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비비추는 여름을 즐기고

김창집 2013. 7. 24. 01:08

 

대서이자 중복인 날

아무데도 나가지 않고 방안을 지키다

아무래도 몸이 허한 느낌이 들어

저녁이 되어서야 슈퍼에 나가

삼계탕 세트 하나 사다가 고아먹었으나

여전히 덥고 잠이 들지 않는다.

 

아이들이 모두 떠나간 집

집사람마저 회의 참석차 서울로 가버린 빈집

사진첩을 뒤져 비비추를 찾아놓고

오늘에 맞는 시를 뒤적인다.

 

 

♧ 중복허리 - 권오범

 

장마가 낳은 열대야가

날이 갈수록 비대해져

허구한 날 작정하고 쥐어짜

물퉁이가 된 7월 막바지

 

바람이 유통기간 지난 구름마저

말끔히 걷어내는 바람에

햇볕이 쏜살같이 뛰어내려

정수리 벗기려드는 오후

 

질곡의 세월 맥고자로 덮어버린 노인이

산더미처럼 갈무리한 종이박스와 함께

이글거리는 아스팔트 따라

남루한 리어카로 지구를 힘겹게 굴리고 있다

 

봉고차와 동업중인 확성기도

남산만한 수박이 오천 원이라고

대목 맞아 북새통인 보신탕집에게

언제부턴가 고래고래 호객하고  

 

 

♧ 야윈 그리움 - 홍윤표

 

비바람으로

야윈 가슴 한 쪽이 무너진다

 

봄빛 여의고 신록의 생수를 마시는 오후

열린 사립문을 닫으니

보고픔은 아미산(峨嵋山)

진달래꽃보다 먼저 설레인다

 

중복 속

뿌리깊은 면발처럼 내리는 비

소나기보다 강한 그리움이 쏟아진다

강렬한 태양도 함께 쏟아진다 

 

 

♧ 칠월 - 제산 김대식

 

바람 한 점 없는 무더운 칠월

녹음도 햇살에 축 늘어진 정오

땅 위로 오르는 뜨거운 열기

구름조차 게을러 하늘가에 자네

 

온다던 장맛비 어디에 퍼붓는지

어제도 오늘도 땡볕 무더위

어디선가 가끔 천둥소린 나는데

화분엔 축 늘어진 목마른 잎사귀

 

마른하늘 실비가 뿌리는 듯 마는 듯

가끔 검은 구름 하늘을 지나갔지

장마란 게 그렇더라. 그냥 오락가락

어떤 곳은 쏟아 붓고 어떤 곳은 구름 조금

 

연일연야 무더위 최고의 불쾌지수

더위에 모기에 잠 못 드는 여름밤

강바람 산바람 더위피해 물놀이

칠월의 여름날 불볕의 한여름 

 

 

♧ 시간 나누기 - 박종영

 

시간을 마음대로 나누어 주는

능력이 있다면,

사계절 온전하게 새가 울고 꽃이피게 하는

세월의 마술사가 되었을 것이다.

 

봄에서 겨울까지 24절기로 구분하여

혹독하게 아니면 가장 적절하게

게으른 빛의 홀림을 따 돌리고

한 개의 양분으로 키 큰 나무를 지켰을 것이다.

 

아름다운 풍경을 외면하면서

푸른 산 맑은 강을 지키기는 어렵다

우주안을 휩쓰는 바람의 조화나,

별이 무수히 강물에 몸을 던지는 안타까움이나,

무더위로 잠 못 드는 여름 밤도,

 

요즘 들어 계절이 사나워지는 이유를

알아 내지 못하는 것도

늘 울렁거리며 더위만 탓하기 때문이다. 

 

 

 그 여름, 고행의 길 - 홍윤표

 

내 귓전에 들리는 것은 다만

어리석은 죽음의 소리 뿐

아무 것도 들리지 않았다

들리지 않는 과년의 슬픔을 안고

대저울에 삿대질하는 손가락

미물의 아우성뿐이다

새벽빛 뚫고 해저를 가르는 폭주족의

야심을 달리는 원동기의 고동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누릇누릇 보릿대 익어 가는 한여름

중복과 말복 사이의 땀방울은

뜨거운 감자를 식혔다

요란한 미물 속에 커온 인고의 병상은

벽을 허무는 현란한 아우성 때문에

『만해』는 분명 고행하고 또 고행을 했다

그리고 깃발을 흔들었다

차라리 새벽이 오길 기다리는 것보다

어둠이 깔린 길을 산책하는 거룩한 침묵

다시 여린 새벽이 밝아오길 바라는 마음들

돌아서 생명있는 것에 대해 난

모두를 알 수가 없어 고행의

침묵만 센다.

 

 

 

♧ 들꽃의 지조 - 오보영

 

긴 가뭄 무더위

메말라버린 땅위에서도

 

꿋꿋이 피어올라 반기어주는

 

널 대하며 괜히 내가

 

부끄럽구나

 

그간

내리쬐는 뙤약볕에

목마름을 핑계로

 

네게 향한 발걸음 뜸하였으니

 

나약해진 나 자신을

 

탓할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