 가슴으로 푸른 세상을 다시 보는 것이다.   

 

 

♧ 연동의 비자나무숲 - 박윤규

 

녹우당綠雨堂에서는 푸른 비소리를 듣지 못했다

해남군 해남읍 연동리

고산 사당과 어초은 사당 사이로 길을 잡아

연동의 비자나무숲을 찾아간다

밟히는 붉은 황토가 내 두고 온 그리움으로 일어나

나는 내 안에 실낱의 희망을 담을 수 있겠다

낮은 고사리잎과 들뜬 자귀나무의 잎이

제 온전한 열정으로 피어 있으나

그것이 어찌 저녁 햇살을 받아들인 황토의 한을

제 색으로 나타낼 수 있겠느냐

여름 한나절을 울어가는 매미들의 속을

그 짧은 목숨의 절절함을 알 리가 있겠느냐

연동의 비자나무숲을 들어서면

내 걸어온 길들의 어긋남이 보인다

잘 살아야겠다 이런 다짐도 소용닿지 않아

허툰 걸음으로 낮은 골짝을 내려와

석간수 한 모금에 이 허기를 지운다   

 

 

♧ 두륜산 - 제산 김대식

 

해남 땅 끝으로 가자.

우리나라의 산맥이 남으로 흐르다

마지막으로 솟구친 곳,

신라의 고찰 대둔사가 있고

주위에 둘러있는 크고 작은 여덟 개봉

그림처럼 솟아있지.

 

산은 아기자기 암봉들로 장식하고

은빛 억새밭이 햇볕에 반짝이지.

구름 깔린 산 풍경

해 뜨고 지는 붉은 노을

모두가 아름답지.

 

남해와 서해의 바다가 보이고

산위에서 보는 다도해의 아름다움

그 또한 그림이지.

 

강원도로부터 피던 단풍이

남으로 남으로 남하하여

제일 늦게 늦가을에야 피우는 곳,

대둔사에서 바라보는 두륜산

남도의 단풍은 아주 아름답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