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학의 향기

양순진 시집 ‘자작나무 카페’

김창집 2014. 1. 11. 07:53

 

양순진 시인이 시집

‘자작나무 카페’를 보내왔다.

 

시인은 제주 신도1리에서 출생하여

제주대 국문학과 졸업하고

2009년 ‘시인정신’으로 등단했으며

한라산시문학, 시인정신문학회 회원이다.

 

시집은

1부 빗소리의 암호

2부 무드셀라증후군

3부 능소화 핀 집

4부 나무 그늘에 깃들다

5부 멎는다는 것

      으로 짜여졌다.

 

해설은 문학평론가 정신재 교수가 쓰고

도서출판 오감도에서 발행했다.

 

시 다섯 편을 골라

지금 한창 제주 겨울을 달구고 있는

피라칸타 열매와 함께 올린다. 

 

 

♧ 홍어

 

죽어서도 웃겠습니다

7kg 밖에 안 되는 무게의 납작한 몸

보름달 뜰 때까지 삭혀 고스란히

저녁처럼 저물겠습니다

살아서 당신의 포구에서 행복했습니다

깊이를 알 수 없는 심해

날렵하게 가르던 물살이

이제 조용합니다

나의 허무가 때로

독한 향기로 당신 몸 속 전파된다면

나로 인해 푸르던 섬

영산포 달빛 끌어당기세요

밀물과 썰물 줄다리기에 둥글어진 검은 돌

영혼에 젖어드세요

 

죽어서도 웃겠습니다

살아서 누린 해풍과 별빛 고스란히 내 몸에

새기겠습니다

죽어서도 썩어서도 당신의 포구는

영원한 나의 밀항지

염부의 절대 가업처럼

푸른 바다는 생의 염전입니다

그 염전에 스며들어 삭힌 해풍

달빛 타고 노래하듯이

죽어서도 살겠습니다 

 

 

♧ 마라도 숨비기꽃

 

말의 씨가 수 천 수 만 물살임을

마라도 그 끝에서 보았습니다

태양 기우는 동안

아무리 검은 바위 굳게 입 다물고

 

가슴

새까맣게 타버려도

바위를 치고 사라진 물살은 더 이상

섬 위로 떠오르지 않습니다

주인 사는 집보다 공소 더 많은 마라도엔

숨비기꽃 말없이 피고 집니다

수 천 수 만 물살에 입은 얼고 귀는 멀어

가슴은 온통 푸른 멍투성이

그 멍씨 섬에 뿌리내렸습니다

말의 씨는 귀로 막고

귀의 독은 가슴으로 잠재운 시간

주인이 길들인 말보다 주인 없는 말이

더 날뛰는 건 고삐가 그립다는 것

말은 하늘보다 높다고

말은 바다보다 깊다고

말은 소금기 먹은 섬보다 따뜻하다고

마라도 그 끝에서

보았습니다

끊어질 듯 끊어질 듯 이어온 숨비소리

마라도 숨비기꽃

다시, 生입니다 

 

 

♧ 자작나무 카페

 

한참 오래 전

정실길 걷다가 긴 나무 기둥 심어진

집한 채 보았네

안은 볼 수 없었지만 나무줄기에 잎이 돋고

자작나무 카페라는 간판 올려졌을 때

또 한 번 스쳐 지나갔네

그대와 함께였네

그대와 나 아직 서먹서먹해서

그 문 열고 들어가지 못했네

카페 문 여는 것보다 그대 맘 여는 게

먼저였기에 마음 깊이 숨겨두었네

그대 안 궁금한 것처럼

카페 안 궁금했지만

다음 生에 라고 약속했네

가을 가고 겨울이 올 즈음에 그가 떠났네

그의 마음 열어보기도 전에

카페 안 들어서지도 못한 채

자작나무 사랑은

설원에 묻혀버렸네

다시, 정실길 걷게 되었네

봄꽃들 피어나 서성였지만 난 혼자였네

자작나무 잎은 무성할 대로 무성하고

카페 문 밖 빈 의자들 날 보고 있었네

안은 커튼에 가려져 볼 수 없었네

들어갈까 하다가 그냥 스쳐지나갔네

그대 안 들어서도 못한 채 보내버린

그 한 生 못내 아쉬운 것처럼

자작나무 카페를 지나치네

혼자 그 앞을 스치네

그가 자작나무로 서 있네

아직도 그대 안 열어보지 못했네

 

 

♧ 물꽃

 

마음의 문 열 때는

막을 수 없는 물처럼 차고 넘쳐

당신에게 닿기 위해

아래로만 흐르면 되었는데

 

돌아가려 둥 돌렸을 때

물이랑마다 심어 놓은

물꽃 피고 있었네

 

흐르는 것도

거슬러 오르는 것도

당신에게 향하는 것임을

 

물은 아네 

 

 

♧ 부처 오셨다

 

부처님 오신 날,

극락사에서 연등 켜고 백팔 번 절하니

절밥 준다

나물에 고추장 얹고

내 안에 응어리진 업

고인 눈물마저 비벼 꿀꺽 삼켰다

연 목 꺾이듯 울컥 핏물이 번진다

몇 겁의 죄가 엉켰다 쏟아지는지

몇 겁의 인연이 엉켰다 풀리는지

온통 진흙탕이던 내 안 연꽃이 고개 내민다

 

죄도 사랑도 짓이겨 버무리고

업보인 양 삼켜내면 꽃으로 환생하는구나

빛나는 경전이 되는구나

마침내는 극락으로 이르는구나

 

돌아오는 길, 등꽃 환하고

깃털처럼 가볍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