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홍성운의 시조와 배풍등

김창집 2013. 11. 14. 09:01

 

가을에 익는 열매

어느 것 하나 곱지 않은 게 없지만

이 배풍등은 그 빛이 으뜸이다.

 

다 익은 것은

방울토마토를 닮아

티없이 맑다.

 

책장을 바라보는데, 문득 홍성운의 처녀시조집

‘숨은 꽃을 찾아서’가 눈에 띄어

시 몇 편을 골라 같이 싣는다. 

 

 

♧ 배풍등은

 

  배풍등은 쌍떡잎식물 통화식물목 가지과의 덩굴성 반관목(半灌木)으로 동아시아 지역에 분포하고, 산지의 양지쪽 바위틈에서 서식한다. 백모등, 백영, 촉양천이라고도 부르며, 덩굴의 길이가 약 3m까지 자라고 줄기의 밑부분만 월동하는데, 윗부분이 덩굴성이며 선모가 난다. 잎은 어긋나고 달걀 모양이나 긴 타원형이며 밑에서 갈라지는 것도 있다.

 

  꽃은 양성화이며 8∼9월에 흰색으로 핀다. 가지가 갈라져서 원뿔 모양 취산꽃차례에 달리고, 꽃이삭은 잎과 마주나거나 마디 사이에 난다. 열매는 장과로서 둥글고 붉게 익는다. 유독식물이나 열매와 전초를 채취하여 햇볕에 말려 촉양천(蜀羊泉)이라 하여 약용하는데, 쓰고 매운맛이 있어 해열, 이뇨, 거풍, 소종에 효능이 있다.

 

 

♧ 가을 밤나무 숲

 

생밤 쩍쩍 벌어지는 밤나무 숲에 서면

집단 무의식의 환장스런 오르가슴

배란기 야생 밤꽃이 환장케 부풀더니

수액 빨던 잎맥이며 번들거리던 이파리도

가을새 한 마리가 끌고 온 바람 타고

불혹에 새치를 뽑듯 초록물을 빼고 있다

 

 

♧ 들국화

 

  빙점 향한 어느 순간

  내 의식은 깨어난다

 

  늦은 나비 흩트리는 아침 안개 틈새로 조금은 슬픈 눈빛 이 세상에 던지며 짐짓 비탈에 낮게 사는 들꽃이여

 

 간간이

 뼈를 울리는

 섬바람도 섭섭하다 

 

 

♧ 말똥구리가 있는 풍경 1

 

땅 위를 기지마는 흙을 밀지 않는다

 

낮으면 낮은 대로 견디는 습성 있어

 

말똥을 굴리더라도 가슴은 투명하다

 

섬에서 태어나서 섬을 기대 살아가는

 

하찮은 생명 하나 붙잡은 풍경이란

 

아득히 떠밀려 가는 물을 먹은 낮달이네 

 

 

♧ 이어도, 낮은 불빛은 타오르고

 

바다를 곁에 두고 살아본 사람들은

수평선이 발행한 주식을 할당받아

이따금 어시장에서 시세를 가늠한다

 

주가가 낮으면 낮은 대로 견디어 온

흉어의 자맥질에 불안한 물새들아

섬 하나 젖은 꿈자리 미리 찍어 두었다

 

성산포 해가 뜨면 이어도에 달이 뜨고

한림항 바람 일면 이어도는 출어하네

누구냐 시장 개입해 상한가를 들먹이는

 

매각한 이 없어라 반딧불만한 생각 하나

시원의 물결 따라 떠 흐르는 섬이여

까치놀 낮은 불빛이 난바다에 가득하다  

 

 

♧ 한담동 포구

 

놓칠 것은 다 놓쳤다

그래도 닻줄 하나

한담동 바람 끝을

끝끝내

놓지 않는

 

포구는 목선 한 척으로

바다 몇 평 지켜섰다

 

물보라도 몇 섬쯤은 덤으로 넘겼을까

내 정수리로 부서지는

가멸찬 야성이여

 

생미역

그 뿌리 같은

세상 한 끝 휘어진다 

 

 

♧ 피사체로 나앉은 가을

 

  억새꽃 나의 가을은 광입자(光粒子) 파동에 취해 늦씨방 터지는 산골의 그 파열음 마침내 사금파리로 피사체 드러내는

 

  가을은 또 하나의 변주 위한 몸부림, 화려한 시간이 만들어낸 저 금속성, 순순히 홍조를 띠는 한때의 여인들이

 

머리칼 머리칼 자르듯

이 땅은 반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