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의 삼지닥나무
4월과 함께 오는 꽃샘추위,
그 꽃샘추위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삼지닥나무.
우리 집 손바닥만 한 화단에
개복숭아에 이어 두 번째로 큰 삼지닥나무에
금년엔 셀 수 없을 정도의 꽃이 폈다.
제주, 어제부터 일주일 늦게 시작된
왕벚꽃 축제에선
꽃샘바람에 휘날리는 꽃비를 걱정한다.
아, 삼지닥나무 꽃이
저렇게 밝고 해맑은데….
♧ 4월의 그리움 - (宵火)고은영
그리움이여 피어 있어라
상처마다 햇살이 든다
가장 정직한 슬픔이여
그대의 영혼에 스민
햇살의 질량은 얼마나 되나
오늘 우리에게 저 바다는
절망과 온전한 아픔의 백서가 아니냐
그 아름다운 열정에
사랑은 봄의 말을 잃고 청춘은 사랑을 잃고
바다 위에 도화가 되어 떠돈다
사월의 꽃들은 피고
봄의 여울은 깊어가는데
나긋한 너의 속삭임
우리 영혼의 고향은 봄
가만 손을 내밀어 꽃잎에 가슴을 대면
무구(無垢) 한 사랑 앞에
미움을 묻는 자가 어디 있으랴
믿었던 사랑에 영혼을 도륙당한
삼월의 꽃들은 이 봄 흔적이 없어도
영원히 간직할 사랑의 아름다움을 위하여도
그리움이여 피어 있어라
우리 뜨겁던 사랑이
영원한 이별로 돌아앉아 있어도
그리움이여 피어 있어라
♧ 4월 - 최미경
벚꽃이 전쟁처럼 흩날리는 저녁
바그다드 도서관이 불에 탄다
길 위에 사람들은
낡은 책 안으로 사라져가고
죽음은,
검은 주머니 가득
모래 폭풍을 싣는다
어둠을 달리던 바람의 마차들
달빛아래 드러나는 폐허의 이빨들
희망도
절망도
깨진 꽃잎을 주워 담으며 중얼거린다
…봄은,
학살이다
홀쭉해진 계절을 틈타
별빛도 마른 티그리스 강가
어린 소녀들의 물동이 안에서도
달은 자라고
포탄이 떨어진 자리마다
흰 꽃이 선다
♧ 4월 - 목필균
벚나무 바라보다
뜨거워라
흐드러진 꽃잎에
눈을 다친다
저 여린 향기로도
독한 겨울을 견뎠는데
까짓 그리움 하나
삼키지 못할까
봄비 내려
싸늘하게 식은 체온
비벼대던 꽃잎
하르르 떨구어져도
무한대로 흐르는 꽃소식
으슬으슬 열 감기가
가지마다 열꽃을 피워댄다
♧ 4월 - 임영준
바람은 눈치 없어도
봄볕이 여유로우니
사람들이 다가온다
세상이 눈 감고 있어도
하늘은 더 크게 열리고
온갖 꽃들이 지분거린다
밝게 뻗어나는 아이들이
시간을 쉬 먹어버리지만
계절은 절로 익는다
앞섶을 풀어헤친 날들이
거리를 헤매다니다가
내일에 기꺼이 접힌다
♧ 4월의 빈 집 - 이향아
내 걸친 옷이 오늘은 더 남루하다
겨울 늪을 행군하던 금욕의 장화를 벗어
진흙을 턴다
곤핍한 등짐을 부리듯
울적한 추억을 물리듯
인동의 긴 묵념을 날던 새떼 돌아와
참을 수 없는 내 은둔을
기웃거리는 4월
아리한 해면의 하늘이여,
바람은 고기압
시샘도 눕히고
간지럼타는 살구나무 긴 도랑을 굽이쳐
보랏빛 아편 향기를 피워낸다
꽃이 못된 것들은 죄다 눈을 감아라
귓속말로 번져나는 신명,
질탕한 뒷소문,
봄,
4월,
빈 집을 지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