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야자수가 있는 겨울 풍경

김창집 2013. 12. 19. 10:28

 

12월 셋째 일요일

성산읍에 있는 일출랜드를 찾았다.

 

곳곳에 서 있는 야자수가

믿음직스레 다가온다.

 

따뜻한 남쪽나라

서귀포시에 속하긴 하지만

 

조금 지대가 높은 곳에 자리한

한겨울의 공원

 

이 겨울 추워 웅크리고 있을

전국의 독자들을 위해 워싱토니아와

카나리야자의 활기찬 모습을 올려본다. 

 

 

♧ 따뜻한 겨울 - 정민호

 

그 해 겨울은 눈이 내려

三冬삼동을 묻혀 살았는데

闊葉樹활엽수 반짝이는 잎사귀마다

잔잔한 遠景원경을 나는 보았다.

 

작게 구멍 뚫린 푸른 문을 열고

뿌리 깊숙이 내리는 발끝까지

조금씩, 조금씩 밀고 들어가면

神신은 나를 위해 침실을 마련했다가……

 

그 해 그 겨울은 눈이 내려

三冬삼동을 묻혀 살았는데

흙 속에 묻힌 밀알의 오들오들한 껍질을 뚫고

솟아오르는 잔잔한 숨결을 보았다.

 

둘러싸인 城郭성곽에 문을 잠그고

수많은 낱알들의 속살거림을

들릴락 말락 주고받는 이야기를 위해

神신은 사랑의 이불을 준비했다가……

 

그 해 겨울에 눈이 내려

어느 섬 마을에 가서 보았는데

따뜻한 바닷물을 마시고 자란 소라가

빗장을 잠그고 사는 것을 보았다.

조금씩, 조금씩 커 가는 바위 속에서

보일락 말락 따라 큰다는 軟體연체를

나는 그때까지 모르고 돌아왔다.  

 

 

♧ 따뜻한 겨울을 위해 - 예당 조선윤

 

꽃이 아무리 고와도

가슴으로 흐르는 사랑보다 더 고우랴

태양이 아무리 뜨거워도

불타오르는 사랑보다 더 뜨거우랴

 

영혼의 문 두드려 샘솟듯

맑은 금빛 햇살로 쏟아 붓는

마르지 않는 눈부신 사랑

상상을 초월하는 위대한

삶에 의미를 부여하는

가치 있는 정열의 사랑

 

진실의 꽃 피워 세상을 빛내고

삭막한 가슴 곱게 물들여

아름다운 세상 창조하는 사랑은

마음의 갈피마다 피어나

엄동에도 꽃을 피운다. 

 

 

♧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 임영준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산동네 사람들은

지하도에 얼어붙고

손 벌릴 데도 없어 사그라지고

울화가 치밀어 터져버렸는데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눈감고 귀 닫은 사람들에겐

무척이나 따뜻했네

 

 

♧ 삶 - 고혜경

 

해풍에 곳곳한 야자수 잎

바람보다 먼저 눈을 뜬다

한 뼘 더 자란 아들의 키만큼

햇살로 한 살의 나이가 채워졌다

빨래를 베란다에 널고 개는 동안

흐린 구름이 젖은 빨래에 누워

한 줌 햇살로 몸을 말린다

구름에 뭉개진 일상 너머 비가 내린다

빗 속을 서성이는 눅눅한 습성

때론 못 견뎌 골이 패인 자리

발자욱마다 길들여진 고랑

한 길로 트여 새 길로 흐른다

축축함에 늘어진 세월

시간의 마른 옷을 골라입는다

한 나절이 지나거나 혹은 며칠이 걸려

다시 한 줌 햇살로 몸을 말린다

어둠 속의 아침이 세상을 열고 닫는다

삶은 편안한 옷 한 벌 갈아입고

그 속에 들어가 피와 땀을 적시는 것

신문이 새 옷을 입고 아침에 접속할 무렵

또 다시 한 줌 햇살로 몸을 말리겠다

  

 

♧ 제주도 이미지 - 최진연

 

아침이면 대합 껍데기로

무쇠 가마 밥솥을 긁는 어머니와

성산포 해맞이가 생각난다.

시원한 소낙비에 동동 떠나가는 물가마와

해파리들의 정오

태양이 아이스크림처럼 녹아 흐르고,

저녁에는 용 한 마리가 등천하는 서쪽 하늘과

한라 산록에 풀을 뜯는 조랑말들의 평화

동굴 속에서 밀회하는 비바리들

용암만큼이나 뜨거운 방언들이 떠오르고,

언제나 전복 속껍데기처럼 영롱한 환상을 잡는

갸름한 접시 안테나, 또는

어디서나 바다가 보이는 안락하고 우아한 침실

여인의 허벅살에 검푸르게 돋아 있는

관능의 사마귀가 생각난다.

플랑크톤을 먹은 내장이 들여다뵈는 물벼룩들

옥돔들이 유영하는 바다 위에

백록담만한

활엽수 한 장이 떨어져 출렁이는 게 보이고,

물질하는 여인들의 휘파람 소리와

남태평양을 향해

손을 흔드는 야자수들과

어디서나 만나는 정다운 우리 이웃

얼금배기 돌하르방의 아기 같은 웃음이 떠오른다.   

 

 

♧ 야자수 - 유일하

 

야자수가지 끝에

초연한 내 마음 걸고

 

아픔도 묻어둔 체

고즈넉하게 매달리어

 

천진하고 해맑은

미소들의 낙원이 펼쳐진 곳

극과극의 조화를

고고히 휘저어본다

 

열매 영글어가듯

너처럼 누렇게 변하면

네 목을 뚫고 빨대로

서서히 맛보리라

인생의 맛을

아! 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