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무원의 ‘물 詩’와 의림지
‘우리詩’ 11월호에는 ‘테마가 있는 소시집’으로
이무원 시인의 ‘물 詩’ 10편이 실렸다.
시인은 1979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물에 젖은 하늘’, ‘그림자 찾기’ 등을 냈다.
이 시에다 지난 9월 탐문회에서
충북지역에 답사 갔을 때 찍은
의림지(義林池) 사진을 곁들인다.
의림지는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저수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삼한 시대에 만들어진 수리 시설 중 하나이다.
신라 진흥왕 때 우륵(于勒)이 처음 방죽을 쌓았으며,
그로부터 700여 년 뒤인 고려시대에
고을현감 박의림(朴義林)이 다시 쌓은 것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농업용수로 크게 이용했으며,
지금도 제천시 북부 청전동 일대의 농경지에 공급한다.
저수지 주위에는 수백 년 된 소나무 숲과 수양버들이 있고,
그 기슭에 영호정, 경호루 등의 정자가 있어
제천시에서 유일한 경승지이자 시민의 휴식처이다.
저수지 안에는 예로부터 서식해온 빙어가 특산물로 유명하다.
♧ 물 詩 1
- 절정
물과 물이 몸을 섞는다
비운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완전한 합일
하나임을 느끼며
몸 전체로 하나가 된다
확인은 사랑의 병
물은 확인하지 않는다
헤어지면서도 물은
하나임을 느끼며
몸 전체로 하나가 된다
간절하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비단결보다
부드러운 포옹
억겁을 돌아도
추락을 모르는
절정의 꿈
스며들어
하나가 되는
생명
♧ 물 詩 5
-사랑
물 같은 사랑을 생각해 보네
갈증 없는 마음을 찾아 보네
물맛 같은 입술은 어디 있을까
콩자반 집듯 집을 수 있는 사랑은 없을까
안개이다가
구름이다가
길 잃지 않고
임자 바뀌지 않고
늘 내 베개 옆을 흐르는
물 같은 사랑을 생각해 보네
물 위에 뜬 꽃잎 하나 바라보네
바람든 마음 하나 지워보네
♧ 물 詩 6
-소엽 풍란小葉風蘭
천 길 벼랑
바위 끝
진종일
가부좌 튼
동자승
꼿꼿한 자세
갈매기 소리
화두 삼고
바람 속 물을 엮어
꽃을 피웠다
오! 날아갈듯
잠시 멈춘 발레리나
보는 이 없어도
애탈 것 없다
발밑엔
반짝이는 물결
머리 위엔
늘 파란 하늘
♧ 물 詩 7
-물소리
따스한 네 목소리가
내 마음을 치료하듯
풋풋한 네 목소리가
내 꿈을 키우듯
졸졸 흐르는 물소리 들으면
장미는 더욱 싱싱하고
더 많은 꽃송이를 피운다고 한다
어머니의 자장가 소리가
나를 키우듯
아버지의 근엄한 말씀이
나를 세우듯
소리로 크는 나무
소리로 피는 꽃
소리는 자연의 묘약
자연은 소리의 교향악
♧ 물 詩 8
-순환
이 물은 클레오파트라의 눈물
이 물은 양귀비의 눈물
이물은 황진이의 눈물
물은 무색
무취無臭
무미無味의
결정체
눈물은 기원의 소금을 친
순수의 꽃
영혼의 빛
이 잔에 넘치는
사랑이 묘약
이 잔에 가득한
이별의 아픔
시간이 지나면
증발하여
안개가 되고
구름이 되고
물이다가
눈물이다가
♧ 물 詩 9
-정화수井華水
소반 위
사발 하나
가득한
물
마음 속
한 정성
가득한
원願
물로 세운 탑
어머니
일생
♧ 물 詩 12
-색
청해靑海
녹해綠海
황해黃海
홍해紅海
흑해黑海
이름도
빛깔도
가지가지
그러나 물은 물
하나의 물
색은 옷일 뿐
노란 물감을 풀면
노란 바다
연분홍 물감을 풀면
연분홍 바다
너 혼자 바다가 된다면
외로움의 바다
나 혼자 바다가 된다면
기다림의 바다
우리가 바다가 된다면
사랑의 바다
♧ 물 詩 13
-처녀수
새롭기 때문에 새로움을 모르고
혼합을 모르므로 순수함을 모른다
하늘로 비상할 몸짓으로
땅에 스며들 욕망으로
족두리 쓰고
곤지 바르고
고개 숙여
숨결만으로
촛불 녹이는
신부의
꿈
땅속 깊이 바위 속에 갇혀
기다림의 날개 바르르 떨며
오늘도 문 열릴까
기다려 30억 년
수증기, 안개, 구름 눈, 비, 얼음
순환의 영원 속에
정지된 숨결
보이는 것만 보이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의 처녀
그림 속의 물
♧ 물 詩 14
-비 오는 날
비 오는 날은
꿈도 물이 되고
그리움도 물이 된다
모난 길도 물이 되고
높은 담도 물이 되어
물로 된 세상
하나가 되어
비오는 날은 사람들도 물이 된다
하늘과 땅이 이어지고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고
어제와 오늘이 함께 출렁인다
비 오는 날은
텔레파시의 주파수도 바뀌고
물이 된 사람들이
공중전화 옆에 서서
사랑의 편지를 쓴다
비오는 날은
모든 것이 물이 된다
♧ 물 詩 18
-파도 소리
강을 따라가면 바다에 이르리라
흐르는 물에 나를 맡기면
빛나는 바다는 나의 것이라 믿었다
해가 뜨는 곳에 살며
지는 해도 감싸주리라
그러나 나는 물 밑으로 물 밑으로 가라앉기만 했다
강물이 되기에는
바다가 되기에는
나는 너무 무거웠다
흘러가기 위하여
강물이 되기 위하여
바다가 되기 위하여
나는 배를 만들어 띄웠다
배 위에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수평선만 보였다
나는 수평선만 끝도 없이 밀어내다가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었다
그 때 나는 파도 소리를 들었다
가벼운 것은 아름답다
달빛처럼
별빛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