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새해에는 저 말처럼

김창집 2014. 1. 2. 08:30

 

♧ 새해의 기도 - 임영준

 

새해에는

모두 빛나게 하소서

저마다의 소망을 이루어

별처럼 반짝이게 하소서

 

새해에는

고아한 향기에 취하게 하소서

비우고 여미고 아래로 임해

절로 스며들게 하소서

 

새해에는

도도한 강물이 되게 하소서

거침없이 그러안고 흘러

한 가닥이 되게 하소서

 

새해엔 누구나

사랑에 몸 달게 하소서

평생을 두고두고 반추하면서

아련히 떠다니게 하소서 

 

 

♧ 나도 내 빛깔로 - 유소례

 

우람하고 매무새 빼어난 말(馬)보다는

짧은 다리 초췌한 허리의

조랑말이 좋습니다

 

햇빛 쓰다듬는 덤불 속 풀꽃,

낮게 신음하고

끊어질 듯 이어진 외진 길

뚜벅뚜벅 걷는

조랑말 따라 가겠습니다

 

비척거리는 발자국

마음으로 어루만지며

지쳐 흘리는 게거품 눈물로

닦아내며

쉬지 않고 걷겠습니다

 

흉내 낼 줄 모르고

쓰러지지 않는 걸음으로

제 색깔을 지키는 조랑말처럼

나도 낮은 자리에서

비추어오는 하늘빛을 의지합니다.

  

 

♧ 새해 아침 - 유자효

 

해가 바뀐다는 것은

껍질을 한 꺼풀 벗는 일이다.

사위어드는 아픔 속에서

목숨을 태우는 양초의 심지가

또다시 한 매듭 줄었다는 얘기다.

종교에서

현실로 돌아설 때

경험하는 추락.

그 빈도를 줄이기 위해

몸부림치며

이제는 좀더 분명히

똑똑히 보고 싶다고

기도를 한다.

나의 얘기가 아닌

우리들의 얘기를 하고 싶다고

기도를 한다. 

 

 

♧ 새해 아침 - 오세영

 

하늘은 이미

어제의 하늘이 아니다.

첫 고백을 들은 여인의

귓속에 어리는 속삭임처럼

향그럽게 감도는 바람.

우리는 오늘

닫힌 창문을 연다.

 

들은 이미

어제의 들이 아니다.

첫경험한 여인의

여린 가슴에 고이는 젖처럼

부풀어 오른 흙,

우리는 오늘

언 땅에 꽃씨를 뿌린다.

 

보아라

변하지 않은 자 누구인가,

영원을 말하는 자 누구인가,

내일이 오늘인 이 아침에

보아라

세계를 깨우는 황홀한 빛.

 

바다는 이미

어제의 바다는 아니다.

첫사랑에 빠진 여인의

푸른 눈동자에 어리는 별빛처럼

설레는 파도,

우리는 오늘

먼 항구를 향해 배를 띄운다.  

 

 

♧ 새해를 향하여 - 임영조

 

다시 받는다

서설처럼 차고 빛부신

희망의 백지 한 장

누구나 공평하게 새로 받는다

이 순백의 반듯한 여백 위에

무엇이든 시작하면 잘될 것 같아

가슴 설레는 시험지 한 장

절대로 여벌은 없다

나는 또 무엇부터 적을까?

소학교 운동회날 억지로

스타트 라인에 선 아이처럼

도무지 난감하고 두렵다

이번만은 기필코......

인생에 대하여

행복에 대하여

건강에 대하여

몇번씩 고쳐 쓰는 답안지

그러나 정답은 없다

그렇다면 나는 지금

재수인가? 삼수인가?

아니면 영원한 未知修인가?

문득 내 나이가 무겁다

창문 밖 늙은 감나무 위엔

새 조끼를 입고 온 까치 한 쌍

까작까작 안부를 묻는다, 내내

소식 없던 친구의 연하장처럼

근하 신년! 해피 뉴 이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