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제주작가 가을호의 시와 감

김창집 2013. 11. 20. 08:28

 * 아직도 오등동 길가에 남아 있는 감

 

♧ 영남동* 무주선원 - 김영숙

 

차 한 잔 하고 가요

원도 한도 내려놓고

 

아픈 자 아프게 한 자

모두 불러 세우고

 

이끄네

젖은 손들을

콩알 절집 원추리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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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남동 : 서귀포시 대천동에 있는 잃어버린 마을  

 

 

♧ 바람의 래퍼 - 김진숙

 

곱게 딴 레게 머리

올이 다 풀릴 때까지

 

뿌리째 흔들려봐야 보이는 계절 한쪽

 

먼 지평

평화의 땅에

햇살 흩는

바람손  

 

 

♧ 동백 붉은 이유 - 김영란

    - 현의합장묘에서

 

생목숨

결딴내듯

툭,

지고 마는

치명의

붉은 낙화

가슴에 찍혀

열두 살

처음 받아든

목이 메는

내 호적 

 

 

♧ [유고시] 방선문에 들다 - 정군칠

 

저 내[川] 건널 수 없네

 

눈 속의 안개 걷어냈으나

물길이 발길을 가로 막네

 

들렁궤, 입 열고 귀 열어

어서 오라

어서 오라

 

손짓 끝 그대 남긴 글 한 자

오늘은 읽지 못하네

 

물 위로 흐르는 시간만

하염없이 바라보다,

바라보다가 돌아선 걸음

깎아 세운 벼랑이

넓적한 습자지 한 장 펼쳐놓고 있네

 

잎맥 푸른 마삭 줄기

일획의 필체가 하늘 문을 여네

옛글들

그 뒤를 따르고 있네 

 

 

♧ 흔적 - 김수열

 

푸드덕

산비둘기 날아간 자리

 

팔랑

팔랑

깃털 하나 달고 있다

 

날아간 듯

안 날아간 듯

 

있는 듯

없는 듯 

 

 

♧ 항아리 바다 - 나기철

    -모리셔스 시 ․ 2

 

성채에서 내려다 본

포트루이스 시가는

사라봉에서

내려다보는

제주시 같다

 

살기 위하여

붉은 바다를

건너온

사람들

 

살기 위하여

제주 바다를

건너온

우리들

 

바로 앞

보가산맥 위

항아리 같은 무지개

 

도라지호

제주 바다를

건너온다 

 

 

♧ 라면을 끓이다 - 양영길

 

낙동강 오리알이 되어

가슴 한 구석에 불이 들어앉아

뚜껑이 열렸다 닫혔다 할 만큼

쪽팔리던 날

라면을 끓였다

 

세상 뜨거운 맛

매운 맛으로 여름내 키운

매운 고추 두어 개 싹둑싹둑 잘라 넣고

눈 속에서도 푸르등등함 잃지 않은

쪽파도 슥슥삭삭 썰어 넣고

뚜껑을 닫았다 열었다 하면서

달걀을 넣을까 말까

노른자는 터트릴까 말까 망설이는 사이

면발이 불고 잦아들어

국물도 없었다

 

아차! 스프도 안 넣고 끓인 라면

초간장을

쳐 먹을까 그냥 먹을까

비빌 언덕 찾듯

무정란이라도 넣어 노른자 터트리고 휘휘 저어

비빔라면으로 먹어볼까

 

3년 묵은 신 김치 곁들여 먹으며

바닥에 깔아놓은 철지난 묵은 신문을 보다가

국물도 없는 라면에 그만 목이 막혔다

주먹을 불끈 쥐고

가슴을 치고

또 쳤다 

 

 

♧ 위 - 김경훈

 

나는 알고 있다

니가 뭘 먹었는지

물을 먹었는지

뇌물을 먹었는지

비장秘藏한 그 무엇이

소화가 되는지

역류가 되거나

반위反胃가 되는지

나는 알고 있다

니가 어찌 되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