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 일기

사랑초 피는 아침에

김창집 2014. 6. 20. 09:33

 

‘사랑초’라는 이름을 단 풀이

어디서 와서 이렇게

꽃을 피우는지 모르겠다.

 

꽃괭이밥을 닮았다 하면서도

그것이 ‘사랑초’인지 몰랐듯이,

어쩌면 우리가 말하는 그 '사랑'이

느끼지 못하는 사이에

이루어지고 있는 건 아닐까? 

 

 

♧ 사랑초꽃 - 이창숙

 

이 아침

연보라빛 어머니가 오셨네

가는 목을 가누고

미소로 앉아 계신 모습

흰 죽 한 숟갈 떠 넣고

몇 날을 더딘 걸음으로 오셨을 당신

살짝 화분 덮은 당신의 주름치마가 보입니다

 

늦은 겨울 당신을 앞세우고

찬 빗물로 흩뿌려 지워지는 길을

밤새 슬퍼하며 흘리던 눈물을

사랑초는 알고 있었을까

 

가끔 어둠 속에서 마주하면 내게

슬픔도 푸른 마디가 된다고

잎이 된다고

기다림의 환한 눈빛을 주더니

 

피고 또 피고 지고 또 피고

당신의 사랑이 이 봄 내내

그립고 눈물 난다는 것을...

이 아침 당신 앞에 오래

서 있습니다.

 

 

 

♧ 사랑초 - 강은령

 

나비 세 마리 얼굴을 맞 대고 있다

삼각관계가 아니다

주둥이 끝만 마주대고

사랑하는 법을 배우는 중이다

꽃의 마음을 학습 중이다

꺾어 바람에 날려 주기 전엔

날지 못하는 나비들이

밤이면 날개 접고서

마늘을 먹는다

해 뜨면 절로 꽃이련만

밤새워 꽃 되기 수련 중이다

꽃답기 위한 것이

저리 힘든 것이다  

 

 

♧ 사랑초 - 우공 이문조

 

사랑받는 것보다

사랑하는 것이 행복하다 했지요

 

사랑초 하나

심어놓고

애지중지 물 주고

관심 주고 사랑 주었더니

 

한 마리 나비처럼

하늘하늘

예쁜 잎 피웠어요

살갑기도 하군요

 

내 사랑이

나를 위한 사랑이 아니기를

널 위한 사랑이면 좋겠습니다.  

 

 

♧ 자줏빛 사랑초 - 권오범

 

조상이 일러준 매무새

삼각 등고선 따라

어긋남 없이 만난 세쌍둥이

 

사마귀마저 헷갈리게 태어나

야들야들하게 보낸

나비춤 한평생

 

같이 늙어 일그러졌을지언정

짧은 이승의 연

죽어도 놓을 수 없어

 

아슬아슬한 바늘 끝

꼭지점 입맞춤

이대로 영원히  

 

 

 

 사랑초 가족 - 유소례

 

물 한 모금 마시고

풋풋하게 허리 펴서 생글생글

뼈 없는 몸통 하나, 사랑표 얼굴 하나

 

창틀에 엉긴 바람, 숨 한번 마시고

불끈 철 들어

쭉 쭉 온 몸 진저리 친다

 

유리알 뚫고 들어온 햇살에

맘 뜨거워져

새치름 낮춘 아미, 사랑표가 청순하다

 

이제 막

흙을 들어 올린 부리,

놀라는 눈망울이 ‘아 - 꿈인가!’

갈매 빛 말을 한다

화분이 미어지도록

빈 공간을 메우는 우리 집 사랑초 가족.  

 

 

♧ 비밀은 그림자를 남긴다 - 목필균

 

사랑초는 발도 없이

이곳저곳에 새끼를 친다

 

어느 새

이편저편 화분마다

말을 걸었는지

사랑초 잎새가

주인보다 먼저 고개를 내민다

 

화분마다 자줏빛 하트가

고개를 내민 베란다에는

숨겨놓은 비밀이 그림자를 남긴다

 

사랑이 뿌려지는데

흔적이 없을까

 

비밀이 밀봉되었던 자리에

그림자만으로 꽃이 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