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6월에 보는 멀구슬나무 꽃

김창집 2014. 6. 17. 00:09

 

정신 못차리는 사이에 5월이 가고

6월도 반을 넘어 섰다.

규칙적으로 나가는 데 없고,

부르는 대로 또 필요한 대로 오가다 보면

세월이 가는지, 계절이 바뀌는지

참으로 황당할 때가 많다.

이 멀구슬나무 꽃도 지난 5월말에 찍어

저장했던 것을 그냥 묵히기 아까워 내보내는 것이다.

 

멀구슬나무는 멀구슬나뭇과에 속한 낙엽 교목으로

잎은 깃꼴 겹잎이고 어긋나며,

5월에 자줏빛 꽃이 잎겨드랑이에 원추 꽃차례로 달리고

열매는 9월에 황색으로 익는다.

정원수로 심으며 열매는 약재로 쓰인다.

우리나라, 일본, 타이완 등지에 분포한다. 

 

 

♣ 쇼팽의 선율과 6월의 오르가슴 - (宵火)고은영

 

6월의 골을 거쳐 바람은 푸른 잎새 들을 아우른다네

오디오에서 들리는 쇼팽의 황홀한 선율

이름 모를 새들의 지저귐

태양은 내 지붕 위에 그리고 미지의

저 히말라야 안나푸르나 정수리에 작열하고

자연도 무형의 꿈을 꾸는 푸르름만 깊어진 6월

세상은 하나같이 초록 물결이라네

 

한적한 오후의 가슴에 가만히 누워 고요를 즐기고

나는 내 방에서도 이름 없는 작은 풀꽃들을 그려 보노라네

스치는 바람결이 차가울수록 밑변 없이 젖어드는 선율

아, 비애를 다스리는 음표들이여

견딜 수 없는 사랑들이여

 

최고조의 행복의 밀물 위에 맨발로 섰나니

공명하는 벅찬 감흥의 덩어리여

알몸으로 나를 벗어 던졌나니

올림프스 신전의 웅장함도

세상을 통치하던 제우스의 신전에

재물로 뛰놀던 성욕과 바람도

지금은 외로운 그루터기만 남아 시간을 연명하나니

 

감성으로 불거지는 몽환의 가지마다

나는 한 그루의 나무로 인적 없는 숲의 심장에

물푸레나무로 살랑이나니 엎딘 가슴으로 살랑이나니

뜨거운 입맞춤에 젖어 황홀한 선율 속에

6월의 오르가슴이 시방은 가슴에 가득 피어오른다네  

 

 

 

♣ 6월의 향기 - 임영준

 

찬란한 아침이면

족하지 않은가

 

가만히 있어도

응어리진 채 떠난 수많은 이들에겐

짙은 녹음조차 부끄러운 나날인데

남은 자들은 여전히 들끓고 있다

 

게다가 어찌 모두

빨간 장미만 쫓고 있는가

 

그래도 묵묵히

황허한 골짜기를 지키고 있는 건

이름 모를 나무와 한결같은 바람인데

가슴을 저미는 것은 풀잎의 노래인데

 

유월에 들면 잠시라도

영혼의 향기가 느껴지지 않는가  

 

 

♣ 6월의 현혹(眩惑) - 초희 윤영초

 

밀려오는 구름사이로

가슴 떨림 같은 바람이 불고

싱그러운 유월의 지붕들이

한나절 일광욕을 즐기듯

따사로운 햇살에 눕고

초여름의 문이 활짝 열린다

 

다가오는 유혹이

하얀 속살 태우듯

햇살이 익어간다

지나가는 발걸음

그림자로 길게 누워

애틋함으로 물들어

눈부신 유월은

뜨거운 현혹(眩惑)이다

 

살랑이는 미풍으로

녹음의 손을 잡고

근사한 몸짓

왈츠를 춘다

나뭇잎 사이로

파랗게 파랗게 멍들어

푸른 강물로 출렁인다 

 

 

♣ 6월, 그리움 - 이승철

 

장마 소식 앞세우고

싱그러운 바람 한 줌

망초 꽃, 꽃대궁 사이를

나비처럼 누빈다

 

한강 둔치

갈대밭 풀숲에는

텃새들의 음모(陰謀)가

은밀하게 자라고

 

텅 빈 벤치엔

땡볕에 말라비틀어져 나뒹구는

한 조각, 희미한 추억 속으로

소나기처럼 쏟아져 내리는 6월

 

척박(瘠薄)한 가슴속엔

어느 듯, 민들레꽃이 지고

해체된 기억의 파편들이

아픈 살점을 도려내어도

 

시퍼렇게 멍든 강물을 가르며

베이스 한 소절로 유람선이 떠난 후

헤어지는 아쉬움으로 멈칫거리다

낮달로 뜨는 6월, 그리움.  

 

 

♣ 6월, 장미보다 아름다운 - 목필균

   - 느티나무

 

6월이 흐르고 있다

오늘이 스치고 있다

다 지고도 붉은 농염 거두지 못하는

너를 위해 태양은 이마의 땀을 닦는구나.

 

거두거라. 메말라 일그러져 슬픈 네 입술,

이 뜨거운 햇살 아래 지울 수 없는 것은

저 푸른 느티나무의 넓은 그늘이다.

 

안으로 동여맨 세월의 흔적들로

부피를 더해 가는 느티나무에 기대어

하루를 익히는 심장소리를 들어라.

 

땅과 하늘을 잇는 피돌기로

정직한 길을 열고

무성한 잎새들이 수런대며 살아가지 않느냐.

 

너는 한 시절을 접고서도 날선 가시를 남기지만

느티나무는 늘 그 자리에 묵묵히

한 해의 허리를 밟고 서 있을 뿐이다.

 

 

 

♣ 6월의 풀밭 - 박진용

 

꼭 접어 마음 깊은 곳에 덮어 두고

잊혀진 옛 일이라 다짐 했는데

어느새 6월의 풀밭에 나를 눕히고

푸른 하늘에 그의 모습 그려준다

 

그리움

이제는 메마른 서러움

허공에 떠도는 민들레씨의 외로운 흔들림

 

그리움

아직도 빈 마음 설레임

바람에 날리는 쌍 나비의 못 다한 사랑유희

 

잊혀진 옛 일이라 다짐 또 다짐 하여도

6월의 풀밭에 남겨진 흔적

잊히지 않으려니, 잊지 못 하려니

다시 접어 두고, 내내 마음 앓으려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