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지리산 얼레지

김창집 2014. 5. 22. 11:12

 

지난 주 토요일에 갔던 지리산

1300고지 이상 되는 산골짝엔

온통 얼레지 꽃으로 가득했다.

 

분홍빛 아름다운 자태로

일행들에게 즐거움을 주던 꽃,

접사렌즈를 갖고 가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적당한 시선을 두고 감상하시길….

 

얼레지는 백합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비늘줄기는 피침형으로 땅속 깊이 들어 있고,

위에서 두 개의 잎이 나와서 수평으로 퍼진다.

잎은 난형 또는 타원형으로 녹색 바탕에

자주색 무늬가 있고 가장자리가 밋밋하다.

꽃은 초여름에 홍자색 꽃이 밑을 향해 피고,

어린잎은 식용하며 비늘줄기는 약용한다.

높은 지대의 비옥한 땅에서 자라지만

산골짜기에서 자라는 것도 있다.

우리나라, 일본 등지에 분포한다. 

 

 

♧ 오솔길 - 권경업

 

가끔씩 이런 질문을 받습니다. 왜 산에 가느냐고.

그러면 나는 서슴없이 대답합니다. 길 찾으러 간다고.

 

지리산 대원사가 있는 유평리에서 천왕봉을 오르는 길은 오솔길입니다.

언뜻 언뜻 속살 내비치는 자주끝동 반회장저고리 스란치마의 옷고름을 풀어놓은 듯한 가을 오솔길은, 귀 막힌 아래 세상 사람들 귀뚤귀뚤 귀 뚫으라고 귀뚜라미가 우는 취밭목으로 인도합니다.

 

큰 산을 넘는 길은 오직 오솔길뿐입니다. 오솔길은 높이 오르는 길이 아니라 깊이로 파고드는 길이기에 태풍 ‘나비’에도 무너지지 않았습니다. 이어진 듯 끊기고 끊어진 듯 이어지는 오솔길은 하늘에 다다르는 지상의 유일한 길입니다. 아스팔트 포장의 큰길이 지나가는 곳은 산이 아닙니다. 문명은 더 빠르고 더 넓은 길을 원해서 지리산 성삼재 허리를 잘랐지만 자연은 더 좁고 더 느린 길을 원합니다. 산과 산 사이에는 늘 그런 길이 있습니다. 겨울이 끝나면 얼었던 가슴 풀어 헤쳐 얼레지 제비꽃 곱게 피우는,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그런 오솔길이 있습니다. 남과 북 사이에도 지금 그런 길이 열리고 있습니다. 외가닥이지만 질긴.  

 

 

♧ 얼레지의 봄날은 간다 - 이정자

 

저기, 지나가는 여자를 놓고

허리 상학이 발달한 여자,

허리 하학이 발달한 여자, 운운하며

사내 몇 몇이 나른한 봄 속으로 걸어 들어갑니다

그렇게라도 시시덕거리지 않으면 봄날은 못 견딜 일인지

제 그림자를 지우며 멀어져가는 벚나무 아래서

형이상학도 형이하학도 제 안에 다 품고 있는 듯한

꽃, 얼레지가 생각나는 것이었습니다

꽃이 피면서 여자 치마 뒤집어지 듯 뒤집어진다고

꽃말까지 바람난 여인이라니!

이유 있는 반란이라면 서슴치 않는

요즘 꽃들이 제 아무리 화끈하다하여도

바람은 아무나 나나

얼레지는 피어나는데

무엇 그리 두려워 가시를 드러내며 살고 있는지

보일 듯 말 듯 숨어있는 요염함을

한껏 꽃대로 밀어 올리며 살아도 좋을

봄날이 속절없이 가고 있었습니다

  

 

♧ 얼레지 - 김종제

 

당신, 심산유곡의 몸에서

수줍은 꽃 피었네

산그늘 아래 칠년을 기다렸으니

보라색 문을 열어젖히고

캄캄한 계곡을 보여주었네

어둠 속 저 동굴로

성큼 한 발 내디디면

깊은 못 속으로 빠져드는 일이네

씨앗을 내리는 일이네

열매를 맺고 죽는 일이네

얼레지, 마주 보는 일 없으면

얼레지, 슬픈 사연 없겠지

얼레지, 질투 같은 일도 없겠지

봄 없으면 저 꽃 볼 일 없으련만

오늘도 깊은 산에 올라

당신 만나는 꿈만 꾸고 있네

전령처럼 다가와서

사약 내리고 달아났으니

얼레지, 환장할 봄이 지폈네

얼레지, 빛의 감옥에 갇혔네

얼레지, 살 속에

젖가슴 같은 문신 새겼네

봄 오지 아니하더라도

나, 얼레지 같은 당신에게

몸 쑤욱 들이밀고 싶은데

겨우 다다른 입구에

입산금지라는 글만 걸려있네  

 

 

♧ 얼레지꽃 - 최원정

 

봄 햇살이

단단하게 수직으로 꽂히는

호젓한 산길

 

앉은뱅이 양지꽃

봄볕 바라기로

노곤 노곤해 질 때

 

보랏빛 쓰개치마 곱게 쓴

얼레지 두 송이

살포시 고개 떨구고

그리움으로 애끓는 마음

짐짓, 옹송그려 보지만

 

파랗게 날이 선

따가운 봄 햇살에

그만, 더운 심장까지

데이고 말았다  

 

 

♧ 얼레지꽃 - 김내식

 

얼레 얼레 얼레레!

눈발이 날리는데

벌써 봄인 줄

알았나봐

 

칼바람 부는 깊은 산골

지리산 천왕봉 아래 빨치산 비트처럼

그 호된 시련을 견디려고

부엽이불 덮고서

깊이 잠들어

 

깊은 잠 새벽꿈에

쏘아오는 봄 햇살을 집중포화로

화들짝 놀라

깨어나구나,

 

이제는 그만

역사의 뒤안길로 접어들어

편안히 쉬시기를

그대 얼레지!  

 

 

♧ 얼레지 - 김승기

 

길고 긴 겨울을 뚫어내느라

여린 숨결이 얼마나 상했을까

 

그렇게도 얄상한 목숨줄기로

뼛속에 옹이 박힌 얼음덩이 어떻게 녹여냈을까

 

하루를 꽃피우기 위해

땅 밑에서 백일을 꿈꾸었는데

아무렴, 얼음의 벽이 두꺼워도

코끝으로 느끼는 봄내를 막지 못하지

 

봄꽃들이여

티 없이 노랑웃음 저마다 눈이 부셔도

상처 없는 삶이 어디 있으랴

 

온통 불그죽죽 피멍든 얼굴이어도

오늘의 기쁨을 준 훈장인 걸

무엇이 부끄러울 수 있으랴

 

이제 봄바람 불었으니

씨를 맺는 작업은 나중의 일

따스한 햇살 받으며 활짝 웃어야지

 

천진스럽게 웃고 있는

홍보라

그 맑은 웃음이 황홀하다.  

 

 

♧ 얼레지 - 공석진

 

바람난 여인은

요염한 자태로

유혹을 하네

얼레 얼레 얼레지

 

얼굴 벌개진 남정네

다급한 노래로

말을 더듬네

아가 아가 아까씨

 

선혈이 낭자한

자줏빛 사랑은

절벽 바위틈에도

숨이 넘어가도록

비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