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호박꽃 핀 밭을 지나며

김창집 2013. 7. 1. 01:09

 

어제는 오름오름회 회원들이랑

어디로 갈까 하다가

나의 제의로

애월읍 어음리

빌레못굴 둘레길로 향했다.

 

그곳 빌레못 굴안에서

황곰뼈와 석기시대 유물이 발견되어

연륙설을 뒷받침하며

굴은 천연기념물 제342호로 지정되었다.

 

전장 11,749m나 되는

여러 갈래로 난 용암동굴.

4.3때는 지역주민이 대피하였다가

29명이 학살당한 곳이다.

이 때 너무 깊이 들어갔던 어머니와 딸이

길을 찾아 나오지 못해

나중에 시신으로 발견되기도 했다.

 

모처럼 올레길 코스 중 밭길이 있어

어렸을 적 김매러 다니던 추억을 떠올리며

선밀나물(멜순) 순을 많이 따서

점심식사 때 맛있게 먹었다.

 

그 중에 단호박을 재배하는

호박밭 옆을 지나며 옛날을 추억하고는  

호박꽃을 찍어두었다가

7월 첫날에 올린다. 

 

 

♧ 호박꽃 1 - 우공 이문조

 

누가 그대를

못생겼다고

꽃도 아닌 꽃이라고

망발을 했나

 

너무 화려하지 않아

천박하지도 않고

진하지도

연하지도 않은 색

독하지도

순하지도 않은 향기

 

수수하고

푸근한

내 누님 같은 꽃

 

항상 곁에 있어도

싫증나지도

미워지지도 않는

무던하고

편안한

네가 참 좋아

 

꽃 중의 꽃

호박꽃이라 부르리....  

 

 

♧ 호박꽃 - 탁정순

 

누구나 참 아름다움은 마음이라고

남들은 쉽게 말들 하지요

우린 늘 함께하지만 가깝고도 먼 사이

마음 밖의 사랑을 찾아 헤매는

사랑의 방랑자입니다

 

향기로운 꽃이라고 전부 아름답나요

나도 꽃이고 싶어요

아무도 찾지 않는 쓸쓸한 길을

가만히 걸어가며 곰곰히 생각해 봐요

당신이 찾는 평범한 사랑

삶에서 느끼는 작은 행복

내 안에 머물러 있어요

 

언제까지 기다려야 나를 알아보나요

아무리 기다려도 당신은 오지 않네요

당신은 아주 먼 여로에서

고단한 삶의 무게를 벗으며

아마도 활짝 전처럼 반기겠지요

 

 

 

♧ 호박 꽃 - 박인걸

 

못생겼다는 말이 가슴을 눌러

잎으로 얼굴을 가렸는가.

나팔꽃 지붕에서 소리치고

해바라기 키 자랑 할 때

스스로 주눅이 들어

담장 뒤에 몸을 숨겼다.

용기를 다해 분칠을 하고

아침 햇살 조명 받으며

달콤한 꿀을 한 입 물고

뭇 시선을 끌려 하지만

아무도 눈길 주지 않아 서러운

그 이름 못난이 꽃

하지만 서러워 말아요.

꽃보다 더 예쁜 애호박이

보름달만큼 커 갈 때면

누가 꽃을 기억 하리오.

꽃으로 승부하지 않고

열매로 사랑받는

그 이름은 호박꽃이라오.

 

 

♧ 호박꽃 - 이재봉

 

이른 아침, 아파트 뒷산을 오르는데 길가 풀숲에서

어머니 냄새가 난다. 가만히 덤불 속을 헤치자 노란

호박꽃이 단내를 풍기며 벌에게 젖을 물리고 있다.

 

언제 곱게 화장했던 적이 있었을까. 평생 단내를 달

고 사신 어머니. 자식들에게 젖을 물리느라 시름시

름 잎이 지고 온 몸에 구멍이 숭숭 뚫린 저 호박꽃.  

 

 

 

♧ 호박꽃 - 홍희표

 

  참매미도 잠든 한낮에, 노랑나비도 잠든 한낮에, 싸리울타리 사이로 호박꽃 피고 지고 합니다. 옆집 병섭이 할아버지 회심곡 들려 오는데, 부모가 죽으면 청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데, 간다간다 나는간다. 북망산천 나는간다. 이제가면 언제올꼬…… 쇠파리도 잠든 한낮에, 까마귀도 잠든 한낮에, 대청에서 코고는 소리 쌍기역 쌍디귿 하는데, 놓고들고 살던살림, 자식에게 맡겨두고, 오늘날 여기놀면, 내일이면 북망산천, 나는간다 나는간다…… 씨암닭이 뒷꼬리 흔들며 사라지자 장닭이 번개처럼 따라갑니다. 떼잔디로 이불삼고, 어느누가 날찾을꼬, 자식들아 잘살아라, 수만년을 잘살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