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하지에 하늘말나리 꽃을

김창집 2013. 6. 21. 07:10

 

아침 일찍 가족묘지에 다녀오려던 계획을 세웠다가

비가 그치지 않아 오후로 미루었다.

장마가 들어 비가 오다 말다를 계속하다 보니

개운치 못한 날들이 연속이다.

 

오늘은 하지(夏至), 글자 그대로 해석한다면

여름에 이르렀다는 말인데,

1년 중 낮이 길이가 가장 긴 날이어서

많은 일을 해야 할 판이다.

 

하늘말나리는 외떡잎식물 백합목 백합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우산말나리라고도 한다. 줄기는 곧게 서며. 잎은 돌려나거나

어긋나고, 돌려난 잎은 6∼12개로 거의 바소꼴 모양 타원형

이며, 하나씩 어긋난 잎은 위로 갈수록 작아진다.

꽃은 7∼8월에 노란빛을 띤 붉은색으로 주색 반점이 있으며,

원줄기 끝과 가지 끝에서 위를 향하여 핀다.   

    

 

♧ 하지 - 임동윤

 

어머니 눈물져 떠나온 고향집에선

이 여름도

봉숭아가 주머니를 부풀립니다.

 

간장 항아리 놓였던 자리에

잡초 무성한 마당귀 우물가에

화르르, 화르르

석류처럼 꼬투리를 터뜨립니다.

인적 끊긴 집 둘레로

고추잠자리만 비행할 뿐,

먼지 낀 헛간에는 녹스는 농기구들.

허물어진 돌담을 끼고

해바라기만 줄지어 서 있고

그 무표정한 그늘을 딛고

토실토실 물이 오른 봉숭아 몇 그루,

듬성듬성 버짐이 핀 기와집 처마 밑에

해마다 둥지 트는 제비와 놀며

흰색 분홍색으로

여름을 부지런히 피워올립니다.

 

그런 날,

어머님 손톱에도

문득 바알간 꽃물이 돕니다.  

 

 

♧ 하지제 - 홍윤숙

 

1

 

둥, 둥, 둥,

낯선 땅 모래벌에

신명은 주문처럼 하늘에 닿았다

 

불모의 여름을 유랑하는

곡마단

 

청춘은

그렇게 짐을 싸며 떠났다

 

땀으로 눈물 씻던

산하

 

함성처럼 떠오르다 사라진

별들

 

찢어진 희망들이

눈을 뜨고 죽어 갔다

 

시간이

안개빛 명정을 휘날이는 벌판  

 

2

 

가시, 엉겅퀴

형벌처럼 여름은 뜨거웠다

 

들끓는 신열 노을로 쏟으며

만리장성 구름이 되어 가다

한 주름 비로 내리는 곳은

비슷한 길목 고개 숙인 어둠 속

 

창에 어린 몇 개의 별들이 길을 잡는

꿈의 변방을 오르내리다

 

새벽이면 다시 짐을 싸는

불거진 등에

 

익명의 사나이는

먼저 운명의 작은 싸인을 했다

 

하루 아침

노독은 아름답개 발병하고

 

싸움도 없는 벌판에선

산탄처럼 나뭇잎이 떨어져 내렸다 

 

 

♧ 하지(夏至) - 조재영

 

아이들이 돌아간 빈 놀이터에

누군가 그리다 만 집 한 채

누워있습니다

막대기 하나 주워들고 금을 긋다 보면

그 집은 점점 커져 일어서고

덩그마한 집 한 채 저녁 불빛에

따스합니다

방문 앞 신발 두 켤레

입을 오므리고 기대앉아 있습니다

어스름한 달무리 지붕을 덮으면

문틈으로 새어나오던 불빛도 꺼지고

가물가물 비가 내립니다

비에 젖은 신발 두 켤레

서럽게 정답습니다

밤이 너무 깁니다   

 

 

 

♧ 하지절(夏至節) - 박두진

 

한나절 산중 첩첩 휘파람새 운다.

 

햇살 펑펑 쏟아지고,

칡넝쿨, 댕댕이 다래 넝쿨, 머루 넝쿨 칭칭 감고,

 

골짜기 푸섶에 떨어진 여름의 시 한 구절,

 

어려워서 외다 외다 뻐꾹새 그냥 날아가고,

그 휘파람새, 황금새도 와서 읽다 어려워 그냥 날아가고,

 

전라의 알몸뚱이

 

해죽해죽 달아나며 유혹하는 너

마구마구 쓰러뜨려 가슴 덮친다.

 

더덕냄새 박하냄새 암노루냄새 난다.

뭉개지는 젖과 땀, 이글대는 눈의 꿈,

 

아니, 바람냄새 출렁대는 바다냄새 난다.

미역냄새 홍합냄새 그 흡반냄새 난다.

 

몸뚱어리 몸뚱어리

배암 친친 굽이 틀고,

 

한나절내 산중 첩첩 꽃비 흥건하다.  

 

 

♧ 夏至하지 - 김수우

 

창문을 열고 집어낸다

무릎에 떨어진 머리카락

한 올만큼 덜어지는

나의 죄

 

바늘강 같은 매미울음 속으로

떠가는구나

시름없이 육체를 벗어나는

내 혼의 실오라기

 

어제의 바람이

어제의 하늘이

하지감자알로 굵었는데.  

 

 

 

♧ 하지夏至 - 오정방

 

밤이라고 하기엔 밖이 너무 밝고

낮이라고 하기엔

저녁 시간이 꽤나 깊어있다

 

백야白夜같은 하지夏至

 

낮이 가장 길다함은

밤이 가장 짧다는 말

 

하루의 주어진 같은 시간

시계는 멈추지 않고 제 갈길을 가건만

태양은 저 혼자 밤을 즐기려는듯

가던 길을 멈추고

태연히 지구촌을 내려다보며

조용히 홀로 따갑게 미소 짓는다

 

쉽게 잠이 오지 않는다

밤은 짧고 짧은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