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사년을 보내며
말도 많았고 탈도 많았던
2013년 계사년이 저물어 갑니다.
한 일도 많았지만
이루지 못한 일도 많이 남았는데
하릴없는 시간은 멈추기를 거부합니다.
하지만 시간은 그렇게 흐르는 것,
오늘을 잇는 내일이 남아 있어
어제를 반성하며
내일의 희망찬 계획을 세워봅니다.
한 해 동안 이곳을 찾아주었던 여러분께
따뜻한 위로의 말을 전합니다.
♧ 한 해를 보내며 - 심의표
낡은 커튼 자락
뒤 흔들어 놓고
달아나 버린 돌개바람아
끊고 맺고 못한 한마디
귓속 깊이 묻어 두고
삽상한 겨울 하늘 저 멀리서
저녁놀 펼쳐오면
손 흔들어 반겨 주려냐.
온 누리 가득 교회의 종소리
산사의 인경소리 젖어오면
돌아오지 않는 너를 위해
정지된 시간 되돌려 줄거나
오늘은 푸른 물감 으깨어
하얀 도화지 펼쳐놓고
빛 고운 한 폭
세모의 풍경 그려야겠다.
♧ 한 해를 보내며 - 박인걸
쏜 살이 지나가듯
전깃줄에 바람이 스치듯
덧없는 세월을 타고
전류처럼 흐르는 시간 들
나이 오십에는 오십 킬로
육십에는 육십 킬로
칠십에는 칠십 킬로 속도로
세월이 겁난다던 친구여!
앞만 보고 살았던 세월도
아등바등 살았던 세월도
지금 와 생각하니
부질없는 일들 이었어
사랑만이 삶을 행복하게 하고
용서가 마음에 평안을
진실은 부끄러움이 없게 하니
새해에는 더욱 바르게 사세.
♧ 한해를 보내며 - 반칠환
한해의 노을이 내리는 저녁 강가에서
발을 씻는 사람들아
그 여름의 뙤약볕과 큰물과
바람을 모두 건넜느냐
휩쓸고 몰아치던 그 길
무릎걸음으로 걸어온 이들 한두 사람뿐이랴
한해의 노을이 내리는 저녁 강가에서
이마를 훔치는 사람들아
올해도 세상의 한쪽에 빛이 드는 동안
세상의 다른 쪽에는 그늘이 드리웠더냐
여기서 빛이 드는 동안 세상의 다른 쪽에는 그늘이 드리웠더냐
여기서 벚꽃이 피는 동안, 저기서 목숨 지는 소리를 들었느냐
어떤 이는 사랑을 잃고 울며, 어떤 이는 사람을 잃고 울더냐
한해의 노을이 내리는 저녁 강가에서
땀을 닦는 사람들아
그 더운 땀방울로 하여
어떤 이는 열매를 얻고
어떤 이는 줄기를 얻었지만
어떤 이는 그저 땀방울뿐이더냐
한해의 노을이 내리는 저녁 강가에서
눈시울 붉은 사람들아
느리게 이울고 있는 태양의 어깨를 보았느냐
세상을 다 비춘 다음
제 동공에 넘치는 눈물로
저를 씻고 있는 것을 보았느냐
한해의 노을이 내리는 저녁 강가에서
돌아보는 사람들아
올해도 잠깐의 평화와 긴 불화가 깃들었더냐
그러나 살아서 평화, 살아서 불화
저 강물들은 어떤 평화에도 오래 쉬지 않고
어떤 불화에도 저를 다 내어주지는 않나니
한해의 노을을 밟고 돌아오는 사람들아
내일은 또 새가 울고, 꽃들은 피리라
비바람 몰아치고 파도는 높으리라
그러나 살아서 꽃, 살아서 파도
우리 모두 오늘에 온 것처럼 내일에 또 닿을 것이니
사람들이여, 새 길을 가기 위해 오늘 모든 길을 멈추자
♧ 해를 보내며 - 박태강
스르르 또 한 해가 넘어간다
년 초 그렇게 많은 소망도
이젠 세월 따라 흘러가고
쓸쓸한 거리의 풍경
하늘거리는 벌거벗은 침묵
덜렁거리는 가로수 불빛
모두 그리움 되어 차곡차곡
내 영혼 깊숙이 남아
먼 훗날 추억되어 살아 있겠지
지나가는 허전함
떠나가는 그리움
모두가 나의 굵은 나이테 되어
이룬 것 없이 몸뚱아리만 커져
저녁으로 가는 발걸음만 무거워
한 해의 아쉬움을 말없이 되뇌인다.
♧ 이 해를 보내며 - 김규동
기러기 떼는 무사히 도착했는지
아직 가고 있는지
아무도 없는 그 깊은 밤하늘을
형제들은 아직도 걷고 있는지
가고 있는지
별빛은 흘러 강이 되고 눈물이 되는데
날개는 밤을 견딜 만한지
하룻밤 사이에 무너져 버린
아름다운 꿈들은
정다운 추억 속에만 남아
불러 보는 노래도 우리 것이 아닌데
시간은 우리 곁을 떠난다
누구들일까 가고 오는 저 그림자는
과연 누구들일까
사랑한다는 약속인 것같이
믿어달라는 하소연과도 같이
짖궂은 바람이
도시의 벽에 매달리는데
휘적거리는 빈손 저으며
이 해가 저무는데
형제들은 무사히 가고 있는지
아무것도 이루지 못한
쓸쓸한 가슴들은 아직도 가고 있는지
허전한 길에
씁쓸한 뉘우침은 남아
안타까운 목마름의 불빛은 남아
스산하여라 화려하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