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맞이꽃의 전설
달맞이꽃을 알게 된 것은 어렸을 적부터라 생각했는데
처음으로 그 존재를 인식한 것은 아무래도
1992년 8월 연변조선족자치주의 어느 마을로 생각된다.
시골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밖으로 나왔는데
주변 밭이 온통 환하게 밝은 노란색으로 번져 있어
무슨 일인가 싶어 가까이 다가가 본즉 달맞이꽃이었다.
화장품과 한약의 원료로 쓰려고 재배한다 그랬다.
기타를 배우던 시절 이용복의 ‘달맞이꽃’을 떠올리며
석양에 활짝 피어 있는 그 넓은 달맞이꽃과 함께
이국에서 혼자 감상에 젖어 한참동안을 서 있어야 했다.
그러나 제대로 꽃을 들여다보게 된 것은
아무래도 오름에 다니기 시작하여 꽃에 관심을 두면서부터이다.
저녁 늦게 퇴근하거나 아침 일찍 출근할 때 만나는
월평동 어느 집 울타리 안에 자리한 이 꽃이
어쩌면 외지에서 들여온 꽃같이 보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어떤 기회로 용강동에서 본
석양 속 환한 달맞이꽃은
얼마나 고즈넉하고 아름다웠던가?
석양과 달이 서로 주도권을 잡으려고 다툴 때쯤인데
달맞이꽃은 아랑곳 않고 밭 하나 가득 피어
그 존재를 장엄하게 드러내고 있었다.
이 꽃은 제주시청에서 동쪽으로 가다가
남쪽으로 가는 길옆에 이렇게 활짝 피어 있었다.
저녁 어스름도 안된 시각인데
건물로 막힌 햇살을 피해 이렇도록 환한
노랑색을 토해내고 있었다.
♧ 이름 모를 총각을 흠모한 처녀의 전설
옛날 어느 마을에 달구경을 몹시 좋아하는 예쁜 처녀가 살고 있었다. 그 처녀는 그 마을의 양반 집 아들과 혼약이 돼 있었는데, 어느 날 밤 달구경을 하다가 다른 멋진 총각을 보았다. 그 후 처녀는 혼약이 된 양반 집 아들보다 이름도 성도 모르는 그 총각을 더 흠모하게 되었다. 혼약한 날이 되었지만 처녀는 혼인을 않겠다고 버텼다. 그래서 마을에서는 처녀에게 벌을 내리기로 하고 처녀를 험한 골짜기로 내쫓아 버렸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아무도 그 처녀의 이름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두 해가 지난 뒤 우연히 그 사실을 알게 된 총각이 그 골짜기를 찾았다. 그러나, 아무도 없는 텅 빈 골짜기에는 이름 모를 꽃 한 송이만이 자라고 있었다. 낮에 시들어 있던 그 꽃은 달이 뜰 때쯤이면 활짝 피어나는 것이었다. 온종일 그저 달뜨기만 기다리고 있던 꽃. 겨우 두 해 밖에 살지 못하는 이 꽃이 바로 그 처녀가 환생한 ‘달맞이꽃’이라고 한다.
♧ 달맞이꽃 - 윤인환
내세(來世)를 기약 못한 원죄로
억겁(億劫)의 세월 돌아오시려나
바람 타고 오시려나
구름 따라 오시려나
허허로움에
바스라진 별빛 속
긴 허리 곳추 세워 한밤을 서성여도
무심한 바람만 지나가고
귀뚜라미도 곤한 잠에 취했다
숙명처럼 깊어 가는건
햇살에 사그랑이 될 노란 그리움이다
청정 만월(滿月)의 사랑을
목 놓아 기다리는
서러운 가을의 사랑빛이다.
♧ 달맞이꽃 - 오경옥
어둠처럼 깊어지면
고요히 떠오르는 것들이 있다
눈빛 맑은 웃음으로
충만하게 했던 것들
삶에 묻혀 살듯
말갛게 가라앉혀진 것들이
밤바람 속에
희미해진 추억으로 풀어져
가슴 가득 환하게 피어나는
노오란 꽃이 되었다
♧ 달맞이꽃 - 김주혜
보름달이 뜨면 생각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정작 보름달이 떠오르면 서성이다 놓쳐버린 사람, 보름달이 스러질 때 지구 반대편으로 사라진 사람. 자작나무 숲보다 깊은 가슴을 가진 사람. 해바라기 긴 그림자보다 더 외로운 사람. 어둠 속에 갇힌 나에게 심보르스카의 시를 읽어주며 달빛 천지로 만든 사람. 가끔 꿈속에 빙하가 되어 벌겋게 벗어진 상처를 달래주며 흘러흘러 서쪽으로 사라진 그 사람을 위해 나는 세상에서 가장 슬픈 노래를 부르며 밤마다 바다를 건너갑니다
♧ 달맞이꽃 - 임영준
그리움이 깊어
꽃이 되었다
처연히 바라보기만 해도
님은 휘영청 반겨 주지만
짙은 밤은 매정하게
고개 돌린다
여명에 무늬진 가슴으로
님을 보내고
눈물 몇 방울로
하루를 잉태하지만
도저히
해갈할 수 없어
우리는 꽃이 되었다
♧ 달맞이꽃 - 이미순
어둠이 내린 밤
영롱한 별을 보려고
이렇게 서 있었던 것은 아니였습니다.
이슬은 풀읖을 적시며
소리 없이 다가오고
온종일 기다렸던
달빛 같은 환한 웃음
우리는 늘 마주 보며
서로의 안부를 확인하고
다시 그리워하고 있습니다
가까워지면 질수록
힘들어진다는 것을
모르는 것도 아닙니다
견뎌낼 만큼의
마음을 간직해야한다는 것은
어쩌면 가혹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 달맞이꽃 - 정군수
그대 볼우물 안에 뜨는 달
손닿으면 건질 듯한 거리에서
가슴만 퍼 올리다가
기진하여 꿈을 꾼다
깊어지는 물 밑바닥에
그림자만 일렁이다가
가쁜 숨으로 돌아온다
가는 것들은 제 향기로 가고
물은 흘러 안으로 드는데
그대 볼우물 안에 뜨는 달
호올로 몸을 씻다가
제 그림자로 몸을 씻다가
별빛 잦아드는 산언덕에서나
여위어 가는 눈 가장자리
한밤중 달무리로 떠오르려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