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물영아리 산수국

김창집 2014. 6. 16. 08:49

 

어제는 탐문회 회원들을 모시고

신례천 생태로 2코스를 걸었다.

조그만 냇가 옆으로 난 울창한 숲길을 걸으며

나무 잎사귀와 아름다운 꽃들을 보면서

그 이름들을 부르고는 추억들을 되살렸다.

 

신례리 생태숲길 3km, 이승악 오름 돌기 3km,

목장길 통하여 나오는 길 2.7km, 도합 8.7km를

천천히 걸으며, 힐링한 즐거운 시간이었다.

 

남원에서 소박한 정식으로 점심을 챙기고

남조로를 통해 돌아오는 길에

람사르습지로 지정된 물영아리에 들러

곳곳에서 이렇게 산수국을 만났다.

 

요즘 한창 피어 그 자태를 뽐내고 있는

산수국. 

 

 

♧ 산수국꽃 - 김용택

 

아침저녁으로 다니는 산 아래 강길

오늘도 나 혼자 걸어갑니다

 

산모롱이를 지나 한참 가면

바람결처럼 누가 내 옷자락을 가만가만 잡는 것도 같고

새벽 물소리처럼 나를 가만가만 부르는 것도 같습니다

그래도 나는 그 자리를 그냥 지나갑니다

 

오늘도 그 자리 거기를 지나는데

누군가 또 바람같이 가만가만 내 옷깃을 살며시 잡는 것도 같고

물소리같이 가만가만 부르는 것 같아도

나는 그냥 갑니다

그냥 가다가 다시 되돌아와서

가만히 흔들렸던 것 같은

나무이파리를 바라봅니다

그냥 가만히 바라보다가

다시 갑니다

다시 가다가 다시 되돌아와서

가만히 서 있다가

흔들렸던 것 같은 나뭇잎을 가만히 들춰봅니다

아, 찬물이 맑게 갠 옹달샘 위에

산수국 꽃 몇 송이가 활짝 피어 있었습니다

나비같이 금방 건드리면

소리 없이 날아갈 것 같은

꽃 이파리가 이쁘디이쁜

산수국 꽃 몇 송이가 거기 피어 있었습니다  

 

 

♧ 도깨비도로엔 그대가 삽니다 - 오시열

 

한라산 아흔아홉골로 가는 횡단도로

그곳엔 도깨비 도로가 있습니다

 

길은 멀쩡하게 내리막인데

물을 부어도 올라가고

먹다 버린 깡통을 눕혀 놓아도

신기하게 올라갑니다

 

잃어버린 내 사랑을 눕혀 놓습니다

그대 환하게 웃으며 내게 다가옵니다

온 산이 푸릅니다

자귀나무 연분홍 꽃잎

파르르 흔들리며 날립니다

산수국 화들화들 피어납니다

그대의 입맞춤처럼 피어납니다

 

환상을 실험하는 사람들의

깜빡이는 비상등

그대 그 불빛에 놀라

황급히 사라집니다  

 

 

♧ 산수국 - 김인호

   --섬진강 편지20

 

보란 것 없이 사는 일

늘 헛되구나 그랬었는데

 

왕시루봉 느진목재 오르는

칙칙한 숲 그늘에 가려

잘디잘고 화사하지도 않은

제 꽃으로는 어쩔 수 없어

커다랗게 하얀, 혹은 자줏빛

몇 송이 헛꽃을 피워놓고

벌나비 불러들여 열매를 맺는

산수국 애잔한 삶 들여다보니

 

헛되다고

다 헛된 것 아닌 줄 알겠구나  

 

 

♧ 무등산 산행 그리고 비 - 김영천

 

평등보다 더 낮다는

무등의 허리께로

빼아시 푸러렁

빼아시 푸러렁

우중에 희롱하는 새소리인가

규봉암 해우소

正因 스님 도닦는 소리인가

유심하여 돌아보니

남겨 둔 세상조차 보오얗게

이마 벗으며 다가서네

 

남강 빛 산수국도 우루루 피어나고

까치수염

하늘말나리

다투어 맞는데

 

젖은 내 구두 속에서

오호라, 퉁퉁 분 그리움이

훌쩍 가벼워져서는

한 자락 운무로 피어나려는가

 

쏜살같이 지나가는 세상을

간섭하며

빼아시 푸러렁

빼아시 푸러렁  

 

 

♧ 가짜꽃 - 김종제

 

들판에 흔한 산수국

고이 옮겨 마당에 심었는데

오뉴월 땡볕에 참꽃 다 지고

마짝 마른 몸 그대로 간직한

헛꽃만 달려있네

어쩌면 변방의 유배지로 쫓겨가

살붙이고 뼈세우며 살다가

저를 알아주는 이 아무도 없어서

한 판 들어엎고 싶었던

내 아버지의 아버지 같고

시골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나

고운 옷 걸쳐 입고

양산 쓰고 서울 나들이 가고 싶었던

내 어머니의 어머니 닮았네

저 산수국

거짓부렁이 같은 생이

처절하기도 하고 애절하기도 해서

엄숙하고 단단한 껍질을 덮고 있는

세상 골려주고 싶은 것이네

헛깨비에 속아 노는 꼴을

한바탕 구경하고 싶은 것이네

그래서 달콤한 향기 찾아가는 구별도 없고

쓸모 없는 벌레 모여드는 경계도 없는

꽃을 만들고 싶은 것이네

주변도 없고 가장자리도 사라지고

제 자리 모두가 중심이 되는 참꽃 같은

헛꽃 한 송이 보고 싶은 것이네

 

 

 

♧ 산수국 - 최원정

 

푸른 나비

떼지어

꽃으로 피었다

 

그 꽃 위로

하늘빛 내려 와

나비방석 빚어 놓았으니

잠시 쉬었다 가자

 

다리 쭉 뻗고 앉아서

긴 호흡으로

가뿐 숨 고르며

갈 길, 서둘지말고

 

가만히 봐

푸른 나비가

꽃으로 핀

저 고요한 날개짓  

 

 

♧ 흐르는 강물처럼 - 최원정

 

괜찮다

너무 애쓰지 마라

세월이 흐르다보면 묻혀 지겠지

 

걱정하지 마라

그러다 신경줄까지 끊어질라

심장혈관질환에 이어

암투병중인데

아서라, 또 다시 고장날라

 

백팔염주같은 여섯개의 알약을

매일 털어 넣으면서 연명하는 목숨 줄

산수국꽃이 피듯

수시로 드는 푸른 멍

 

흐름대로 놓아두자

섭리대로 가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