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작가 가을호의 시와 감
* 아직도 오등동 길가에 남아 있는 감
♧ 영남동* 무주선원 - 김영숙
차 한 잔 하고 가요
원도 한도 내려놓고
아픈 자 아프게 한 자
모두 불러 세우고
이끄네
젖은 손들을
콩알 절집 원추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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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동 : 서귀포시 대천동에 있는 잃어버린 마을
♧ 바람의 래퍼 - 김진숙
곱게 딴 레게 머리
올이 다 풀릴 때까지
뿌리째 흔들려봐야 보이는 계절 한쪽
먼 지평
평화의 땅에
햇살 흩는
바람손
♧ 동백 붉은 이유 - 김영란
- 현의합장묘에서
생목숨
결딴내듯
툭,
지고 마는
치명의
붉은 낙화
가슴에 찍혀
열두 살
처음 받아든
목이 메는
내 호적
♧ [유고시] 방선문에 들다 - 정군칠
저 내[川] 건널 수 없네
눈 속의 안개 걷어냈으나
물길이 발길을 가로 막네
들렁궤, 입 열고 귀 열어
어서 오라
어서 오라
손짓 끝 그대 남긴 글 한 자
오늘은 읽지 못하네
물 위로 흐르는 시간만
하염없이 바라보다,
바라보다가 돌아선 걸음
깎아 세운 벼랑이
넓적한 습자지 한 장 펼쳐놓고 있네
잎맥 푸른 마삭 줄기
일획의 필체가 하늘 문을 여네
옛글들
그 뒤를 따르고 있네
♧ 흔적 - 김수열
푸드덕
산비둘기 날아간 자리
팔랑
팔랑
깃털 하나 달고 있다
날아간 듯
안 날아간 듯
있는 듯
없는 듯
♧ 항아리 바다 - 나기철
-모리셔스 시 ․ 2
성채에서 내려다 본
포트루이스 시가는
사라봉에서
내려다보는
제주시 같다
살기 위하여
붉은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
살기 위하여
제주 바다를
건너온
우리들
바로 앞
보가산맥 위
항아리 같은 무지개
도라지호
제주 바다를
건너온다
♧ 라면을 끓이다 - 양영길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
가슴 한 구석에 불이 들어앉아
뚜껑이 열렸다 닫혔다 할 만큼
쪽팔리던 날
라면을 끓였다
세상 뜨거운 맛
매운 맛으로 여름내 키운
매운 고추 두어 개 싹둑싹둑 잘라 넣고
눈 속에서도 푸르등등함 잃지 않은
쪽파도 슥슥삭삭 썰어 넣고
뚜껑을 닫았다 열었다 하면서
달걀을 넣을까 말까
노른자는 터트릴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면발이 불고 잦아들어
국물도 없었다
아차! 스프도 안 넣고 끓인 라면
초간장을
쳐 먹을까 그냥 먹을까
비빌 언덕 찾듯
무정란이라도 넣어 노른자 터트리고 휘휘 저어
비빔라면으로 먹어볼까
3년 묵은 신 김치 곁들여 먹으며
바닥에 깔아놓은 철지난 묵은 신문을 보다가
국물도 없는 라면에 그만 목이 막혔다
주먹을 불끈 쥐고
가슴을 치고
또 쳤다
♧ 위 - 김경훈
나는 알고 있다
니가 뭘 먹었는지
물을 먹었는지
뇌물을 먹었는지
비장秘藏한 그 무엇이
소화가 되는지
역류가 되거나
반위反胃가 되는지
나는 알고 있다
니가 어찌 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