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순선 시집 ‘저, 빗소리에’와 철쭉꽃
김순선 제2시집
‘저, 빗소리에’가 나왔다.
김순선 시인은
2006년 ‘제주작가’와 ‘현대문예’로 등단해
첫 시집 ‘위태로운 잠’을 냈으며,
제주작가회의 회원이다.
시집에서 시 몇 편을 골라
지난 5월 10일부터
4박5일간 지리산을 헤매다 찍은
철쭉꽃과 함께 올린다.
♧ 시인의 말
벚나무 가로수가 많은 동네로 이사오고
네 번째 벚꽃이 피고 있습니다
오래 견디고
거침없이 약동하는 봄의 서정에 깃들어
두 번째 허물을 벗습니다
2014년 봄
♧ 감물 들이며
머뭇거리는 여름에
작대기를 하나 세워 놓고
지나간 세월을 갈아
주물럭
주물럭
녹색감물에 노을을 풀어
활활 타오르는
단풍빛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꿈꾸고 싶어라
♧ 때죽나무 종 되어
사려니 숲 황톳길에
때죽나무 가지마다 꽃향기 만발해
숲을 적시네
사려니 숲 황톳길에
간밤에 내려온 하얀 별무리들
눈이 부셔 차마 밟지 못하네
나, 때죽나무 은은한 종이 되어
진동하는 여름을 살겠네
꿀벌의 주파수 붕붕거리며
사려니, 사려니, 살겠네
♧ 월대천의 봄
외도 바람은 가시가 없다
아라동의 눈도
신제주의 쌀쌀한 바람도
월대천 밑으로 숨어 버린다
동장군 같은 운동기구와
그림자 하나 없던 산책로에도
노송의 향기가 번져
밖으로 아이들을 부르고 있다
바다와 민물이 합방하여
햇살에 몸 비비며
월대천 은어의 지느러미가
반짝이고 있다
♧ 풍경
봄비가 지나간 한두기 바다는
모래밭에 장서를 썼다 지운다
낮은 하늘은
생크림 같은 구름
한입 베어 먹으라고 넌지시 내밀고
등대 끝 삼발이에 앉아있는 갈매기는
한 폭의 수묵화를 감상하듯
사라봉 팔각정에 시선이 멈추었다
오수에 잠긴 듯 조용한 바다
까치발로 다가와서 소리 없이 흔들릴 때
나도 풍경이 되어
흔들리는가
♧ 저, 빗소리에
만약,
꽃이 한 번 피고 영영 질 줄 모른다면
그때도 아름답게 보일까
길가나 로터리에 잘 가꾸어 놓은 꽃도
때론,
제복을 입은 마네킹 같이
성형 가면을 쓴 웃음이
낯설 때도 있는데
오늘따라
오름 어느 자락에 없는 듯 피어 있던
작은 들꽃 한 송이
자꾸 눈에 아른거린다
다듬지 않아서
쉽게 가까이 다가갈 수 없어서
더 그립고 애틋한
가슴을 두드리는
저, 빗소리에
어딘가에서는 꽃 한 송이 피어나고
어깨를 들썩이는 울음 같은
저, 빗소리에
어딘가에서는 꽃 한 송이 지고 있겠지
꽃은 질 때 더 아름다워야 하리
황홀한 사랑도 저물 때가 있듯이
누군가의 가슴에
더 애틋한 그리움으로
고여 오듯이
♧ 백조일손
슬퍼하지 마라
우린 처음부터 하나였느니라
나, 너가 아니라
한 민족, 한 형제였느니라
콩 한쪽도 나누어 먹었듯이
우린 이미 살도 피도 뒤엉키며
마음도 꿈도 하나인지 오래느니라
돌담 위로 식게* 떡 나누어 먹었듯이
육십 평생 어둠 속에서
서로 부등켜안고
우린 이미 하나가 되었느니라
지금은 간새 따라 올레길 걸어가듯
서로 용서하며
모두 함께 걸어가야 할 길
슬퍼하지 마라
우린 처음부터 하나였느니라
길 위에
찔레꽃 향기 그윽한
마음의 길 만들었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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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게 : 제주어로 ‘제사’를 말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