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소화 고은영 가을시편과 청미래덩굴 열매

김창집 2013. 10. 31. 00:17

 

10월의 마지막 날이다.

지난 일요일이 너무 맑아서인지

이틀 동안 중국 미세 먼지가 날아와

자꾸 눈만 흐려졌는지 의심했었다.

 

아침저녁으로 쌀쌀해진 날씨가

이미 11월의 기후로 바뀌는 걸 보면

이번 겨울도 꽤 추울 것 같다.

 

지금 한창 무르익은 청미래덩굴 열매와

오랜만에 소화(宵火) 고은영 시인의

가을시편을 함께 올린다.  

 

 

♧ 가을에는

 

우리들 생각의 창에 머무는

아름다운 가을은 허무요 아픔입니다

가을엔 어디론가 떠나고 싶은

상심한 우리 가슴으로

새로운 길이 하나 생겨납니다.

 

풍요의 결실과

넉넉한 추수의 부유함에도

가을 깊은 강을 건너는

우리들 마음에 바람 부는

비어있는 조그만 귀퉁이

 

떠날 곳이 없음에도 떠나고 싶은

그 어느 귀향의 종착지가

죽도록 그리운 날

 

정점 같은 어두움에

서글픔으로 물 오르는

삼등 칸 야간 열차를 타고

정처없이 떠돌다가

 

그리움 한 자락 이방인처럼

낯선 도시에 미련없이 훌쩍 버리고

눈물 젖은 삶의 손수건도 묻어 버리고

어두움의 깊은 혼에

따뜻한 불 밝히고 싶은 간절함이

가을엔 누구에게나

소망처럼 끊임없이 피고 집니다…. 

 

 

♧ 외로움도 알고 보니 사랑이더라

 

문디, 세상에 가장 외로운 사람이

세상을 가장 집착하는 법이더라.

미련 곰탱이 마냥 세상을 사랑하고도

세상을 갈증 하는 사람이더라.

외로워 세상을 사랑하고

오지 않을 사람을 기다리는 일이더라.

 

목메도록 기다리고, 기다리다가

쓸쓸하여 죽도록 외로워 지는 일

날마다 여위는 목, 머리만 커져서

머리가 무거워 흔들리는 일이더라.

 

기다림의 형편에 사로잡힌

자신을 보면서 아픈 마음 달래어

눈을 감고 하늘을 걷는 일이더라.

가을의 초입에도 기다리는 일은

눈에 밟히는 낙엽 소리조차 뭉클하는 일이더라.

 

온통 먹빛의 검은 얼굴로 튀어 오르는

그리움에 배가 불러

숨기운 사랑을 웩웩 토해내는 일이더라.

젖은 눈물로 계절도, 홀로도, 슬픔도

한 몸처럼 달래 가는 일이더라.

 

 

♧ 가을, 이별을 위한 서곡

 

이 계절 정처없이 떠도는

나는 그저 무형으로 젖어드는

흔적없는 공기였으면 좋겠습니다.

 

삶은 고달프고 서리오는 강변

그저 가을 황혼에 젖은 외로와

잔잔한 강물이었으면 좋겠습니다.

 

불거진 눈물로도 대답하지 못할

계절의 아픈 침묵은 진실로 서럽고

가시처럼 찌르는 이별의 고해입니다.

 

그것들의 떠남은 아름다워 슬프므로

깊은 가슴에 여울지는 쓸쓸한 허무라서

냉철한 이성까지 허물어지면

 

아, 아 나는 어둠 속에서

세상의 모든 기대를 포기하고

그리움이 잦아 들어 조용히 엎드려

떠나가는 그것들을 보며 흐느낍니다.

 

텅텅 비워 흰 속살 드러낸

어둠 속 마지막 긴 입맞춤의 눈물

그것들의 이별은 다시 만날 기약

썩어질 사랑의 고결함이기 때문입니다. 

 

 

♧ 10월엔 마지막 가을의 눈물을 쓰리

 

풋내가 사라진 10월

붉어진다

불거진다

군살을 빼던 잎새들이 붉어진다

살아있는 모든 가슴이 불거진다

돌출 형 햇살의 빗금은

호랑가시나무처럼 뾰족한 가시로

균형을 깨트리는 맛에 신들렸다

가끔 균형이 깨진

농익은 아픔을 적어 놓은 페이지

바람이 틈새에 숨어든 음색들

노랑 빨강 갈색조의 주홍빛 발열

10월엔 마냥 그리운 고향에 편지를 쓰리

아울 한 가을이 저만치 보랏빛으로 멀어져 가는

마지막 가을, 황홀한 눈물을 쓰리  

 

 

♧ 밤은 완연한 가을의 향연이다

 

밤이면 사위어가는 침묵의 발원지로부터

 

여름 숨결로 스미는 조용한 가을 연주가 시작된다

풀벌레 울음들은 혼성 중창으로

가을을 지향하는 그리움의 정곡을 찌르고

저 먼 강 하구 풀들의 잠결을 스치는

따스하고 잔잔한 조곡들이 어둠의 정적을 향에

고요한 발걸음으로 서성이기 시작했다 

 

 

♧ 가을 로망스

 

결실의 부피만큼

사랑으로 숙성된 햇살이

따뜻하게 비치는 창가에는

막장으로 가는 가을이

고개를 설레설레 흔들며

저만치 낙엽과 뜨거운 사랑에 빠지고

 

한 잔의 커피 향에

알 수 없는 그리움이

눈 뜨는 오늘 아침 마당엔

석유 냄새 밴 조간 신문보다

더 반가운 땡감의 붉은 얼굴에

가을의 수줍은 불 우물이 번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