섬초롱꽃 저리 고우면
섬초롱꽃 저리 고우면
5월도 다 가는 것이라 했지.
이리저리 떠돌다 돌아와 들여다본 골목길
건너편 집 화단엔 꽃들이 한물 가버리고
어제 동창생 녀석들과 숲길 가려다,
시간이 안 맞아 혼자 남아
비 맞으며 집으로 오는 길에 만난 것들은 이리도 싱싱한데,
5월은 이번 주로 막을 내리려나 보네.
섬초롱꽃은 초롱꽃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줄기는 자줏빛이 돌고, 뿌리에서 나오는 잎은 잎자루가 길며,
줄기에 달리는 잎은 잎자루가 짧아지다가 없어진다.
6~7월에 연한 자줏빛 꽃이 피는데,
우리나라 특산종으로 울릉도에 분포한다.
♧ 섬초롱꽃 - 목필균
끝없는 푸른 물결
투명한 하늘
울릉도가 고향인 섬초롱꽃
도심지 꽃밭에 피어났다.
하얗게 울리는 종소리
말없음표가 도막지며
고주파로 퍼진다.
하나아,
두울,
세엣,
오늘 앞에 어제가
오늘 뒤에 내일이
조롱조롱 매달린다.
♧ 都心도심에서 만난 섬초롱 - 김승기
뼈저린 사연이 있었겠지
누구의 손에 이끌렸는지 몰라도
꼭 정든 땅을 떠나야만 했는지
서울의 길모퉁이 콘크리트 담장 옆에서
땡볕 온몸으로 받으며
대낮에도 등을 켜야 하는 어둠을 품어 안고
억지웃음을 피워야 했는지
수없이 날아와 박히는 낯선 시선들 속에
한 번쯤은 정다운 눈길이 있었을까
어쩜 저리도 선명한 빛깔로
화안히 불을 밝히고 있을까
뼛속까지 파고드는 외로움
밤이 깊은데,
너를 바라보는 내 가슴이 따뜻해지네
왜 이리도 그리운 걸까
돌아가고픈 생각도 없지만,
돌아가도 어제의 고향이 아니련만,
이제는 되돌아갈 수 없다는 미련이 남은 걸까
그래, 살아가는데 어찌 이곳저곳을 가리겠느냐
메마른 땅도 정 붙이고 살면
그게 고향이 되는 것을
내 집이 되는 것을
都心의 아스팔트길
콘크리트 담장 옆에 터 잡은
섬초롱
쏟아지는 불볕햇살 아랑곳없이
오늘도 활기차게 꽃을 피운다
♧ 섬초롱 꽃네야 - 박이현
길을 물어
예까지 왔으니
눈이라도 한 번 맞춰주렴
적멸에까지 좆아온
끈질긴 그리움이다
잊고 지내려
무던히도 애썼는데
나도 모른다
왜 여기까지 달려 왔는지
널 보고 있으면
지금 막 돌고 있는
분주한 이 핏줄
이토록 사랑이 일어나는 봄 밤
결이 환한 네 꽃초롱 속에
나를 가두어 다오
♧ 초롱꽃이 피었네 - 양영길
지난 늦여름 친구네 집 뜨락에 있던 섬초롱꽃
꽃을 다 피워내고 지쳐 앉은 섬초롱꽃
한 포기만 달라고
딱 한 포기만 주라고 조르고 졸라도
말려버릴 거라고
죽어버릴 거라고
두 손을 내젓는 것을
더위에 지친 몸
양심을 안주 삼아 한 잔 술로 달래다가
술김에 슬쩍 뽑아다 심어놓은 섬초롱꽃
아하~ 살아 있었네 꽃이 피었네
오월의 이른 아침에 세 송이나 피었네
접어두었던 양심이 꽃으로 피었네
찰랑찰랑 종소리 울려오네
졸고 있는 양심을 깨우려는가
내 영혼의 어두운 구석을 밝히려는가
돌담에 앉은 텃새 한 마리
내 눈을 쳐다보며 눈동자를 굴리네
♧ 감포항*에서 - 천봉현
아직 만선의 깃발 보이지 않았다
섬초롱꽃 흔든 해풍 선창 밖 떠돌고
등대 끝 갈매기 감아 올린 하늘
구름 몇 점 날리고 있었다
알전구 희미한 어물전 밖
손 흔들어 떠난 그림자 생각하며
나는 노을 속 그때를
타오르는 출렁임 앞에 내려놓았다
쓸쓸하다는 것은
피로한 마음 철썩이는
물결의 홰 맞으며
섬처럼 묵묵히 맞장구 쳐야 한다는 것을
나는 오래 전 알고 있었지만
먼 기억 실은 뱃고동 소리와
젖은 눈의 기다림 속에서
해질녘 포구
비린 그림자 멸치 어군처럼 모여 들면
나는 또 서투른 어부 되어
만선의 추억 싣고 닻을 내리고 있었다
낮달 지난 얼굴 그물질하는 바다
시름에 겨운 사나이를
오래 붙박아 세워 두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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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포항(甘浦港) - 경북 경주시 감포읍에 있는 항구
♧ 정생동에서 - 김종익
보건소 뒤뜰 작은 식물원
늙은 앵두나무 가지에
눈먼 호롱 깊은 잠을 잔다
어린 생강나무 몇 그루
앵두나무 백발을 바라보며
재잘거린다
도라지 더덕 삽주싹
참나리 섬초롱 참꽃마리
어우러진 구석에
키 작은 족두리풀 하나
하얀 당귀꽃 환한 미소에
깊은 한숨 쉬는데
기억의 저편에
호롱불 켜 들고 앵두를 따던
이웃 집 순이가 하얗게 웃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