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작가 봄호의 시와 민백미꽃
모처럼 올라갔던 한라산
6월 첫날인데도
민백미꽃이 피었다.
김순남 시인이 이번에 발간한
산문집 ‘섬, 바다의 꽃잎’에 꽃말을 찾아보니,
‘그대 곁에 머물고 싶어요’다.
민백미꽃은 박주가릿과에 속한 여러해살이풀로
높이 30~60cm로, 줄기를 자르면 흰 젖 같은 유액이 나온다.
잎은 마주나고, 5~7월에 흰 꽃이 산형 꽃차례로 달린다.
뿌리는 한방에서 해열제나 거담제(祛痰劑)로 쓰인다.
우리나라, 일본, 만주 등지에 분포한다.
♧ 통영에 앉아서 - 김수열
동짓달 초사흘 달이 솜털 같이 따스한
어느 시인의 죽일 듯 사랑한 통영에 와서
아구수육에 낮술 한 잔
옛 장수가 은하에 병장기를 씻고 싶다던
큰집에 들러 시원스레 똥을 누고
어스름한 다찌집에서 두 잔 그러다가 또 한 잔
다음날 아무 생각 없이 일어나
동피랑에 올라 어묵 두 개 유자차 한 잔
보길도 시인이 소개한 중앙시장 물메기집에서
맑은 해장술 한 잔 다시 한 잔
해는 아직도 중천에 그저 그렇게 떠 있는데
어느 영화감독이 사랑한
바다가 보이는 나폴리에 비스듬히 앉아
이렇게 되도 않은 시 나부랭이를 끄적이면서
문득 산다는 게 지나치게 행복하지도 앉지만
그렇다고 마냥 불행한 것도 아니라는 생각을 해보는 것이다
통영에서도 그렇지만 내가 사는 바다에서도
바다는 늘 바다였고
나는 언제나 나였으니까
너도 그렇고
♧ 싹아지 많은 사람들 - 양영길
싹수가 푸르등등하고 싹아지가 많은 사람들이
싹수가 노랗고 싹아지 없는 것들에게
‘어림도 없다’, ‘택도 없다’고 큰소리를 친다
잘 먹고 때깔 고운 사람들일까
싹수가 노랑하면 어떻고
싸가지가 없으면 또 어떠랴
‘택’인지 ‘어림’인지
좀 있는 사람 몇이 머리를 맞대고
싹수가 노란 이야기로 궁시렁거리더니
‘국물도 없다’고 목청을 높이다가
멱살을 잡거니 발길질을 하거니 넘어지고 뒹굴고
아!수라장이다
허파에 바람 든 사람일까
날로 먹으려던 사람들일까
주머니에서 전화기를 꺼내들고
연신 고개를 숙여대며
전화질이 한창이다
바지저고리가 되지 않으려는 사람들일까
오지랖을 넓히려는 사람들일까
♧ 파격(破格) - 김광렬
물속에 나무 서 있고
다소곳이
초승달 내려앉았다
바람이 발뒤꿈치 들고
사분사분 걸어갈 때
물살이 사르르 흔들렸다
나무도 초승달도
살짝 이마를 찡그렸다
내 눈살도 찌푸려졌다
허나, 미워하지 마라
때로는 파격(破格)이
살짝 삐쳐나간 눈썹처럼
고울 때 있으니
♧ 혼자 - 김규중
가족 네 명이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고 있는데
작업복을 입은
한 남자가 들어와
국밥을 시키고 후닥닥 먹고 간다
나도 여러 번
저런 적 있다
♧ 매화차에 손 끝은 붉고 - 김세홍
푸슴,
눈발이 날리는 창 앞에
흐드러진 능수매화 촉이 붉고
간밤에 찾아온 벗을 맞아
젊지 않은 벗이
옹알이하려는 것들을 몇 줌씩 놓아
찻잔 속에 끓는 물을 붓는다
자전의 소용돌이 따라
양지의 날 수를 다 셈하는 봉오리가
천천히 코끝에서 만개하고 있다식은 햇볕에 흐느적이는 연분홍
이 참살이 애틋하다
우린 좀 더 늙어도 되겠지
수 분의 침묵으로 세상일에 달관한 척,
말하고 싶은 것을 견뎌낸
목구멍에서 망울진 고백으로
둘 사이에서 피고 지는 시간이 총명하다
어떤 눈물석임은
보름달을 짜부라지게도 하고
어떤 흐릿한 눈은 반달을
만월로 만드는 마술을 펼쳐 보인다
나에게 세상을 향해 열린 창은
늘 잘 닦인 것만은 아니여서
어떤 날은 흐리게 봐야
붉게 물든 손끝이 보일 때가 있다
♧ 세상을 듣다 - 김문택
새는 오늘도
아파트 옆 공원 나무에 앉아 노래 부르지만
내 귀는 안으로 굳게 닫아 걸었다
나뭇가지를 흔들며 비밀인 양
누락된 골목을 낱낱이 털어 놓는다
집이 거기 있다고
들어가면 따뜻하다고
내가 찾는 건 집이 아니다
집으로 가는 길 동행자가 있으면 더 좋겠지만
너는 늘 문 앞에 와서
세상을 지껄이지만
닫아 건 내 귀는 한밤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