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유채꽃 사이로 봄이

김창집 2014. 2. 17. 08:48

 

지난 토요일은 날씨가 너무 좋아

늦은 봄날 같더니

오늘은 다시 빗방울이 떨어진다.

 

2월이 든 뒤부터는

비 안 오는 날보다

비오는 날이 더 많게 느껴진다.

 

지난 토요일

오름길라잡이 7기생들과 함께 찾은 말미오름,

제주올레길 1코스엔 무밭에 유채꽃이 피어

이렇게 늦은 봄날을 즐기고 있었다.

  

 

♧ 유채꽃을 보면서 - 김승기

 

여린 몸

나무도 아닌 것이

늘 푸른 넓은 잎으로 겨울을 견뎌내느라

얼마나 몸과 마음이 아팠을까

진노랑빛 진한 향기로

벌 나비 부르는 몸짓

눈물 난다

아픔이 지나간 뒤

오는 기쁨은 오히려 눈물이 난다는데,

눈부신 햇살 맑은 바람으로도 가릴 수 없는

환한 웃음 뒤에 배어 있는 슬픈 상처 자국

행복한 외로움으로

겨울의 강을 건너온 개선의 훈장인가

눈물나는 웃음

무엇이 그런 웃음을 웃게 하는가

내가 삶의 강을 건너고 나면

어떤 웃음을 웃을까

빙그레 웃고 있는 너를 보면서

그윽한 향기는 없더라도 그저 환하게

웃을 수 있었으면, 하는

살아가는 법을 생각한다

  

 

♧ 유채 꽃 - 박인걸

 

봄이 상륙한 제주

찬 바람 속에 일어선 유채

활짝 터트린 꽃 잎

노랑나비 떼의 왈츠

 

홀로피지 아니하고

무리지어 피는 꽃

봄날의 첫날 밤 신혼

천사가 펼쳐준 꽃구름

 

두 손 맞잡은 밀월(蜜月)

더 없이 행복한 미소

꽃 잎 밟고 가는 길에

무지개 빛 서린 축복

 

한 쌍 나비되어

사뿐 사뿐 걷는 발걸음

황금담요 잔잔한 파도

꿀 향기 가득한 사랑

  

 

♧ 유채 꽃 그 봄의 향기(香氣) - (宵火)고은영

 

그 봄, 안개 가득한 작은 섬

섬 안의 섬으로 남아 고립과 싸우던

내 절망의 징검다리 그 푸르렀던 징검다리

은하수 강물 따라 흐르던 투명한 순수의 시대

바다, 유채 꽃향기, 바람, 안개, 돌, 가난,

수많은 물고기, 그리고 마른버짐 핀

비위 약한 깡마른 나....

 

비옥한 미소로 일관하는

유채 꽃향기와 파도 소리와

종일 바다 바다 외치는

해초 내음을 버무리고

지천에 바람을 휘모리로 담아내면

 

성산포 들판에 넘치던 하루해가

젖무덤 같은 둥근 오름을 껴안고

서쪽에서 잠들 때까지 싫어도 야금야금

영혼의 양식으로 먹어야 했던

정말로 비린 고독은 지겹기도 하였다

 

그만 멀미가 앞서면

줄창 유채꽃 향기와 해초 냄새를

한 됫박씩 게워냈다

싫었다

가난한 형편도 깡마른 육신도 배고픔도

유채꽃 향기도 바다 냄새도....

날마다 몸을 할퀴고 영혼을 허무는 바람결에

그 짙은 염병할 유채꽃

샛노란 얼굴로 온 마을 설레발까고

안방까지 노오랗게 물들인 뻔뻔한 봄의 향연

 

아, 절망을 부르던 그것은

희망의 노래인 줄도 모르고

파도 소리와 함께 나의 봄을 노략하던

주검 같은 어둠인 줄로 착각하던 때가 있었다

  

 

♧ 유채꽃 필 무렵 - 반기룡

 

움켜쥐면 쥘수록

노란 물감이 파레트 위에서 정사를 시도한다

 

흥건히 파고드는 물줄기 앞에

노란 저고리 전율을 하고

겨우내 움츠렸던 이목구비 활짝 열면

온 천하가 제주도처럼 환하다

 

유채 밭 이랑마다

푹 익은 꽃으로 애무를 하고

자분자분 비벼대는 입김은

노란 가문에 족보처럼 파고든다

 

일약 몸과 몸이

정신과 정신이 합일되어

발가벗은 사랑으로 다가오고

한 템포 느리게 노란 혓바닥 내밀며 접선을 시도한다

 

처억 척!

하마 달라붙었네

 

유채꽃 들판은

유두처럼 몽실몽실한 지번(地番)으로 바뀌고

꽃대궁 속에는 튼실한 씨앗의 소리 들리는 듯 하다

 

응애응애!

산란의 소리 뜨끈뜨끈하다 

 

 

♧ 겨울 유채꽃 - 이승훈

 

  제주 민속 마을로 가던 길인지 민속 마을에서 돌아

오던 길인지 분명치 않다 송 선생이 차를 몰고 뒷좌석

엔 제주 출신 서안나 시인이 앉아 있었다 내가 놀란 건

길가 넓은 밭에 노란 유채꽃이 가득히 피어 있던 것 겨

울에도 유채꽃이 피느냐는 나의 물음에 송 선생 왈 정

신 나간 꽃입니다 나는 하도 재미있어 말했다 그래 미

친 꽃 송선생 사람만 미치는 게 아니라 꽃도 미치는

세상이야 그리고 한참 가니 또 노란 유채꽃이 나타나

고 이번엔 안나가 말했다 선생님 잠시 내려 구경 좀 해

요 그래 그러자 우린 차에서 내려 꽃구역을 하고 안나가

노란 유채꽃 한 송이를 꺾던 제주 겨울 시골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