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이무원의 ‘물 詩’와 의림지

김창집 2013. 11. 10. 00:20

 

‘우리詩’ 11월호에는 ‘테마가 있는 소시집’으로

이무원 시인의 ‘물 詩’ 10편이 실렸다.

시인은 1979년 ‘시문학’으로 등단

시집 ‘물에 젖은 하늘’, ‘그림자 찾기’ 등을 냈다.

 

이 시에다 지난 9월 탐문회에서

충북지역에 답사 갔을 때 찍은

의림지(義林池) 사진을 곁들인다.

 

의림지는 충청북도 제천시에 있는 저수지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삼한 시대에 만들어진 수리 시설 중 하나이다.

신라 진흥왕 때 우륵(于勒)이 처음 방죽을 쌓았으며,

그로부터 700여 년 뒤인 고려시대에

고을현감 박의림(朴義林)이 다시 쌓은 것이라고 한다.

 

예로부터 농업용수로 크게 이용했으며,

지금도 제천시 북부 청전동 일대의 농경지에 공급한다.

저수지 주위에는 수백 년 된 소나무 숲과 수양버들이 있고,

그 기슭에 영호정, 경호루 등의 정자가 있어

제천시에서 유일한 경승지이자 시민의 휴식처이다.

저수지 안에는 예로부터 서식해온 빙어가 특산물로 유명하다. 

 

 

♧ 물 詩 1

   - 절정

 

물과 물이 몸을 섞는다

비운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완전한 합일

하나임을 느끼며

몸 전체로 하나가 된다

확인은 사랑의 병

물은 확인하지 않는다

헤어지면서도 물은

하나임을 느끼며

몸 전체로 하나가 된다

간절하다는 것이 이런 것인가

비단결보다

부드러운 포옹

억겁을 돌아도

추락을 모르는

절정의 꿈

스며들어

하나가 되는

생명 

 

 

♧ 물 詩 5

   -사랑

 

물 같은 사랑을 생각해 보네

갈증 없는 마음을 찾아 보네

물맛 같은 입술은 어디 있을까

콩자반 집듯 집을 수 있는 사랑은 없을까

안개이다가

구름이다가

길 잃지 않고

임자 바뀌지 않고

늘 내 베개 옆을 흐르는

물 같은 사랑을 생각해 보네

물 위에 뜬 꽃잎 하나 바라보네

바람든 마음 하나 지워보네 

 

 

♧ 물 詩 6

   -소엽 풍란小葉風蘭

 

천 길 벼랑

바위 끝

진종일

가부좌 튼

동자승

꼿꼿한 자세

 

갈매기 소리

화두 삼고

바람 속 물을 엮어

꽃을 피웠다

오! 날아갈듯

잠시 멈춘 발레리나

 

보는 이 없어도

애탈 것 없다

발밑엔

반짝이는 물결

머리 위엔

늘 파란 하늘

 

 

♧ 물 詩 7

   -물소리

 

따스한 네 목소리가

내 마음을 치료하듯

풋풋한 네 목소리가

내 꿈을 키우듯

 

졸졸 흐르는 물소리 들으면

장미는 더욱 싱싱하고

더 많은 꽃송이를 피운다고 한다

어머니의 자장가 소리가

나를 키우듯

아버지의 근엄한 말씀이

나를 세우듯

소리로 크는 나무

소리로 피는 꽃

 

소리는 자연의 묘약

자연은 소리의 교향악 

 

 

♧ 물 詩 8

   -순환

 

이 물은 클레오파트라의 눈물

이 물은 양귀비의 눈물

이물은 황진이의 눈물

 

물은 무색

무취無臭

무미無味의

결정체

 

눈물은 기원의 소금을 친

순수의 꽃

영혼의 빛

 

이 잔에 넘치는

사랑이 묘약

 

이 잔에 가득한

이별의 아픔

 

시간이 지나면

증발하여

 

안개가 되고

구름이 되고

 

물이다가

눈물이다가

 

 

♧ 물 詩 9

   -정화수井華水

 

소반 위

사발 하나

가득한

 

마음 속

한 정성

가득한

원願

 

물로 세운 탑

어머니

일생

 

 

♧ 물 詩 12

    -색

 

청해靑海

녹해綠海

황해黃海

홍해紅海

흑해黑海

 

이름도

빛깔도

가지가지

그러나 물은 물

하나의 물

색은 옷일 뿐

 

노란 물감을 풀면

노란 바다

 

연분홍 물감을 풀면

연분홍 바다

 

너 혼자 바다가 된다면

외로움의 바다

 

나 혼자 바다가 된다면

기다림의 바다

 

우리가 바다가 된다면

사랑의 바다 

 

 

♧ 물 詩 13

   -처녀수

 

새롭기 때문에 새로움을 모르고

혼합을 모르므로 순수함을 모른다

 

하늘로 비상할 몸짓으로

땅에 스며들 욕망으로

족두리 쓰고

곤지 바르고

고개 숙여

숨결만으로

촛불 녹이는

신부의

 

땅속 깊이 바위 속에 갇혀

기다림의 날개 바르르 떨며

오늘도 문 열릴까

기다려 30억 년

수증기, 안개, 구름 눈, 비, 얼음

순환의 영원 속에

정지된 숨결

보이는 것만 보이는 내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의 처녀

그림 속의 물 

 

 

♧ 물 詩 14

   -비 오는 날

 

비 오는 날은

꿈도 물이 되고

그리움도 물이 된다

모난 길도 물이 되고

높은 담도 물이 되어

물로 된 세상

하나가 되어

비오는 날은 사람들도 물이 된다

 

하늘과 땅이 이어지고

사람과 사람이 이어지고

어제와 오늘이 함께 출렁인다

비 오는 날은

텔레파시의 주파수도 바뀌고

물이 된 사람들이

공중전화 옆에 서서

사랑의 편지를 쓴다

비오는 날은

모든 것이 물이 된다 

 

 

♧ 물 詩 18

   -파도 소리

 

강을 따라가면 바다에 이르리라

흐르는 물에 나를 맡기면

빛나는 바다는 나의 것이라 믿었다

해가 뜨는 곳에 살며

지는 해도 감싸주리라

그러나 나는 물 밑으로 물 밑으로 가라앉기만 했다

강물이 되기에는

바다가 되기에는

나는 너무 무거웠다

흘러가기 위하여

강물이 되기 위하여

바다가 되기 위하여

나는 배를 만들어 띄웠다

배 위에서는 바다가 보이지 않았다

수평선만 보였다

나는 수평선만 끝도 없이 밀어내다가

길을 잃고 표류하고 있었다

그 때 나는 파도 소리를 들었다

가벼운 것은 아름답다

달빛처럼

별빛처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