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전형 시집 ‘꽃도 웁니다’와 삼백초
양전형 시집
‘꽃도웁니다’가 나왔다.
제1부 뜨거워야 필 수 있어
제2부 세상이 나를 보고 있네
제3부 꽃도 웁니다
제4부 바람 든 내 염통 누더기 사이
제5부 사랑은 법전 없는 눈 먼 무질서
해설 : 양전형의 시세계 - 이재훈(시인, 평론가)
시 몇 편을 골라
삼백초와 함께 올린다.
♧ 꽃도 웁니다
너도 꽃이고
나도 꽃이지요
우리들은 모두 꽃숲에 삽니다
꽃처럼 울며 살아라는 말은 없어도
꽃처럼 웃으며 살라고들 하지요
밤낮 없이
아무데서 만나도 웃고
싹둑 잘라 꽃병에 꽂아놔도 웃고
몸 팔려
이 사람 저 사람에 옮겨져도 웃고
발길에 밟히거나
바람에 쓰러져도 다시 일어서며 웃고
차가운 땅바닥에 꽃말림 소재가 되어도
꽃은 마냥 웃지요
꽃도 웁니다
휘황한 불빛아래
사람꽃들 소란스러운 벚꽃축제장 꽃숲
한 무리의 바람이 찾아듭니다
무슨 사연 전했는지
꽃눈물들 한 잎씩 우수수 떨어집니다
눈물보다 더 아프게 날립니다
세상이 서럽도록
하얗게 웁니다
꽃은 방실방실 웃는 것만이 아닙니다
꽃샘이 차가운 밤
꽃숲에 앉은 나도
꽃송이가 허무해서 웁니다
돌아가신 어머니를 품고 꺼이꺼이 웁니다
♧ 안개꽃을 보며
오목한 꽃잎 끝마다
하늘이 풀무질한다
새벽녘 살그미 돌아온 여인이
조용조용 닦아내야할 짙은 화장기다
건너편에서 멀어져가는 젊음처럼
오래 바라볼수록 가마아득하다
감귤의 파란 언어가 붉어가는 계절
한낮에 달려들던 작달비에게
너의 길이라면 나를 밟고 지나가거라
온몸 내주며 유연하더니
지금은 저뭇한 시간
피어나는 게 어디 꽃뿐이더냐
내가 아는 사람들과 내가 모르는 사람들
다 모여들어 피었다 어떤 이는 몇 송이씩이다
간밤 토막잠에 동강난
내 꿈 부스러기들도 있다
♧ 별도봉 달맞이꽃
누군가 떠난 뱃길
제주 앞바다
길을 지운 수평선을 보다가
낮이 밤을 지우고
밤이 낮을 지우고
하루가 하루를 지우는 사이
노란 가슴 부풀다 터졌네
사랑 지우개는 깊은 잠인데
달빛 가득 내린 이슥한 밤
막막한 그리움이 잠마저 지우네
♧ 마라도 갯패랭이
분명 저것은 내가 피어난 것
나를 나선 외로운 바람이 섬에 들어
등대에서 한나절 들길에서 한나절
기원정사에서 하룻밤 묵고 나니
마라섬에 제 몸 열어 놓고 싶어진 것
가쁘고 홍조 띤 얼굴 보면 안다네
파도 타고 먼 길 헤매왔겠다
바위틈에 들어 하늘을 밀어올리며
줄기 속 마구 달려 세상에 몸 보인 꽃
분명 저것은 내가 피어난 것
벅차고 벌건 모습 보면 안다네
♧ 참꽃
어느 세계를 오래 다녀오면 이렇게
머리에서 발끝까지 봄빛으로 열리는가
간밤 왔던 선녀가 전한 말 있었는 듯
붉은 명주 조각조각 해맑게 두르고
슬쩍슬쩍 나만 보면 어찌하란 말인가
어떤 꿈 무시로 꾸고 있으면 이렇게
온몸이 수줍도록 벙글고야 마는가
바람도 설레어 콩닥콩닥 이 참꽃밭
물오른 내 외로움 층층이 밝혀놓고
올무로 나를 가두면 어쩌하란 말인가
♧ 마라도
누가 살가운 아이 하나 낳아
이리 멀리 보내두었나
태평양 닮은 어미 소곱에서
염치없이 보채던
내 염통 한 토막인 듯
모태 속 내 둥근 낮잠인 듯
그리움으로 가득 채워져
아스라이 떠있는 섬
외롭다고 울 필요는 없다
끼룩 끼룩
괭이갈매기 젖 보채는 소리
바람 타고 저승문 두드릴 때마다
젖가슴 다 내주고도 모자란
굽은 등 내 어머니
흰머리 날리시며
남단 바닷길 허위허위 달려오신다
♧ 외로워서 못 가겠다
가도 가도 다 못 가는 건
정말 외롭기 때문이다
그대에게 가는 길
폭풍바다 뒤집어진들
불바다 너울에 삼켜진들
큰 걸음으로 달려가지 못 하겠나
어느 빙하에 가두워진들
녹여내지 못 하겠나
강 건너 북망산 올레길
함께 가지 못 하겠나
가도 가도
외로워서 못 가겠다
그대 안에 내가 없어
허전해서 못 가겠다